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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농촌물들이 기발한 농업 콘텐츠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사진은 웹툰 <이장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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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라이프
귀농에 대한 고정관념 깨는 웹툰 <이장본색>과 리얼 시골생활보고서 <맨땅에 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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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맨땅에 펀드>를 합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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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의 능력이다
그렇게 밭으로 간
왕년의 클릭족들이
죽어나간다는 사실도
감추지 않는다 양복 쫙 빼입고 경운기를 몰고 등장한 젊은 이장, 전국민을 대상으로 펀드를 모집한 가짜 이장. 실제 상황은 아니다. 만화와 책에서만 나온 이야기다. 그러나 지난해 귀농·귀촌을 택한 사람들은 2만7000가구. 시골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고 조용히 숨어드는 대신 마을 풍경을 바꿔보겠다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명랑한 농촌생활을 꿈꾸는 이 농촌 코믹물 두 편의 주연은 모두 마을 이장들이다. ‘초농력자’ 이장을 길러내는 웹툰 <이장본색> 농사, 아무나 짓는 게 아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하는 웹툰 <이장본색>은 농사에 필요한 힘, 농력의 광활한 세계를 그린다. 일등을 놓쳐본 일이 없는 ‘서울특별시 소속’ 주인공 최고봉은 이장이 되겠다며 보무당당 마을로 들어오지만 주민들은 코웃음조차 치지 않는다. 한가로이 풀이나 뜯는 소조차 괴력을 자랑하는 동네 대왕리다. 이곳에선 이장을 투표로 뽑는 것이 아니라, 마을 원로들의 추천을 받은 사람들끼리 농력을 가리기 위한 대결을 펼친다. 오랫동안 이장을 독점해온 이장만과 물갈이를 꿈꾸는 마을의 귀준 형님 사이에 뛰어든 주인공이 농력의 후계자로 커간다는 줄거리다. 이장이 뭐길래? 좋게 말하면 마을 대표지만, 알고 보면 연봉 300만원에 마을 궂은일은 모조리 도맡는 자리, 벌써 15년 전 방영됐던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서조차 “이장, 그거 해봤자 힘만 들고” 하며 모두 뒤로 물러나 앉았던 자리가 아니던가. 그런데 만화에선 차기 이장을 꿈꾸는 주인공에게 마을 형님은 이렇게 말한다. “자네, 이장을 노리는 사람이 이장이 뭔지도 모르는가? 이장이란 자네의 빌어먹을 팔꿈치처럼 사람을 아프게도 할 수 있는 자리라네.” 그래서 주인공은 벼농사를 기본으로 다른 농업기술을 최고 레벨로 높이기 위한 특별 수련에 돌입한다. 그렇다고 이 만화가 ‘농자천하지대본’ 사상을 기본으로 농사의 힘듦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만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직 이장 이장만은 아침 일찍 마을 사람들에게 삽을 들려 일을 시키며 “즐삽!”을 외치고 주인공은 마을 오리 이쁜이와 사랑에 빠져 툭하면 얼굴을 붉힌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젊은 처자 수리는 알고 보면 노인 페티시가 있다. 농사의 기본기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장풍을 쏘아 꽃을 피워내는 만화를 보며 누리꾼들은 “이것은 병맛을 넘어선 초병맛 농업 웹툰”이라고 질타했다. 그런데도 많은 댓글이 “이 만화를 보면 왠지 귀농하고 싶다”는 것은 수수께끼다. 평화로운 이미지의 동네 이장을 ‘초농력자’로 그려낸 만화가 지상민(34)씨는 농촌에서 공익근무하던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렸단다. “그때 만난 이장들은 만화 속 귀준 형님과 비슷한 캐릭터가 많았다. 자기가 짓는 농사 말고도 다른 작목, 축산업까지도 잘 안다. 문제가 생기면 마을 사람들이 이장에게 달려가서 의논하는 것은 그 때문”이란다. 족발집 배달원을 하던 지씨는 이 만화로 다음 공모전에 당선돼 다시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시골 생활 리얼 보고서 <맨땅에 펀드> 이번엔 농사도 짓지 않는 이장님이다. 지리산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지리산닷컴(www.jirisan.com)이라는 사이트에서 ‘이장’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중인 권산씨는 얼마 전 지리산닷컴 1년의 활동을 소개한 책 <맨땅에 펀드>를 냈다. 전직 웹디자이너였던 그가 전남 구례로 귀촌한 지 6년, 2010년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을 내며 ‘귀농 없는 귀촌시대’를 알렸던 그다. 지난해 봄, 지리산닷컴은 ‘땅과 사람 이야기에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100명의 투자자에게 30만원씩을 받는 ‘맨땅에 펀드’를 시작했다. 돈을 먼저 받아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나누는 방식으로 시골에 작은 일자리와 유기농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가짜 이장 권산씨는 책에서 “지리산닷컴은 투자자가 입금도 하기 전에 오미동 텃밭 3300㎡와 파도리 감나무 밭을 덜컥 빌려 유기농 비료로 소똥 60만원어치를 쏟아붓는 위험충만한 투자를 일삼았음”을 고발한다. 가짜 이장이 하는 일은 이렇다. 그는 밭에서는 기껏해야 “자주감자 똥구멍 자르는(종자로 쓰일 씨감자를 마련하는) 보직을 명받은” 입농사의 대가지만, “카메라도 농기구, 스마트폰도 농기구”라 우기면서 일년 농사를 시시콜콜 전달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다. “시골, 어디나 다 똑같지.” 귀촌한 사람들에게 마을 이야기를 물으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호미를 손에 드는 순간, 들판은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면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단다. 그러나 <맨땅에 펀드>에선 욕설 달인 대평댁을 비롯해 “농사, 그렇게 지으면 안 된다”는 폭력적인 컨설팅을 일삼는 마을 사람들의 캐릭터가 감자 캐듯 줄줄이 달려나온다. 매일 똑같은 땅, 그게 그거인 농부들이 이야깃거리를 들고나온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는 시골살이’ 재미로 도시 사람들을 꾀는 것이 (가짜) 이장의 능력이다. 그 말에 넘어가서 구례산 밭에 선 왕년의 클릭족들이 죽어나간다는 사실도 감추지 않는다. “호랭이 똥구녕을 씹어불란게.” 현실에서도 마을 이장들은 조금씩 달라진다. 얼마 전 제주 소길리 한 마을에선 처음으로 외지에서 새로 온 사람이 이장이 되었다. 귀농·귀촌 세대들에겐 나이 들어 흙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관행에 시비를 걸고 싶은 사람들도 시골로 간다. 그들이 뿌리는 종자는 모양새가 조금 별나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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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55)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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