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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2 20:20 수정 : 2013.05.2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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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커버스토리
진화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 쇼핑, 요리 등 취미 동호회로 출발했으나 일상을 공유하며 친구보다 더 친해진 가상의 공동체들이 있다.
우리만의 언어, 우리만의 웃음코드로 끈끈하게 결속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오유인(오늘의 유머 회원)을
오프라인에서 만난다면
이렇게 말을 건네보자
“그래도 안 생겨요”

거대한 떡밥이 던져졌다. 그룹 시크릿의 멤버 전효성의 “저흰 (멤버를)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발언에 여러 커뮤니티의 게시판이 들끓었다. ‘민주화’라는 말을 ‘억압한다’는 뜻의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어법으로 사용한 사건을 두고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는 전효성에 대한 공분이 들끓는 반면, 일베는 그를 ‘애국돌’ ‘계엄돌’로 칭송했다. 전효성은 “그 사이트와는 전혀 관련 없다”며 사과했지만, 아직도 오가는 가장 큰 궁금증은 ‘전효성은 과연 일베를 하느냐’는 것이다.

패션도 말도 “우리는 한 동아리”

당신은 어느 커뮤니티 소속인가. 쇼핑 커뮤니티 사이트 뽐뿌에는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서로 알아보는 단서가 여럿 있다. 이스트쿤스트 보트넥 티셔츠나 지오다노 무지 티셔츠에 하의는 종아리까지 달라붙는 청바지, 그리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백팩이 최근 이 사이트를 휩쓸고 간 ‘뽐게(뽐뿌 게시판) 패션’이다. 신발은 로퍼에 끈을 끼운 보트슈즈가 적극 권장된다. 뽐뿌 회원은 140만명. 비슷한 뽐뿌 패션으로 무장하고 휴대폰으로 번개 세일 정보를 들여다보는 뽐뻐(뽐뿌 회원)를 거리에서 마주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럴 때 인사말도 정해져 있다. 한쪽에서 먼저 “아쎄뽐”(아이 세이 ‘뽐’) 하고, 상대방이 “유쎄뿌”(유 세이 ‘뿌’)라고 답하면, 같이 “뽐뿌!”라고 외친다. 오유인(오늘의 유머 회원)을 오프라인에서 만난다면 이렇게 말을 건네보자. “그래도 안 생겨요.” 그들끼리만 통하는 유머, 그들만의 언어, 그들만의 인사법. 누리꾼이라고 다 같은 누리꾼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국경이 있다.

아침 9시, 직장인들의 출근에 맞춰 커뮤니티에 출근 도장이 찍히기 시작한다. 인터넷 조사기관인 랭키닷컴에서 뽐뿌, 일베, 오늘의 유머, 클리앙, 루리웹닷컴, 82쿡, 디시인사이드 등 7개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사해보니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에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 오전 10~12시에 가장 붐빈다. 주부들이 많은 요리 커뮤니티 82쿡은 그보다 조금 늦은 11시쯤 발동이 걸리고, 디시인사이드나 오늘의 유머 같은 유머 사이트들은 오후 4시 호황을 맞는다. 피시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랭키닷컴 패널 6만명은 대부분 앞의 7개 사이트 게시판 중 하나를 하루 10분 이상씩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를 찾아 커뮤니티로 간다

한양대학교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안종수씨는 루리웹 이용자다. 비디오게임 동호회로 출발한 이 커뮤니티는 덩치가 커지면서 애니메이션, 프라모델, 만화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보나 소재가 아니라 분위기이고 코드다. 안씨만 하더라도 게임 정보가 아닌 시사·뉴스가 주로 올라오는 종합게시판을 들여다보기 위해 루리웹에 간다. “어떤 이슈가 생겼을 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으면 커뮤니티로 간다. 포털 댓글엔 욕만 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가 궁금해서 매일 시사게시판만 들어간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피시통신 동호회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옮겨온 지 10여년, 동호회 커뮤니티는 취미를 같이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활을, 시각을 같이하는 공간이 되었다. 동호회는 정보, 취미에 집중하는 반면, 비슷한 집단들이 모여 같은 창으로 세상을 보려 하는 커뮤니티 문화는 담론을 낳는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연구해온 음악평론가 조일동씨는 “예전의 동호회는 여유로움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의 커뮤니티 문화는 생계의 불안함으로부터 만들어진다”며 “학연, 지연, 직장 관계가 불안한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커뮤니티는 어디인가. 안씨는 “90년대 소비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루리웹의 코드는 오덕(오타쿠)”이라고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향이 큰 루리웹에 가면 “닝겐노~”(인간을 뜻하는 일본말) 하며 말을 걸고, 휴대폰이 깨졌을 때는 “여기가 그곳인가요” 하며 뽐뿌에 가서 위로를 받는다. 뽐뿌에선 소비가 취미이자 지향이다. 뽐뿌에 가면 뽐뿌 말을 쓰고 루리웹에서는 루리웹 말을 쓴다. 메이저리그 야구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출발한 엠엘비파크의 자유게시판인 불펜에서 상주하는 회원들을 ‘불페너’라고 하는데 ‘불페너스러운 사람’은 ‘여러해 여자친구 없이 성적 상상만 키워가는 젊은 남자’들을 가리킨단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진보적 커뮤니티들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한 불페너는 “82쿡 누님들을 위한 조공”이라며 근육질 남자들 사진을 게시판에 올렸다. 그러나 되레 속옷 차림에 문신한 남자 사진을 여자들에게 보내는 행위 자체가 불페너스럽다는 평만 얻었다. 커뮤니티 간의 친선 도모, 결코 쉽지 않다. 30대 후반이 주축인 요리커뮤니티 82쿡 자유게시판에서는 정치, 교육, 연예인 등 친구들과 할 수 있는 수다가 꽃을 피운다. 이곳은 모금도 하고 함께 사기도 당해보고 온갖 가정사 상담도 하는 생활공동체다. 한 회원의 말을 빌리면 “생활의 무지에는 친절하지만 정치의 무지에는 불친절한 곳”이다.

