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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0 20:53 수정 : 2013.07.11 13:47

1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금대봉 생태경관보전지구 제 1헬기장 부근의 까치수염 군락지.

[esc] 커버스토리비와 안개 속에서 더 돋보이는 여행지들

하루는 쏟아졌다 하루는 쨍했다, 장마와 폭염 기간을 구분하기도 어렵게 변덕스러운 날씨다.
날씨를 고민하며 여행을 망설이고 있다면 지체없이 떠나자. 비가 와도 안개가 껴도 놓칠 수 없는 풍경들이 있다.

금대봉·분주령·대덕산
능선에 만개한 야생화
줄어든 나비·벌 유혹하려
올해 유독 아름답게 피었다

옛 맞춤법으로 장마철은 ‘지리’했다. 요즘 장마철은 ‘지루’하다. 표준어 규정이 바뀌듯이 장마철을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남녀노소 상시적으로 길 떠나는 시대이니, 장마철이라고 주말을 ‘지루하고’ ‘지리멸렬하게’ 지낼 이들이 얼마나 될까. 비 쏟아지고 천둥·번개 쳐도 여행은 계속된다. 온 나라 안개 끼고 구름 덮여도,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보석처럼 빛나는 볼거리 누릴 것들이 해님·달님·별님의 얼굴로 숨어 있다. 우중충한 날씨, 비와 안개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여행지로 떠난다. 비바람 몰아치는 산사 찻집에서, 옛 나그네 삿갓 벗어들고 비긋던 정자 마루에서, 그리고 빗방울 머금은 꿩의다리·노루오줌·까치수염 지천인 촉촉한 산상 화원에서 ‘잊지 못할 빗속의 여행’이 당신을 기다린다.

“부슬비 올 땐 금대봉이나 제3헬기장까지만 다녀오는 걸 추천합니다. 안개 끼면 더 분위기가 좋지요.” 두문동재 감시초소에서 만난 태백시 환경보호과 환경감시요원 전병종씨는 “폭우 때는 아니지만, 비 오고 안개 낄 때도 나름의 운치 있는 야생화 탐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태백시의 ‘금대봉·대덕산 생태경관보전지구’. 야생화! 하면, 국내에서 첫손에 꼽을 정도의 화려한 꽃밭을 자랑하는 곳이다. 해발 1268m의 두문동재에서 출발해, 백두대간의 한 구간인 금대봉(1418m) 지나 분주령·대덕산(1307m)을 거쳐 검룡소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9㎞의 산상 화원을 거닐며 백만 송이의 꽃들을 만나고 왔다.

애초, 쏴아아~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눈부신 꽃파도를 헤엄쳐볼 심산이었으나, 비는 일찌감치 그치고 산은 구름더미 속에 들었다. 적신 거라곤 바짓가랑이와 등산화뿐이었지만, 마음은 온통 오색 꽃향기와 백가지 색깔의 안개에 담갔다가 건져낸 느낌이었다. 안개 자욱한 숲길에 떼지어, 또는 저 홀로 피어난 꽃다운 얼굴들은 하나같이 비에 씻긴 깨끗한 모습이어서 발걸음을 뗄 수 없게 했다.

숲해설가 김상구씨가 앞서 걸으며, 둥근이질풀·털이풀·산꿩의다리·박새·태백기린초·하늘말나리 이름들을 하나하나 부르면, 그것들이 활짝 웃으며 그곳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꽃들은 대개 노린재·개미·호박벌·말벌·진딧물 친구들과 함께 나타나 더 가까이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며칠 전까지 지천이었다”는 제3헬기장 부근의 범꼬리 무리는 이미 비바람에 떨어지고 시들었지만, 대덕산 정상 주변 풀밭에 깔린 일월비비추들은, 7월 중순 만개 시기를 앞두고 길고 늘씬한 꽃대를 밀어올리는 중이었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2 털이풀(터리풀) 꽃을 확대한 모습.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3 꿀풀에 붙어 꿀을 빠는 호박벌. 4 활짝 핀 까치수염에 앉은 은점표범나비. 5 희귀종인 제비난. 6 비에 젖은 둥근이질풀. 7 꽃잎 모양이 물레를 닮았다는 물레나물

해설가 김씨가 스틱을 들어, 구름 속에 든 건너편 산을 가리켰다. “저 산이 복주머니난이 자생하는 우암산입니다.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생긴 모양 때문에 흔히 개불알꽃이라고 하죠.” 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하는데 그가 “이렇게” 하며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가 보여준 꽃은 벌겋게 늘어진 모습이 과연 그러했다. “숲해설가 해먹기도 편해졌어요. 스마트폰 덕에.” 그의 폰엔 수백장의 꽃 사진들이 저장돼 있었다.

