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29 20:06
수정 : 2013.05.29 20:06
|
1 더운 한낮 방비엥 중심 거리는 한산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 마을을 둘러보기 좋은 때다.
|
[esc]여행
라오스 여행자들의 새 집결지로 떠오르는 강촌도시를 가다
라오스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관광객의 손앞에 놓인다
사람들은 마음껏
종유석 기둥을 비추고 더듬으며
어두운 동굴을 탐험한다
메콩강도 라오스에서는 걸음을 늦춘다. 우기가 시작되어 강물 흐름이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강을 따라 걷노라면 사람의 발길이 앞선다. 라오스 여행을 나선 지 셋째 날, 메콩강을 거슬러 방비엥을 찾아나선 길이다.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을 떠난 지 1시간쯤 되자 버스는 푼홍을 지났다. 공항이 없는 도시 방비엥은 버스로 가야만 한다. 푼홍에서 75㎞ 거리에 방비엥이 있다. 한국에서는 1시간 거리지만, 비탈진 산길을 돌아가다 보면 2시간이 후딱 지난다.
|
2 칠흑같이 어두운 탐남 동굴은 손으로 더듬으며 여행해야 한다면 그 옆 탐상 동굴엔 빛이 들어오는 자리에 불상이 앉아 있다.
|
소수민족 마을로 둘러싸인 방비엥
고도 450m. 흐린 날이면 구름이 발아래 잠기기도 하는 산길 갈피마다 독특한 사람살이가 깃들어 있다. 지하에서 물을 끌어올려 소금을 생산하는 방끈이라는 소금마을, 남능(남응움)호에서 잡은 물고기로 젓갈을 담그는 젓갈 마을이 그랬다. 우연히 들른 몽족 마을은 그에 비하면 평범한 고산지대 소수민족 마을이다.
134개 민족이 모여 사는 라오스에서 몽족은 대표적 소수민족이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면 몽족을 독립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베트남전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부역했다가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한 뒤 라오스 산간지대로 숨어들었다.
37℃를 쉽게 넘나드는 찌는 듯한 더운 날씨, 몽족 마을 사람들은 짚으로 엉성하게 지은 흙집에 모여 있었다. 100여가구가 사는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화전을 일구거나 산속 깊이 들어가 바나나, 돼지감자, 나무 열매를 따서 팔기도 한단다. 빈손이 무색해 커다란 과자 한봉지를 샀더니 마을 아이들이 금세 몰려들었다. 그중 한 여자아이는 낯선 방문객이 주는 과자를 받고는 안 받은 척 또 줄을 선다. 아이다운 욕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이는 과자를 받을 때마다 엄마한테 뛰어간다. 아이에겐 책임져야 할 식구가 많았다. 맨발로 산길을 숨차게 뛰어오르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어린 시절 친척집에 갔을 때 ‘차비 하라’며 용돈을 쥐여 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혼자서 아이를 여럿 키워온 엄마에게 보탤 수 있다는 생각에 숨이 차는 줄도 모르고 달려갔다. 아이야, 달려라. 얼른 엄마한테 가렴.
1인당 국민소득 750달러. 라오스는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마을 이장이 통치하고 주민들이 경쟁하지 않는 나라에서 사람들의 낯빛은 평화롭고 솔직하다.
|
3 바다가 없는 라오스 시장에는 강에서 잡아올린 물고기에 토막내서 파는 도마뱀 등 해산물을 대신할 거리들을 판다.
|
느린 흐름 안은 도시
‘강촌’이라는 뜻의 방비엥은 땀과 눈물을 씻기에 좋은 도시다. 방비엥 중심 거리에서 차로 30분 거리 안에 석회암 절벽이 둘러선 강가에서 카약이나 동굴 탐험, 낚시에 나설 만한 곳이 지천이다. 방비엥 터미널에서 10㎞ 거리에 있는 탐장 삼각지대에서는 오랫동안 강물이 절벽을 적셔 만들어진 종유석 동굴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반쯤 물에 잠긴 탐남 동굴은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체험이다. 500m 길이의 캄캄한 동굴 속으로 튜브를 타고 들어간다. 동굴에는 자칫 길을 잃지 않도록 긴 줄이 드리워져 있다. 튜브에 몸을 담그고 머리 위 줄을 잡아당기며 천천히 앞으로 들어가는 것이 요령이다. 물이 끝나는 곳에서 종유석 기둥을 만난다. 몇천년 묵은 물의 결정체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라오스 여행을 하다 보면 위험하게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이 관광객의 손 앞에 놓이는데, 이곳도 그랬다. 사람들은 마음껏 갖가지 모양의 종유석 기둥을 비추고 더듬으며 어두운 동굴을 탐험한다.
카약이나 동굴 여행은 방비엥 중심가에 있는 여행사에서 시작된다. 트럭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잠시 달리면 작은 강을 만난다. 나무를 몇개 걸쳐놓은 다리를 지나는 동안 대나무 가지나 그물을 들고 강으로 가는 아이들을 만났다. 많이 잡은 아이들이 적게 잡은 아이들에게 나눠준단다. 그 마을 출신 가이드가 땡볕 아래 허리를 굽히고 풀을 뽑는 동네 할머니를 만나자 돈을 드리는 것을 보기도 했다. 친척도 아니지만 같은 마을 노인들에게 자신이 번 것을 나눠주는 일은 흔하단다.
