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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3 21:14 수정 : 2013.07.04 15:48

‘프랑스 시골풍의 테린’

[esc]‘웰 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들
뮤지션과 요리사가 말하는 나의 장례식

글쎄 난 가을을 좋아하니, 어느 화창한 가을날 바싹 마른 따듯한 풀밭 위에 향긋한 술내음 풍기며 예쁜 낙엽처럼 쓰러지겠지. 청량한 가을바람에 옷깃은 바스락거리며, 추억들은 하나둘 바람에 실려가겠지. 아마 어디선가 에릭 클랩턴의 ‘오텀 리브스’가 흘러나올 거야. 무거웠던 육신이 가벼워지면서 난 편안해지겠지. 그리고 이제 시력 따윈 걱정하지 않고 파란 하늘과 빨간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겠지. 그러면 아마 삶의 회한과 덧없음을 느끼고 아름다운 추억들 때문에 미소를 머금고 눈가는 촉촉해지겠지. 세상이 하얘지면서 추억들이 바람에 책장 넘겨지듯 촤르르 펼쳐질 거야.

난 다시 눈을 감고 추억들을 잡으려 ‘꽃을 잡고’(한영애), 잘나갔던 ‘청춘’(산울림) 시절로 돌아갈 거야. 크라잉넛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말이야. 3만번도 더 불렀을 ‘말달리자’(크라잉넛)를 마지막으로 들으며 ‘씨익’ 웃겠지.

어디선가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오고, 나의 육신은 깨끗이 씻겨진 뒤 어느 장례식장에 누워 있겠지. 난 영정사진을 엄청 익살스러운 사진으로 걸어놓고 싶어. 그래야 조문객들이 피식 웃으며 조의금을 더 낼 것 같으니깐….

내 장례식장에선 ‘맥 더 나이프’(브라이언 세처 오케스트라)같이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으면 좋겠어. 아니 아예 밴드들이 신나게 공연하고 사람들은 춤추고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어. 그래서 매년 내가 죽은 날짜에 록페스티벌을 여는 거야. 최고의 록페스티벌을 만들어서 후배 로커들 개런티도 두둑이 챙겨주고 남은 수익금은 불우이웃들과 아이들을 위해서 쓰는 거야. 그러면 적어도 즐겁고 마음 따듯하게 나를 기억해줄 수 있겠지.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가고 잠든 새벽녘 장례식장에서는 아픈 옛사랑의 후회와 슬픔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빛과 그림자’(장사익)를 들을 테야. 아마 울겠지. 그리고 차분해지면 동심으로 돌아갈 거야. 어렸을 적 엄마가 마이클 잭슨의 ‘벤’을 들려주며, “<벤>이라는 쥐와의 우정을 그린 공포영화가 있는데 음악은 정말 아름답다”고 하시던 얘기를 생각하며 또 한번 미소짓겠지. 어린 시절에는 정말 귀여웠었는데, 산울림의 그 ‘꼬마야’처럼…. 마지막으로 화장이 끝나고 연기로 피어날 땐, ‘밤이 깊었네’(크라잉넛)가 흘러나오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 안아주길….

크라잉넛 한경록


평소에는 모른 척, 머릿속 한 귀퉁이에 밀어 넣고 살던 죽음을 떠올려볼 때가 있다.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다. 검은 양복을 꺼내 입고, 검정 구두를 신는다. 그곳의 풍경은 너무도 엄숙하고 애처롭다. 편육과 육개장이 놓인 테이블 앞에 앉아 고인의 생전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그 사람을 편안하게 추억할 만한 ‘마지막’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생전에 꽃 그림을 많이 그렸던 송수남 화백은 자신의 장례식장에 화사한 복장으로 꽃을 들고 와 좋은 추억을 떠올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요리사인 나를 기억할 만한 것으로 요리만한 것이 또 있을까!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메뉴는 ‘프랑스 시골풍의 테린’이다. 그 맛이 곧 나다. 테린은 돼지고기를 비롯해 각종 고기의 잡부위를 다지고 양념해서 틀에 넣고 오븐에 중탕으로 찐 뒤, 차갑게 식혀서 먹는 음식이다. 테린은 우리네 편육과 느낌이 비슷해 조문객들이 편히 즐길 수 있다. 테린은 쓸모없는 부위를 모아 알뜰하게 만든 음식이다. 뭔가 부족한 재료들끼리 뭉쳐서 완벽한 음식으로 탄생한 것이다. 요리사인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나 목표다. 테린을 한입 떠서 먹으며 그런 의미를 추억하면 좋겠다. 술도 빠질 수 없겠다. 이왕이면 프랑스 요리인 테린과 어울릴 와인이 제격일 듯싶다. 가볍고 향긋한 꽃내음이 나는 보졸레 지방의 모르공(morgon)이 어울린다. 와인 한 모금에 테린 한입 맛보며 나를 추억해준다면, 그것으로 나는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다 갔다고 여길 것이다.

글·사진 ‘루이쌍끄’ 오너셰프 이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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