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15 18:20
수정 : 2013.05.1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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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 왼쪽부터) 노병율, 김맹준, 황병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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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요리
잘나가는 소믈리에에서
토종 미꾸리 양식업자
변신한 김맹준씨
두 친구와 의기투합
3년만에 결실
국내산 5% 현실
친환경 먹거리 관심 늘며
미래의 가능성도 맑음
“애들은 시골에서 키워야겠다 생각했어요. 서울에서는 돈 벌면 8학군 보내고 싶어지고 유학도 보내고 싶어지죠. 시골에서는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거 같았어요.” 김맹준(41)씨는 성공한 도시생활자다.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특급호텔 호텔리어로 일했지만 아이엠에프(IMF) 폭탄을 맞았다. 실업자가 됐지만 레스토랑 창업으로 재기해 ‘성공’이란 명패를 달았다. 그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로씨니’(서울 종로구 재동)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러나 태생이 ‘시골사람’인 그는 도시 생활에 지쳐갔고 아이들의 아토피도 심해졌다.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농사짓고 싶었던 옛날 꿈이 떠올랐다. 4년 전 결단을 내렸다. 고향 전주로 아내와 세 명의 자녀를 내려보내고 귀농 준비를 시작했다. 일주일의 반은 서울에서, 반은 전주에서 살지만 곧 전주로 아예 내려갈 생각이다. 인생 2막을 고향 전주로 정하게 된 데는 친구 노병율(41)씨의 공이 컸다. 노씨는 국산 종자로 미꾸라지 양식에 도전하고 있다. 친구가 하는 양식업은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 “나도 시작하겠다고 하자 병율이가 그냥 같이 하자고 했어요.” 작년부터다. 노씨는 여수수산대학에서 어류양식으로 석사까지 딴 전문가다. 안정적인 직장인 수협에서 일했지만 1988년부터 미꾸라지 양식에 평생을 바친 아버지의 유언을 뿌리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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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꾸리 치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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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우리 논에는 미꾸라지가 사라졌다. 농약을 듬뿍 뿌린 논바닥에서 불사신도 아닌 미꾸라지가 생존할 방법은 없다. 현재 추어탕전문점 등에 공급되는 미꾸라지는 중국산이거나 중국산 치어(새끼)를 3개월간 키워 ‘국내산’이라고 붙인 것이 대부분이다. 국립수산과학원 내수면양식센터 임상구 박사는 “1년에 국내에서 1만t 소비되는데, 9500t이 중국산이거나 중국산 치어로 양식한 미꾸라지”라고 말한다. 순수 국내산 양식은 5% 정도다. 추어탕용 미꾸라지는 두 종류다. ‘미꾸리’와 ‘미꾸라지’. 토종은 대부분 미꾸리다. 미꾸리가 맛이 더 좋고 흔하지 않아 값이 더 나간다. 임 박사는 “토종미꾸리 양식장은 약 100곳이고, 중국산 치어 양식장은 약 200군데다. 현재 우리 양식센터는 농약을 치지 않는 친환경 벼를 생산하는 논에 치어를 풀어 양식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보급중”이라고 한다.