몇년 전만 해도 방비엥 강변에 다이빙대를 설치하고 줄을 달아 타잔처럼 줄을 잡고 뛰어내리는 스윙점프가 유행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강으로 뛰어드는 위험한 불장난을 즐기던 외국 관광객들이 목숨을 잃은 뒤 스윙점프는 금지됐다. 대신 사람들은 몇시간이고 카약이나 튜브를 타고 강을 따라 흘러다닌다.
강이 느린 것은 넓고 얕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높일 요량으로 노를 세워 젓다 보면 강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급할 것은 없다. 어쨌거나 송강은 메콩강으로 간다. 늦은 오후 지나가는 카약을 보면 목욕하던 라오스 여자들, 어린 탁발승들은 손인사를 건넨다. “싸바이디!”(안녕하세요)
|
4 마을과 마을을 가르는 송강은 고기를 잡고, 물을 대주는 방비엥의 젖줄이다. 송강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
|
라오스에 없는 것
게스트하우스와 식당, 여행사들이 둘러싼 방비엥 중심 거리는 밤늦게까지 북적이지만 그곳을 벗어나면 라오스 사람들이 살아가는 원풍경을 간직한 시장과 마을이 있다.
라오스엔 없는 것이 많다고들 한다. 우체국은 있지만 우체부가 없어서 편지는 직접 찾으러 가야 한다. 철도가 없는 탓에 1990년대 개혁개방 정책 이후에도 경제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도 물론 없다. 몇해 전 나온 여행 안내서에선 시장에서 흥정이 없다고 했는데 더는 그렇지 않았다. 대신 상인들은 수줍게 비싼 값을 불러놓고는 손님들이 의아해하면 비밀을 들킨 사람들처럼 얼른 가격을 내려놓는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급히 깎는 대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바다가 없는 라오스 사람들은 해산물에 대한 갈증이 있단다. 우리 멸치와 비슷한 것을 한봉지 가득 담아 2달러, 물소 껍질 말린 것은 한묶음에 5달러에 판다. 이때 같이 국물을 내는 것이 누앙이라는 재료다. 생긴 것도 향도 헛개나무를 닮았다. 시장에서 닭이 빠질 수는 없다. 조롱에 2~3마리씩 들어 있는 닭들이 생생하다. 한 시장 상인은 가축을 좀체 가둬 기르지 않는 탓에 살집은 적지만 냄새가 나지 않고 쫄깃하다고 자랑이다. 앞서 들렀던 루앙프라방 새벽시장에선 커다란 도마뱀이며 말린 박쥐며 작은 벌레 등 우리에겐 낯선 먹을거리가 좌판에 잔뜩 놓여 있었지만 방비엥은 우리 시골 시장에 가깝다. 우기가 시작되는 지금은 망고를 먹을 수 있는 끝물이라 망고 좌판에 사람들이 몰렸다. 방비엥에서 방콕, 프놈펜, 하노이로 갈 사람들은 오랜 시간 버스를 타기 전에 시장에서 먹을거리들을 챙긴다.
라오스 여행 마지막 날 비엔티안으로 돌아와 여전히 멈춰있는 듯 흐르는 메콩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메콩강 건너편 타이의 국경도시 농카이에 번개가 내려치지만 비엔티안 쪽은 쾌청하다. 메콩강에서 타이 쪽을 건너다보는 동상의 주인공은 18세기 말 타이 저항운동을 이끌었던 아누 왕이다. 아누 왕은 여러 차례 타이를 공격했지만 결국 모두 지고 타이로 끌려가 생을 마쳤다는 비운의 왕이다. 왕의 동상은 타이 쪽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고 있다. 라오스에서는 불상도 모두 손을 앞으로 뻗고 손바닥을 보여준다.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이제 그만!” 하며 선수들을 말리는 모습이다. 패한 자와 밀려난 자, 떠나온 자들이 함께 어울려 땀을 씻어내는 이곳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방비엥·비엔티안(라오스)/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제공 라오항공
|
방비엥 여행 정보
가는 길
방비엥으로 가려면 수도인 비엔티안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가깝다. 인천공항에서 비엔티안까지는 직항은 진에어와 라오스 국적 항공사인 라오항공(laoairlines.co.kr)이 취항하고 있다. 라오항공은 주 3회 운항중이며 7월15일부터는 매일 운항할 예정이다. 비엔티안에선 3시간30분, 루앙프라방에서 온다면 6시간30분이 걸린다.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으로 올 때는 왼쪽에 앉으라고들 한다. 왼쪽에서 입을 벌린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가 죽 늘어선 사이로 라오스의 구름과 산이 얽힌 풍경을 만나게 된다.
묵을 곳
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하는 중심가 칸몽로에는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저렴한 숙소가 죽 늘어서 있고 대부분 예약 없이도 머물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는 보통 10만~20만키프(1만5천~3만원) 정도이다. 등급을 매길 수 있는 호텔은 없지만 최근 송강을 따라 자연풍광을 업은 작은 호텔들이 들어섰다.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타베속 호텔은 카약을 타고 지나치는 강변에 있어 최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호텔이다. 칸몽로 근처에 있는 여행자를 위한 정보 센터를 찾으면 숙소 정보와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구할 수 있다.
먹을거리
“방비엥에서는 무엇을 주문해도 기본은 한다”고들 한다. 반대로 “무엇을 주문하든 어차피 맛은 똑같다”고 하는 여행 안내서도 있다. 노천식당 아무 곳에 들어가든 줄잡아 30가지 이상의 메뉴를 볼 수 있는데 대부분 국수 종류다. 아침 식사로는 간단한 바나나 팬케이크나 샌드위치를 판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인 비원식당은 해질녘 전망이 좋다.
|
|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