‘디시 이후’ 나의 집은 어디인가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송경재 박사는 “온라인 커뮤니티 연구는 ‘디시 이전’과 ‘디시 이후’로 나뉜다”고 말했다. 2007년 디시인사이드가 하위 인터넷 문화의 대표 주자로 절정기를 구가했을 때 진보의 공간이었던 인터넷에 보수와 뉴라이트 계열 등이 끼어들어 백가쟁명, 각자의 성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문화인류학 연구자 이길호씨는 “2011년 디시인사이드에서 조사해보니 이용자 대부분 4개 이상 갤러리에서 활동하지만 당시에도 자신의 집 같은 갤러리는 1~2곳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디시 이후’ 커뮤니티의 전략은 댓글에 있을지도 모른다. 댓글 소통이 거의 없던 디시나 일베와는 달리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댓글에서 새로운 이야기와 웃음을 창조한다. 시작은 어디쯤이었을까. 인터넷 유행어 “그래도 (애인이) 안 생겨요”나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달을 가리키면 손가락만 본다는 뜻)는 댓글이 만든 유머다. 원글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원글 올린 사람을 놀려먹으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미를 이제는 모두가 안다. 댓글 토론은 천일야화다. 불펜 게시판에서는 ‘인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가축이 말이냐 소냐’(우마 논쟁),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을 것인가, 찍어 먹을 것인가’(탕수육 붕당정치)를 두고 끝없는 논쟁이 펼쳐졌다. 이렇게 몇날 며칠 말을 섞으며 밀착한다. 현실에서도 가끔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멱살잡이가 시작되지만, ‘루리웹 3대 대첩’ 중 하나라 불리는 새우대첩 사건에선 한 회원이 값싸고 맛도 좋다며 새우튀김 사진을 올렸다가 “시켜 먹지 말고 직접 요리해 먹으라”는 댓글을 올린 사람과 싸움이 붙었다. 한 블로거는 이 사건을 전하며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걸로 찌질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나도 이러고 논다”고 덧붙였다. 찌질하게, 때론 심각하게, 커뮤니티에서는 모두 이러고 논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나없이 가지 마라” 게시판 생활백과

※ 필수 용어는 각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나는 불페너다” 김별아 소설가

“스포츠 관련 사이트를 즐겨 찾다 보니 야구 커뮤니티인 엠엘비 파크에 드나들게 됐다. 순하고 귀여운 남성 커뮤니티 문화가 있다. 불펜에서 기억에 남는 회원은 자기가 먹는 모든 음식에 만두를 넣어 먹는 일명 ‘만두총각’. 혼자 사는 젊은 친구들이 자기 밥상을 사진 찍어 인증하는 것을 보면서 젊은 세대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밤이 되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하는 성적인 이야기도 솔직하고 귀엽다. 내 마음에 맞는 커뮤니티에 앉아서 다른 커뮤니티에서 퍼오는 패러디물이나 댓글을 본다.”

코드명 | 미섹사(미미한 섹골 사이트)

주요 이슈들 사이로 야동 문의 등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을 이렇게 표현. 자위행위 하다가 망신당한 이야기, 딸바보(딸딸이 좋아하는 바보), 고딸성사(고해성사) 등이 단골 주제.

필수 용어

COB(Curse of Bullpen, 불펜의 저주) 여친과 잘된다며 염장을 지르는 글이 있으면 댓글들이 어김없이 COB를 날린다.

그린라이트 야구에서 벤치의 지시 없이 주자가 도루해도 좋다는 사인. 불펜에서는 여자한테 들이대도 좋을 상황 또는 들이대도 좋다는 여자들의 호감을 의미.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자기 집 앞에서 유지태에게 “라면 먹고 갈래요?” 묻는 장면이 그린라이트의 좋은 예. 그린라이트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연애경험 부족한 불페너의 특징 중 하나.


