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24 18:51
수정 : 2013.04.24 18:51
|
씨앗 폭탄
|
[esc]커버스토리
2012년 4월, 제주 강정마을에 폭탄이 날았다. 경찰들 키를 훌쩍 넘겨 해군기지 예정 터에 착륙한 폭탄은 펑 하고 터지는 대신 살포시 땅에 내려앉았다. 평화운동가들이 던진 씨앗 폭탄이었다.
|
씨앗이 들어 있는 오렌지맛 막대사탕
|
게릴라 가드너들이 만드는 씨앗 폭탄(사진1)은 그 지역의 흙과 씨앗에 퇴비를 약간 섞어 물로 반죽해 만든다. 이들은 씨를 뿌리는 모습을 생태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활동으로 여기기 때문에 씨앗 폭탄을 만들 때도 과일 모양으로 만들거나, 달걀 속을 빼내고 껍질 속에 씨앗을 채우는 등 작품처럼 만들기를 좋아한다. 2009년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황진욱, 전유호, 한국일, 김지명)들이 지구 환경 보호에 도움을 주는 기발한 폭탄을 설계한 일이 있었다. 원자폭탄 모양을 닮은 캡슐 속에는 씨앗이 담겨 있다. 공중에서 이 씨앗 폭탄을 떨어뜨리면 캡슐은 저절로 벗겨지고 씨앗들은 캡슐 속 토양을 자양분 삼아 자라난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를 바라고 던지는 것이라서 씨앗 폭탄을 만들 때는 그 땅에 자라는 토종식물들의 씨앗으로 만들어야 한다. 외래식물은 되레 그 땅의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플랜트-미-인형’
|
리처드 레이놀즈가 쓴 <게릴라 가드닝>에서는 게릴라들의 무기고에 생명력이 강한 씨앗을 준비해두라고 권한다. 금잔화나 라일락은 건축 폐기물이나 시멘트 때문에 알칼리성으로 변한 땅에서도 잘 견딘다. 라벤더는 주민들을 포섭하고 싶을 때 많이 심는다. 꽃이 풍기는 향기는 그 어떤 말보다 선동효과가 강하다. 번식력이 강한 토종식물은 좋지만, 다른 식물들을 짓누르지 않도록 꽃밭이나 울타리 안에 심는 것이 좋단다.
|
씨앗 저금통
|
씨앗 폭탄만큼 간편하게 씨를 심기 위한 도구로는 ‘시드 스틱’(씨앗 막대기)이 있다. 흙에 꽂아두고 물을 주면 씨앗을 감싼 필름이 저절로 녹아 싹을 틔우는 원리다. 막대기에는 이 식물의 이름도 적혀 있다. 스페인의 푸드디자이너 마르티 기셰는 씨앗이 들어 있는 오렌지맛 막대사탕(사진2)을 내놓기도 했다. 사탕을 다 먹고 막대기에 남은 씨앗은 주변 풀밭에 뱉어버리라는 것이다. 마르티 기셰는 인형 눈에 채소 씨앗을 붙여 거꾸로 심으면 자라서 채소가 되는 ‘플랜트-미-인형’(사진3)을 만들고, 씨앗을 모을 수 있는 저금통을 설계하기도 했다. 이 씨앗 저금통(사진4)이 꽉 차면 집 앞 공원 같은 곳에 던지면 된다. 저금통이 깨지면 씨앗들이 자란다. 씨앗을 퍼뜨리기 위한 아이디어도 계속 자란다.
글·사진 남은주 기자
광고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