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8 18:42
수정 : 2013.05.0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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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노 콘셉트카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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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스타일
기계미학의 결정체
자동차 디자인
육중하고 단단한 이미지에서
부드러운 생동감으로 변화
세계적 산업디자이너들
자동차 디자인에 관심
가구나 생활용품처럼
편하고 친근한 자동차 선보여
디자인에서 자동차는 그동안 매우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기술이 가장 집약적으로 표출되는 분야이면서도 기술에 종속되지 않았고, 자체의 아름다운 형태를 중심으로 디자인이 발전해왔다. 사람들도 자동차의 존재감을 그 안에 들어 있는 기능성이나 기술보다는 형태의 이미지를 통해 확인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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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MW의 콘셉트카 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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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자동차 디자인에 나타나고 있는 흐름을 보면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그동안 자동차를 뒷받침하고 있던 배경이 토대부터 바뀌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부 동안 자동차는 일반 사람들의 삶 속에서 기계문명을 체험하게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자동차의 아름다운 외양은 기계문명에 인간의 믿음을 보여주는 강렬한 시각적 징표였다. 이런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강한 금속성을 자랑하는 독일의 자동차들이었다. 독일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뛰어난 기계적 구조, 금속성 가득한 질감, 완벽한 성능을 시각적으로 은유하면서 산업시대의 미학을 세계적으로 전파했다. 그 뒤 지금까지 세계 자동차 디자인은 서로 다른 스타일을 지향할지라도 기계미학을 상징하고 과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폐해가 정점에 달한 20세기 후반부터 세상은 기계문명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고, 자동차는 변화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간 기계미학을 향했던 자동차 디자인은 미학적 노선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요즘 감지할 수 있는 자동차 디자인의 가장 큰 변화는 크게 두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 먼저 자동차의 기계적 외형을 생명적 속성으로 바꾸려는 시도와 둘째로 그간 자동차의 육중하고 단단한 이미지들을 부드럽고 친근한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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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드 콘셉트카 내부와 서랍형 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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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엠베(BMW)에서 최근 내놓고 있는 콘셉트카를 보면 자동차 위를 흐르는 역동적인 곡면들이 시각적으로 매우 눈에 띈다.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점은 그러한 곡면들이 기존의 자동차 디자인에서처럼 기계적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동감들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차 위를 흐르는 곡면들이 기계미학적인 디자인에서와는 달리 그 수가 많아졌다. 차를 이루고 있는 그 수많은 곡면들은 서로 어울리고 흩어지면서 리드미컬한 유기적 운동을 이루고, 그러한 운동성 속에서 금속성의 기계적 이미지는 현격히 상쇄되고 있다. 공기를 부드럽게 흘려버리는 기존의 공학적인 면들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디자인이다. 그렇게 곡면들의 리듬이 다이내믹하게 강화되면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는 급기야 근육과 혈관을 가진 유기적인 존재,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다가온다. 시각적으로도 강렬하지만 이제 자동차가 지향하는 것은 전투기가 아니라 표범이나 독수리와 같은 생명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자동차 디자인의 또다른 경향은 자동차가 기계 덩어리라는 생각을 지우려는 시도들이다. 몇년 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유명 산업디자이너 마크 뉴슨이 선보인 콘셉트카와 역시 영국 출신 산업디자이너로 이름이 높은 로스 러브그로브가 지난달 열렸던 밀라노 디자인박람회에 내놓은 콘셉트카가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자동차 디자이너가 아니라 산업디자이너들답게, 자동차를 기계가 아닌 생활용품처럼 친근하게 변신시켰다. 제품 디자인에서나 봄 직한 잔잔한 아이디어들은 이전 시대의 남성적이고 강인한 자동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자동차를 친숙한 도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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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크 뉴슨의 포드 콘셉트카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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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뉴슨이 포드를 위해 디자인한 콘셉트카는 우선 외양이 장난감 차처럼 보인다. 자동차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곡면들이 대폭 줄어들고, 상자처럼 보이는 자동차의 외형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모양새다. 이 자동차의 앞뒤 문을 열면 자동차의 옆면이 완전히 개방되고, 뒤 트렁크는 마치 서랍처럼 열린다. 자동차가 아니라 가구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로스 러브그로브가 르노를 위해 디자인한 콘셉트카도 독특하면서 친근하다. 우선 파란색의 몸체와 형광빛 연두색의 휠캡이 눈을 파고들어온다.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는 않다.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에서 흔히 경험하던 색상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동차 안팎을 감싸고 흐르는 패턴들의 디자인도 강렬하면서도 신선하다. 무엇보다 이런 패턴들은 자동차를 자동차이기보다는 패션처럼 보이게 한다. 로스 러브그로브의 세련되면서도 미래적인 조형감각이 이 자동차에서도 여전히 드러나고 있지만 기존의 자동차들이 주는 기계적인 느낌은 조금도 찾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시각적 처리를 통해 그 어떤 자동차 디자인보다도 만만하고 부드럽게, 가까이 스며든다.
이처럼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많은 자동차들은 이제 기계처럼 번쩍이는 표면을 피하려 하고 있고, 완벽해 보이지만 차갑고 딱딱한 기계적인 이미지를 가급적 지우려 하고 있다. 대신에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하나의 생명체로 다가가거나 친근한 생활용품으로 다가가기를 원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것은 현재 20세기의 기계시대가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과 분명히 관계가 있으며, 자동차의 존재를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디자인들도 이제는 20세기 기계미학으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제 디자인은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기능성을 뒤로하고 마음을 훈훈하게 달구어 주는, 감동을 주는 단계로 움직여 가고 있음을 느낀다.
글·사진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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