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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7 18:43 수정 : 2013.04.18 09:52

[esc]라이프

점심시간 활용해
걷는 직장인들 늘어나
뱃살빼기와 함께
정신적 만족도 커

걷기 바람과 함께
정장에 운동화 차림도 인기
제대로 걸어야
운동효과도 뚜렷

4월1일부터 점심시간이면 서울 도봉구청 직원들은 걷기 시작했다. 구청 쪽은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등을 떠밀었다”는데 결과가 괜찮았다. 점심시간이면 부서별로 4~5명, 전체적으로는 적을 땐 150명, 많을 땐 200명이 30분 동안 중랑천을 따라 걷는다. 체육진흥과에서 일하는 이종구(39)씨는 “좁은 공간에서 모니터만 보고 있다가 탁 트인 공간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고 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영어학원 등 자기계발에 나서는 런치투어가 유행이라지만 아직도 많은 회사원들은 그저 걷기를 택한다. 따지고 보면 생각에 잠기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지면에 발바닥을 굴리는 것 아니던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공연기획사에 다니는 박영진(31)씨는 보통 11시50분쯤 점심식사를 하고 12시30분부터는 걷기 시작한다. 동료들 사정에 따라 동행이 있는 날도 있고 혼자 걷는 날도 있지만 어쨌거나 매일 걷는다. 그의 회사가 있는 코엑스 빌딩에서 봉은사까지 쉬지 않고 걸으면 15분, 왕복 30분 거리다. 박영진씨는 “점심시간이면 회사원들은 대체로 30분 동안 밥 먹고 30분 동안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니면 30분을 틈타 회사 근처 복합쇼핑몰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커피 대신 걷기를 택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햇볕을 잘 쐬지 못해 비타민D가 모자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보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봉은사 가는 길이 의외로 경치가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통 산책자의 보행속도는 시속 3~5㎞. 퇴근 뒤 공원에서 빠른 속도로 스포츠 워킹을 하면 운동효과는 더 좋겠지만 밝은 대낮 천천히 걸으면 세상이 또렷해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이따금 절에서 공짜로 주는 점심을 얻어먹기도 한다. “광합성도 하고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가 걷기를 계속하는 이유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청계광장, 여의도공원, 석촌호수길 등에는 ‘소요학파’에 가세하는 회사원들이 크게 늘었다.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 있는 한 회사에서 일하는 박경진(가명·42)씨는 걷기를 시작한 뒤 점심시간 늘리기에 나섰다. 예전 습관처럼 12시가 지나서 식당 앞 긴 줄에 동참하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점심시간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란다. 박씨는 “하루 중 몸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나는 사무실에서 10분 먼저 나서지만 동료들 중에는 아예 걸어서 30분 걸리는 멀리 있는 식당만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30분이라도 걷노라면 몸에 청량감이 찾아온단다. 점심시간을 늘리면 배가 나오는 속도는 줄어든다는 것이 박경진씨의 지론이다.

걷기가 좋다는 것은 다 알지만 안 걷는 사람이 더 많다. 첫걸음을 떼기 어려워서다.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를 쓴 오시마 기요시는 “자전거를 탈 때 첫 고비를 넘기고 페달 밟는 즐거움을 느끼면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걸을 때도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 한없이 즐거워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대뇌생리학에서는 우리 뇌는 기쁘고 즐거웠던 일을 기억해두었다가 한없이 반복하려는 특징이 있다고 풀이한다. 이를 뇌의 ‘보상행동’이라고 부른다. 걷는 즐거움을 느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보상행동에 따라 걷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걷기 유행 덕분에 걷는 일과 사무실의 거리는 부쩍 줄어들었다. 많은 회사원들이 점심시간에 가볍게 산책에 나설 수 있는 이유는 구두를 버리고 운동화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래 몇년 새 잘빠진 정장 슈트에 운동화 차림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직장인의 출근복장이 됐다. 도봉구청에서 일하는 이종구씨도 “운동화로 출퇴근한 지 오래며,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직원들도 운동화 한 켤레쯤은 사무실에 두고 있다”고 전한다. 연아 워킹화 등으로 걷기 열풍과 함께 높은 매출 신장을 기록한 프로스펙스 쪽은 “밝은색 운동화보다도 정장에 어울리는 점잖은 스타일과 색상의 운동화 매출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운도남(운동화를 신은 도시 남자), 운도녀(운동화를 신은 도시 여자)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프로스펙스에서 걷기 강좌를 진행해온 걷기전문가 김지현씨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발은 가벼워졌지만 오랫동안 신어온 구두의 습관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며 “걷기 효과를 보려면 한번 발걸음에 발뒤꿈치, 발 중간 부분, 엄지발가락이 50 : 30 : 20의 비율로 고루 닿아야 한다. 하이힐에 길들여진 여자들을 보면 발 중간이 땅바닥에 닿지 않고, 무릎이 항상 구부러져 있는데 이걸 고치면 효과적인 걷기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니터 앞에 꼼짝 않고 앉아 일하는 시간에 비하면 점심시간이 너무 짧다. 하이힐로 종종걸음쳐온 세월을 바로잡기에도 걷기 유행은 아직 한참 모자란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모델 이규리

life tip: 자세가 좋아야 효과 만점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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