“나는 디시 갤러다” 이말년 만화가

“투박하고 단순한 인터페이스에 한번 길들여지면 디시를 끊기는 어렵다. 리그 오브 레전드, 마구마구, 만화, 국내 야구 갤러리 등 4곳을 주로 간다. 만화가가 된 이후에는 눈팅족이 됐지만 가끔 정말 재미있는 만화를 보면 나도 모르게 칭찬 댓글을 달 때가 있다. 주로 이렇게. “ㅋㅋ짱짱맨ㅋㅋㅋ” 디시에는 아기들이 많아서 즉흥적으로 말하고 자신도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올리는 인상이다. 대신 재기발랄하다. 악질적이든 건전하든 막 쏟아내고, 막 지른다. ”

코드명 | 불타는 커뮤니티의 연대기

한물갔다, 전만 못하다, 말이 많지만 디시 인사이드는 여전히 하루 46만명이 찾는 대형 커뮤니티이다. 분야별 갤러리 1450개가 모인 거대한 커뮤니티는 자치구처럼 굴러간다.

필수 용어

디시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섣불리 남의 갤러리 와서 고나리(관리의 오타)하려다가 욕만 먹고 쫓겨나는 초갤(초보 갤러)들이 많다는 것이다. 찻내(카페 냄새, 바른말 하며 훈수 두려는 선비질과 비슷한 말) 풍기는 눈새(눈치 없는 사람)들도 노잼(재미없음). 디시에서 유행어 찾는 것은 무리수다. “우왕ㅋ굿ㅋ” “레알~” 같은 말은 디시에서 시작해 지금은 모든 커뮤니티에서 다 쓰고 있다. 다른 커뮤니티는 가끔 쓰지만 디시에서는 오직 외계어만으로 쓴 글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함정.


“나는 클리앙이다” 김남훈 프로레슬러

“처음 클리앙이 생겼을 때부터 드나들기 시작해서 지금도 하루 2~3번은 클리앙에 들어간다. 소니 피디에이인 클리에 사용자 모임으로 출발한 커뮤니티지만 지금은 전자기기 리뷰보다는 30~40대 남자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좋다. 커뮤니티에서는 비슷한 감성을 가진 회원이 많다. 작년 한 유명한 회원이 미국에서 돌아가셨는데 한국에서 클리앙 회원끼리 모여서 추모제도 올리고 서로 얼굴도 봤다. 클리앙은 그런 곳이다. 차가운 디지털 제품을 다루지만 따뜻한 인간애가 있는 곳.”

코드명 | 코스트코

접근성이 떨어지고 감수할 것이 많지만 그곳에서 파는 제품은 평판 이상은 한다. 게다가 통이 크다. 클리앙 중고 장터에서 아파트, 배, 포클레인도 팔린 적이 있다고.

필수 용어

존댓말 클리앙에 갈 땐 존댓말을 챙겨 가야 한다. 예의도 챙겨 가야 한다. 다른 커뮤니티에서 “너, 따라 나와” “닥쳐”라고 할 만한 상황에서 클리앙은 이렇게 말한다. “본인을 돌아보세요.”

현직 처음엔 자신은 뭐 하는 사람인지를 밝히면서 글에 신뢰와 권위를 덧붙일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너도나도 현직을 자처하자 “지금은 현직 카페입니다” “현직 쌍둥이 아빠입니다”처럼 지금 어디서 뭐 하는지를 알리는 말이 됐다.


“나는 82쿡 죽순이다” 김지연 교사

“스트레스가 쌓일 때 커뮤니티에 가면 다른 사람들의 더 심각한 고민을 보면서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면서 위안을 받거나 내 고민을 잊는다. 아기가 어린데 남편이 암에 걸려 죽어가는 주부, 형제들에게 돈을 떼이는 사람도 여럿이다. 커뮤니티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현실에선 욕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하지만 남이 당한 일을 보면서 함께 욕할 수 있는 것이 여성 커뮤니티의 가장 큰 장점이다. 수다만 떠는 것 같지만 지난해 문화방송 파업때는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아 지원하기도 했다(사진).”

코드명 | 언니들의 탈무드

인간관계·결혼·직장생활에 대해 상담하는 글에 대해 주옥같은 댓글이 달리는데 현실 적중률이 99.9%라는 정평. 요즘에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수술과 집도가 대세.

필수 용어

상간녀 남편과 바람피우는 여자를 가리키는 말. 불륜 대처법부터 행복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는 세계관까지 전수된다.

똥차 가면 벤츠 온다 똥차를 가리려면 “결혼 전에 힌트 준다” “결혼할 때 부록이 뭔지 확인하라” 를 새길 것.

효도는 셀프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후안무치 시집과 남편을 향한 충고. “욕이 배 뚫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여자들도 태도를 바꿔야 한다. “착한 여자는 죽어서 천당 가고 나쁜 여자는 살아서 어디든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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