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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9 19:49 수정 : 2013.05.30 16:15

1. 제주 한수풀해녀학교에서 물질 실습중인 학생들.

[esc]라이프
남은주 기자의 제주 해녀학교 체험기

시련은 이제부터였다
“계속 물만 들여다보고 있을 거야?
쑥 들어가라, 쑥”
누가 등짝을 후려친다

“소라가 코앞에 있는데 왜 따지를 못하니, 왜 따지를 못하니….” 한시간째 바다에 잠겨 헛손질만 하고 있는 내 심정은 <운수 좋은 날> 김첨지가 따로 없다. 마음은 바다 밑에 잠겨도 몸은 부력의 법칙을 이기지 못하니 소라든 미역이든 자꾸 내 손을 빗나가기만 한다. 물 밖으로 고개를 들면 다른 해녀들이 소라를 캘 때마다 환호하는 소리가 쟁쟁하다. 이곳은 한수풀해녀학교 수업이 열리는 제주 한림읍 귀덕리 앞바다다. 지난 25일, 해녀가 되고 싶은 학생 70명의 수업에 끼어든 하루짜리 청강생이 되어봤다.

2. 한림읍 귀덕리에 위치한 한수풀해녀학교. 이곳에서 이론교육을 받은 뒤 바다로 나간다.

해녀노래 부르며 1교시

“온 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고/ 파도 세고 물결 센 저 바다를 건너가/ 기울산 대마도로 돈벌이 가요/ … / 가이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낮 12시, 강당에 모여 ‘해녀노래’를 따라 부르며 해녀학교 4번째 수업이 시작됐다. 70년 전 항일운동에 나섰던 해녀들의 노래를 부르노라니 ‘파도 세고 물결 센 저 바다’에 뛰어들 오늘 하루에 대한 시름이 절로 올라왔다. 푸껫에서 스노클링하다 구조된 이후, 물에만 들어갔다 하면 망신살이었다.

진짜 해녀들은 보통 9월에서 이듬해 3월 봄까지 몰아치는 북서풍으로 바다가 잔뜩 성이 났을 때 바다에 뛰어든다. 4월부터 8월까지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지면 애기군이라 불리는 초보 해녀들이 물질을 배우기 좋은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어찌 됐든 제주 바다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사리기간이 가까워진 이날 방파제 앞 깊은 곳은 4m가 넘었다.

잠수복과 테왁, 이것이 해녀가 가진 전부다. 산을 오르다 보면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처럼, 잠수복을 입다 보면 바로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부터 하게 된다. 물에 뜰 수 있는 둥그런 공을 테왁이라 하는데 테왁에는 해산물을 넣을 수 있는 그물주머니 망사리가 달려 있다. 노련한 해녀들은 좀망사리라는 작은 그물을 허리에 따로 차기도 한단다.

처음에는 태왁을 잡고 먼바다로 천천히 헤엄쳐 나갔다. 해녀학교는 매년 5월 첫째 주부터 8월 마지막 주까지 열리는데 처음엔 인공호흡법과 심폐소생술을 배우자마자 바다 위에 드러눕도록 한다. 긴장을 풀고 바다에 몸을 띄우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다. 일렁이는 물결 위에 내가 어떻게 떠 있는지 나도 궁금했다. 물 아래 울퉁불퉁한 바위를 떠올리기가 무섭게 몸의 한쪽이 가라앉는다. 키를 훌쩍 넘는 깊은 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을 아예 잊어야 한다.

3. 4번째 현장 실습에서 따온 소라를 내보이는 수업 참가자.

숨비소리 내는 2교시

해녀학교 강사가 쫓아왔다. 구하러 온 줄 알았더니 ‘그냥 떠다녀선 소용없다’며 얼굴을 바닷물 깊이 담갔다가 물을 뱉어내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해녀들은 산소통도 호흡기도 없이 깊은 바다에 잠겨 숨을 참았다가 물 위로 쳐들면서 ‘호오이 호오이~’ 휘파람 같은 숨비소리를 낸다. 참았던 숨이 들어오는 소리고 동기들을 부르는 소리다.

이날 같이 물에 뛰어든 해녀학교 하루 동기생들은 눈으로 보기에도 다양했다. 10년 전만 해도 제주도 해녀가 1만5000명이라 했는데 작년에 헤아려보니 5000명이 못 된다. 그중 60살 이상이 80%를 넘는다. 해녀들은 빠른 속도로 나이먹는데 이을 사람이 없다. 해녀들이 캐온 미역귀를 먹고 자란 해녀의 아들 임명호(55)씨는 2008년 처음 한수풀해녀학교를 열었다. 임명호씨와 물질 30년을 넘긴 마을 해녀들이 강사로 나섰다. 소문은 바닷바람을 타고 퍼졌다. 올해 해녀학교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20명, 외국인들도 6명이다. 창원에 사는 이정자(54·주부)씨는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제주행 비행기를 탄다. 이씨는 “물질을 배워서 문어를 캐겠다는 목표가 있다. 해녀가 되면 남해안 해산물은 내가 접수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제주도 사람들을 포함해 해녀학교엔 남자도 17명이다. 제주에 1년가량 머물고 있는 만화가 빡세(35)는 “술 마시다 안주가 필요할 때면 바다로 들어가 건져오겠다”는 야무진 희망으로 물에 뛰어들었다. 포털사이트 네이트에 <제주한량기>를 연재하는 그는 물질을 익혀 진짜 제주한량이 되어보겠다는 각오다.