한강 발원샘으로 불리는 고목나무샘으로 내려가는 길에, 보안관 차림의 어르신 둘을 만났다. “패찰(출입증)을 보여 주시오.” 챙이 넓은 멋진 모자에 스틱을 하나씩 든, 푸른 조끼를 입은 환경감시단 요원들이다. 생태경관지구에 상주하며, 야생 동식물 포획·채취 등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일을 한다. “저분들 활동 덕에, 이나마 환경생태가 유지될 수 있는 거지요.”(숲해설가 김상구씨)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은 패찰 없이 출입이 가능하지만, 제3헬기장~고목나무샘~분주령 쪽으로 가려면, 두문동재 초소에서 탐방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꽃들은 작고 하얀 꽃들을 무더기로 피워올린 산꿩의다리, 노루오줌, 털이풀 등과 주홍빛 꽃송이가 아름다운 나리꽃들, 노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난 기린초 들이다. 털이풀 꽃은 얼핏 보기에 지저분해 보이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우 아름다운 작은 꽃들의 집단이어서 감동을 준다.

“나리꽃에는 잎이 어긋나게 돋는 나리, 둥글게 한자리에 돋는 말나리, 줄기에 잔털이 난 털중나리, 잎이 솔잎을 닮은 솔나리 등이 있지요.” 다시, 나리꽃이 땅을 향해 고객 숙인 종은 그냥 나리·말나리이고, 하늘을 향해 피면 하늘나리·하늘말나리라 부른다. 기린초는 잎이 둥글고 짧으면 태백기린초, 길고 뾰족하면 일반 기린초다.

대덕산 정상에 오르니, 온통 거센 바람 속에 좌우로 연무가 깔렸다. 매봉산·함백산, 하이원 스키장, 그리고 산 능선에 줄지어선 풍력발전기들이 펼쳐지는 탁 트인 전망이 압권이라지만,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활짝 핀 주홍색 하늘나리, 보라색 꿀풀, 노란 기린초들, 그리고 가녀린 긴 꽃대를 밀어올린 일월비비추 무리가 굳세게 버티어 서서 탐방객들을 맞아준다.

대덕산에서 검룡소 쪽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가파른데다 미끄러운 흙길이다. 비 올 때는 대덕산으로 오르지 말고 분주령에서 곧바로 검룡소 쪽으로 하산하는 게 좋다.

들여다볼수록 매혹적인 꽃과 곤충들과 함께한 5시간여의 야생화 탐방길은, 내내 비와 안개 사이, 안개와 구름 사이, 땀방울과 빗방울 사이, 갈증과 촉촉함 사이 어느 지점을 오가는 여정이었다. 잠깐씩 앉아 쉰 시간보다는 하산길에 산뽕나무에 잔뜩 열린 달콤한 오디와 산딸기 따먹느라 지체한 시간이 더 많았다.

검룡소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숲해설가 김씨가 던진 말이, 돌아오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올해는 야생화들이 봄부터 유난히 많이 또 예쁘게 피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 벌과 나비가 엄청 줄었기 때문이란다. “이상기온 등에 따른 벌들의 개체수 감소가 식물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유난히 아름다운 꽃잔치는, 부족한 벌·나비들을 유혹해 번식(수정)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올여름, 꽃들의 몸부림이 이뤄낸 금대봉·분주령·대덕산 산상 화원의 풍경을 만나시려면, 일주일 전에 인터넷 예약(www.tour.taebaek.go.kr)을 해야 한다. 하루 탐방 인원을 300명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평일엔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이나, 주말엔 일찌감치 마감된다. 두문동초소와 검룡소초소에 상주하는, 감시요원을 겸한 숲해설가들에게 숲해설을 신청할 수 있다. 태백시청 환경보호과 (033)550-2061.

태백/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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