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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5 19:15 수정 : 2013.05.15 19:15

1. 근대 대전시의 태동 지역으로 불리는 소제동 거리. 일제강점기 초기에 형성된 대전역 철도원 관사마을이다.

[esc]커버스토리

상권이전·신도심 개발로
번성하던 시간대에
멈춰진 도시 원도심

근대화의 구심점에서
40~50대 향수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여행지로 변모

2. 옛 대전여중 강당.
대도시의 번화가는 건물 신축과 도로 확장, 재개발 등으로 급속한 변화를 겪는다. 도시마다 상권 이전과 신도심 개발 등으로, 공동화 현상을 빚는 원도심(옛도심)들이 남아 있다. 대개 우중충한 건물과 낡은 상가, 비좁은 골목, 빈 가게와 점집들이 늘어나는 황폐한 거리지만, 누군가에겐 애잔한 추억과 삶의 기쁨·슬픔이 깊숙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월 따라 자라난 추억은 어느새 문화와 유산이 되고 언젠가는 역사가 되어 흘러갈 터이다.

주요 도시에 남아 있는 옛 거리, 낡고 오래된 번화가들이 요즘 새삼 빛을 발하고 있다. 문화유산이 돼가는 삶의 흔적들이, 낡은 거리 골목에서 걸어나와 여행자들에게 굳은살·속살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후져서, 개발의 삽날이 비켜간 덕에 살아남은 거리 구석구석에, 온전히 또는 마구 덧칠된 채 선인들 발자취가 널려 있다. 대전광역시 옛 충남도청~대전역 사이 원도심 일대도 그런 곳이다.

3. 대전시 정동 인쇄소 골목엔 여인숙이 더 많다.
옛 충남도청 2층 난간. 좌우로 고층 빌딩들을 거느리고 대전역 쪽으로 곧게 뻗은 중앙로를 가리키며 고윤수(38) 대전시 학예연구사가 말했다. “여긴 일제강점기 직전까지 허허벌판이었어요. 경부선 철도 간이역인 대전역이 설치된 뒤 일본인들이 급속히 유입되면서 대전의 원도심이 형성됐습니다.”

옛 충남도청에서 대전역까지 1.1㎞ 길이의 중앙로는 대전 도시 근대화의 중심축이자 상징이다. 이 길 좌우 골목들에 대전 시민들 대부분의 추억과 손때 발때가 묻어 있다.

1932년 건립된 육중한 충남도청 건물(등록문화재)은 옛 건물 구조는 물론, 모자이크 유리창, 창문의 정교한 손잡이들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찬찬히 살펴볼 만하다.

4. ‘튀김소보로’로 유명한 대전 성심당 빵집.
도청 앞 길 건너편은 갤러리·카페·술집·음식점 즐비한, 대흥동 문화의 거리다. 40년 된 주택을 개조해 문 연 카페 초록지붕,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어르신들의 휴식처 산호다방, 가난한 예술가들의 안식처 구실을 했던 산호여인숙(현 게스트하우스)이 눈길을 끈다. 젊은 내외국인들이 밤새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긴다는(나라별·장르별 노래 5만곡을 자랑한다는!) 록카페 설탕수박도 여기에 있다. 거리에서 만난 한 40대 시민은 “80년대까지 이 거리 건물 지하엔 엘피판을 빼곡하게 갖춘 갤러리들이 많았다”고 했다. “음악 듣고 차 마시며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다.

맛집도 널렸다. 두부두루치기(칼국수와 함께 먹는 매운 두부전골)를 내는 오래된 식당 진로집·내집이 이 거리에 있고, 국민 엠시 송해씨도 즐겨 찾는다는 60년 된 사리원면옥(냉면)도 주변에 있다. 지붕 선이 우아한 옛 대전여중 강당(1937년 건립·문화재자료·현재 갤러리)과 한때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는 대흥동성당(1962년 건립), 성당 맞은편의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1958년 건립·등록문화재)를 보고 은행동으로 들어선다.

5. 소제동 관사마을의 한 관사.
대흥동 문화거리가 70·80의 분위기라면, 은행동은 젊음의 거리다. 거리 조명시설 공사가 한창인 으능정이(은행정) 거리엔 짧은 바지·치마 차림의 10~20대가 휩쓸고 다녀 활기가 넘친다. 으능정이란 옛날 큰 은행나무와 정자가 있던 데서 유래했다. 은행동에서 대전의 명물인 성심당 빵집(1956년 설립)의 ‘튀김소보로’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단팥소를 넣어 튀긴 고소하고 달콤한 곰보빵으로, 30~40대들에게 젊은 시절 추억이 어린 빵이라고 한다. 1인 판매 개수를 수시로 제한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대전천엔 대전의 상징물인 다리 목척교가 걸려 있다. “육이오 때 헤어지면 만날 장소도 대전 목척교였고, 문인들 술 약속 장소도 목척교였다”는 대전의 명물이다. 1912년 나무다리로 놓였다가 시멘트다리로 바뀐 뒤 지금은 곡선미 넘치는 조형물이 설치돼 거듭난 다리다. 목척교란 나무 난간(또는 상인들이 부려놓은 지게 행렬)이 마치 길이를 재는 자와 같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목척교 동쪽 천변 좌우엔 대전 시민들이 ‘전자제품’ 하면 떠올렸다는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 건물이 있었으나 철거됐다.

대전천 건너엔 100년 역사를 지녔다는 중앙시장(일제강점기 어채시장)이 있다. 시장 한편에 즐비했다는 헌책방들도, 군복을 검게 물들여 팔아 인기를 끌었다는 군용품·의류 가게들도 몇집 안 남은 모습이지만, 주단가게·생필품가게들로 상권은 여전히 유지하는 모습이다.

6. 대전 중앙시장의 포장마차.
옛 산업은행 건물(1937년 증축 식산은행·등록문화재·현 안경점) 보고 길 건너면, 한약방·인쇄소가 즐비한 정동 한약거리·인쇄소 거리다. 하지만 한약방과 인쇄 관련 가게보다는 여인숙 간판이 더 많아 보인다. 일부 골목은 온통 여인숙 간판뿐이다. 골목길을 지나자 할머니 한 분이 딴 데를 보는 척하며 다가와 속삭였다. “3만원이유.” 이곳은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다는 유곽(집창촌)이다.

인쇄소 거리는 대체로 음습한 분위기지만, 탐방객들 발길이 이어지는 맛집 골목이기도 하다. 58년 전통이라는 설렁탕집 한밭식당, 면발 굵은 칼국수와 두툼한 두부를 낸다는 두부두루치기집 별난집, 걸쭉한 국물을 자랑하는 신도칼국수와 전통칼국수, 60년 된 중국집 태화장 등이 주변에 있다. 대부분 시청에서 인증한 전통 맛집(3대·30년 인증 전통식당)들이다.

코레일 본사와 철도시설공단 건물 우뚝한 대전역에서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역 서쪽 광장에, 유명한 대중가요 ‘대전 부르스’를 기리는 ‘대전사랑 추억의 노래비’가 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대전발 영시 오십분….’ 1959년 가수 안정애가 처음 부른 뒤 1980년대 초 조용필이 다시 히트시킨 그 노래다. 2면으로 이어짐

대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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