시련은 이제부터였다. “계속 물만 들여다보고 있을 거야? 쑥 들어가라, 쑥.” 누가 등짝을 후려친다. 이날 강사로 나선 한 해녀 할머니다. 아까 육지에선 허리를 굽히며 걸어다니더니 물에 들어오니 펄펄 날아다닌다. 시범을 보여주는데 테왁을 놓고 머리를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듯 넣어야 한단다. 우물쭈물 묻는다. “힘을 주고 거꾸로 서면 되나요?” “그럼!” 그러나 테왁을 놓는 순간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갑자기 해녀 선생님이 물속으로 내 머리를 처박았다. 그때 나는 바닷속 깊은 얼굴을 보았다. 육지 계곡을 닮았다. 어떤 곳은 얕지만 어떤 곳은 한없이 깊다. 머리를 처박혔는데도 소라가 웅크린 계곡 바닥은커녕 파래가 우거진 얕은 바위에도 손이 닿지 않았다. 먹먹해진 귓속에서 쉬잇쉬잇 소리를 내며 바닷물이 부르고 있었다.

왜 더 깊이 가라앉지 못할까. 그건 당연히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 위로 올라와 테왁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자 물속에서보다 물을 배로 먹었다. 나는 자맥질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켜본 사진기자의 말로는 물 밖으로 엉덩이만 수없이 들락날락했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의 망사리가 조금씩 채워질 무렵에도 내 물질은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이렇게 해녀가 되지 못하고 마는 것인가. 1리터는 들이켰을 법한 제주 바닷물맛이 눈물맛과 비슷한 것은 기분 탓일 테다.

4 남은주 기자가 긴장을 풀기 위해 바다에 드러눕는 연습을 하고 있다.

바다문을 더듬는 3교시

임명호씨가 ‘좋은 구경 시켜준다’며 내 테왁을 잡아끌었다. 부표 너머로 헤엄쳐 나가 바닷속을 들여다보았다. 몇년 전 이곳에 제주 해녀상을 만들어 물속 깊이 빠트렸다고 했다. 그 옆에는 제주의 전통 대문인 정낭이 바다 깊이 잠겨 있었다. 돌기둥 두개에 구멍을 뚫어 나무 막대 서너개를 끼운 정낭은 울타리 구실을 한다. 바닷속에 우리 동네 바다라는 표시를 해둔 것이다. 임씨는 “한라산 골프장물이 1시간이면 여기로 온다”고 했다. 대책 없는 리조트 건설과 하천공사로 흙탕물이 바다로 쓸려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낭은 바다로 가서는 안 될 것들을 막는 상징적인 저지선인 셈이었다. 나는 오늘 해녀가 되지는 못했지만 바다문을 넘었다.

임씨를 따라 해녀상을 만져보려 하는 순간 갑자기 다리에서 쥐가 올라왔다. 수업이 끝날 때쯤 빈 테왁을 들고 구조되었다. 뭍으로 올라와보니 4번째 수업을 마친 동기들의 망사리에서는 소라가 하나둘 튀어나왔다. 제주 바닷물은 내 손엔 잡히지 않고 고스란히 빠져나가 버렸다.

제주/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제주 해녀의 모든 것

한수풀 해녀학교

매년 4월초 제주전통문화보존회에서는 한수풀 해녀학교 카페(cafe.daum.net/jejudiver)를 통해 입학생 모집공고를 낸다. 78명을 뽑은 6번째 해녀학교에 입학신청서를 낸 사람은 164명.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떨어졌고, 재수, 삼수를 해서 들어온 사람들도 있단다. 신청서를 꼼꼼히 성의있게 쓸수록 합격률이 높아진다. 수업료는 없지만 2번 이상 수업을 빠지면 바로 퇴교다. 해녀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바로 해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해녀학교를 거쳐간 사람 205명 중에 15명만이 해녀가 됐다. 마을 사람으로 인정받을 때 지역 어촌계에 가입할 수 있다.

해녀 물질 시연

제주도 섭지코지의 아쿠아리움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선 매일 제주 해녀의 물질 모습을 볼 수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 해녀 16명이 매일 돌아가며 깊이 9m여 수조에서 오르락내리락 물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녀 물질 시연은 오전 11시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하루 4회 진행된다.

숨비소리길

구좌읍 하도리 4.4㎞ 길이의 숨비소리길은 해녀들이 바다 일을 가거나 들일을 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다. 옷을 갈아입고 불을 쬈던 불턱, 조간대에 돌담을 쌓아 안에 갇힌 물고기를 잡았던 원담 등의 유적이 남아 있는 이 길에서는 9월이 되면 해녀들의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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