도시에서 ‘잘나가는 친구’를 끌어당긴 미꾸리 양식은 매력적인 분야다. 임 박사는 “기술만 제대로 배우면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고 손해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중국산 미꾸라지 가격은 최근 5년간 급등했다. 2010년 8136t 수입한 식용 미꾸라지의 가격은 약 3만6000달러였다. 2012년 7789t의 수입가는 약 4만4000달러다. 이러다보니 고등어살도 갈아넣어 추어탕을 만드는 음식점에 관한 소문이 돌기도 한다. 임 박사는 “중국인들이 미꾸라지 음식을 먹기 시작했죠. 어류 중에 내수면(바다를 제외한 수면) 어종을 고급으로 치거든요”라고 한다. 최근 부는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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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곡산장’의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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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북 진안군 부귀면은 안개가 자욱했다. 김씨와 노씨 곁에는 친구 황병권(41)씨도 있었다. 그도 사업에 동참했다. 전주 금암초등학교 삼총사가 뭉쳐 ‘해오름수산’을 열었다. 황씨는 도시계획과를 졸업한 건설회사 현장기사였다. 노씨는 수조를 지을 때마다 황씨에게 도움을 구했다. 세 사람은 잘 맞물리는 톱니바퀴와 같다. 노씨가 양식기술에 전념하면 그 결과물을 꼼꼼한 황씨가 정리하고 김씨가 사업화를 위해 정부의 관계기관이나 거래처 등의 사람들을 만나 홍보한다. 노씨는 3년간 실패를 딛고 작년 토종 미꾸리 양식에 성공했다. 현재 성어로 성장하는 치어는 40만~50만마리다. 지난날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틀 걸려 수정을 하고 잔뜩 기대에 차 다음날 가보니, 달랑 2마리만 있는 거예요. 10만마리 예상했죠.” 그가 설명하는 양식 과정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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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암컷 미꾸리에 호르몬을 주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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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친어(성숙 어류)부터 구입한다. 1㎏당 4만5000원이다. 암컷은 15㎏, 수컷은 5㎏ 정도 사온다. 암컷은 사람으로 치면 배란촉진제인 호르몬을 주사해 산란을 유도한다. 미꾸리(40~45g 정도) 한마리에서 약 1만~2만개 난자가 나온다. 산란하고 살아남은 암컷에 비해 수컷의 운명은 가혹하다. 배를 갈라 정액을 꺼낸다. 자연에서 수컷은 암컷의 배를 휘감아 눌러 암컷의 난자가 나오는 순간에 정자를 내뿜는다. 인공적으로 수컷을 죽이지 않고 정자를 뽑아낼 방법은 없다. “초창기 호르몬 주사 과다나 수온이 안 맞아 많이 죽었죠.” 노씨의 말이다. 힘 좋은 암컷은 양동이가 아닌 다른 곳에도 난자를 마구 뿌려댄다. 양다리에 힘을 꽉 주고 단단히 서서 뽑아내야 한다. 미꾸리는 만만하지 않다. “많이 묻었죠. 비린 냄새 때문에 집에 가면 애들이 도망쳐요.” 황씨의 경험담이 깨알 같다. “정자를 만나기도 전에 난자끼리 붙을 수도 있어요.” 수정 뒤 40시간 후면 부화된 알들은 가로세로 3.5m에, 깊이가 91㎝인 수조에서 꼬물꼬물 덩치를 키운다. 40여일 지나면 다음 행선지는 부화장 옆에 있는, 약 991.7㎡(약 300평)의 논바닥이다. 1년 정도 지나 25g 정도로 크면 출하가 가능하다. 튀김이 되든 탕이 되든, 성장한 미꾸리의 운명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보약도 먹여요.” 노씨가 자랑한다. 논바닥에 넣기 전에 쑥이나 클로렐라, 홍삼 등을 사료에 섞어 준다. 성공비결을 재차 묻자 비밀이라며 힌트만 준다. 수정 시 난자와 정자의 비율 등, 여러 가지라고 한다.
삼총사가 마지막으로 이끈 곳은 각종 탕류가 주메뉴인 ‘대곡산장’이었다. 홍보차 중국산 미꾸라지 가격으로 ‘해오름수산’의 미꾸리를 팔았다. 주인 김영선씨에게 “해오름수산 미꾸리 맛이 달라요?”라고 묻자 예순여섯의 김씨는 “거기서 거기여” 농을 한다. 남원 등지에서 국내산 미꾸리를 가져와 재료로 쓴다고 한다. 소믈리에이기도 한 김맹준씨가 추어탕과 어울릴 만한 와인을 꺼낸다. “갖은 양념이 많은 음식은 바디감이 묵직하고 탄닌이 충분하면서 스파이시한 레드와인이 어울립니다.”
진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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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 tip
미꾸라지 양식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매년 국립수산과학원 내수면양식센터(창원시 진해구)에서 실시하는 교육생 모집에 눈을 돌려볼 만하다. 토종과 중국산 치어 양식 전반에 관한 기초기술부터 가르친다. 매년 3~4월 공고문이 뜬다. 올해 120여명이 신청했으나 80명만 교육에 참여한다. 국립수산과학원 내수면양식센터 임상구 박사는 정부의 지원이 아쉽다고 한다. 현재 미꾸리 교육을 담당하는 연구원은 6명 중 2명이다. 문의 전화 (055)540-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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