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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심형 공포체험관 다크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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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공포체험 강자 에버랜드 호러메이즈·다크둠
‘귀신의 집’도 트렌드가 있다. 뻔한 공포체험관 대신 일본식 호러로 무장한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호러메이즈에 이어 서울 도심 한복판엔 할리우드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다크둠이 생겼다. 두 시설의 기획자를 만나 진화하는 공포체험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설계자도 무서워 못 간다 에버랜드 호러메이즈
숨이 막혔다. 캄캄한 어둠 속 풍겨 나오는 소독약 냄새가 목을 조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복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내 심장 소리가 초침보다 빨리 뛰며 귀를 울렸다. 앞사람의 어깨를 붙잡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축축한 공기와 작은 기척에 예민해졌다. 그때였다. 피투성이 시체들 사이로 뻗어나온 부드럽고 차가운 손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은.
7월13일 용인 에버랜드에 공포체험관 호러메이즈1이 문을 열었다. 호러메이즈는 4~6명이 1팀이 되어 2분 정도의 간격으로 입장한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오는 영상이 이 공포물의 배경을 일러준다. 30년 전 한 산장에서 한 미치광이 교수가 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며 금지된 실험을 한다는 줄거리다. 2011년 핼러윈데이 때 처음 문을 열었다가 올해부터는 앞당겨 여름 개장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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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인 에버랜드 호러메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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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포기율 20%. 15분을 견뎌내며 완주하기가 쉽지 않다. 에버랜드 홍보팀 직원 말에 따르면 지난해엔 장의학과 학생들이나 간호사들도 단체 관람 도중에 나와버렸다고 한다.
이 공간을 기획한 사람은 삼성에버랜드 리조트사업부에서 일하는 황재훈 책임이다. 13일 에버랜드에서 만난 황 책임은 호러메이즈를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공간을 설계하며 내가 기대한 관람객들의 표정은 눈은 울고, 입은 웃는 표정으로 뛰쳐나오는 모습이었다.” 한때 학교괴담으로 유행했던 빨간마스크 쓴 귀신의 얼굴 아닌가. 강한 자극으로 사람들을 웃고 울리겠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말을 하는 그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호러메이즈는 일본식 호러에 가깝다. 선명한 괴물의 형상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흐릿한 어둠 속에서 들리는 물 한 모금 마실 기운이 없는 사람들의 신음 소리, 비명, 파리가 날아다니는 소리, 수술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상상을 부추긴다. 우선 이성을 마비시킨 것은 냄새였다. 어둠 속에서 소독약 냄새를 맡으면 단박에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300㎡ 정도 넓이의 호러메이즈는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운 미궁처럼 만들어져 있는데 감옥, 마취실, 고문실, 수술실, 시체거리 등 12개의 공간에 불타거나 썩는 듯한 고유의 냄새가 따라붙는다. 교수연구실엔 박사의 괴이함을 표현하는 아로마 같은 냄새가 가득 찼다. “저는 5가지 요소가 공포감을 좌우한다고 봐요. 어두움, 끝을 알 수 없는 미로, 리얼리티, 시각뿐 아니라 후각, 청각을 자극하는 체감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무섭게 하는 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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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용인 에버랜드 호러메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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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를 위해선 어둠에 묻혀 있는 인형들의 핏자국이나 실루엣 구김까지 실제 사람에 가깝도록 세밀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올해 개장하면서 디자이너들과 했던 이야기가 있어요. 건축물은 고유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호러메이즈가 자리잡은 지 3년이 되니까 우리도 알 수 없는 기운들이 조성된다는 느낌이에요. 인위적인 세트가 혼자서 오싹한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악령 역으로 호러메이즈를 떠도는 연기자들도 해가 갈수록 노련해졌단다. 처음엔 ‘우우워’ 내뱉는 소리로 겁을 줬는데, 이건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처럼 들려서 기분만 나쁘고 무섭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이젠 ‘끄끄끅’ 하면서 들이마시는 소리를 내는 식이다. 기획자인 그도 예측하기 어려운 지점에서 귀신들이 출몰하곤 한단다.
공포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 1위는 단연 커플이다. 황재훈 책임은 “공포의 공간에 들어가면 함께 있는 이성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며 “남자들은 공포의 세계관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려는 성향이 큰 데 비해 여자들은 쉽게 빠져든다. 같이 들어가는 남자가 누구든 간에 여자들은 자신을 지켜주는 남자에 대해 쉽게 호감을 갖고 남자들은 자부심을 되찾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커플이 아니라면 함께 들어가는 남자를 신중히 택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9월6일엔 시체 소각장을 배경으로 한 두번째 공포체험관 호러메이즈2가 문을 열 예정이다. 호러메이즈2는 일본 놀이공원 후지큐 하이랜드의 공포체험관 ‘최공 전율미궁’을 설계한 와타루 히토미가 연출을 맡았다. 그런데 황재훈 책임 말에 따르면 정작 와타루 히토미는 공포체험관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폐공장이나 오래된 병원에서 영감을 얻고 가능한 한 실제를 닮은 모양으로 체험관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그 자신은 무섭기 때문에 절대 안 간다는 것이다. 설계자도 공포체험관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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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체험관 다크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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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 울려퍼지는 비명소리, 다크둠
그보다 한주 앞서 서울 종로구 견지동 화랑거리 한복판에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도시 한가운데 문을 연 공포체험관 다크둠(사진)은 현란한 공포 비주얼의 전시장이다. 시각적 효과를 중시하는 서양식 호러다. 다크둠을 설계한 사람은 드라마 <거미>, 영화 <자귀모> 등의 제작에 참여했던 특수효과 전문가 강순철씨다. “어두운 데서 귀신 탈 쓴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쫓아다니면 누구나 다 놀란다. 우리는 다른 호러를 하고 싶었다. 미술적 스타일을 높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크둠에선 항상 등 뒤를 조심해야 한다. 기자도 하마터면 슬그머니 어깨에 손을 얹은 저승사자에게 주먹을 날릴 뻔했다. 다크둠은 2개층 396㎡ 넓이에 24개 방으로 되어 있다. 4층은 판타지 호러, 5층은 리얼 호러를 주제로 구성됐다. 입체안경을 쓰고 들어가는 4층은 기이한 음악과 현란한 빛 사이에서 길을 더듬다 보면 도깨비, 괴물과 마주치기 십상이다. 5층은 시체가 뒹굴고, 거미줄이 낀 잔인하고 삭막한 공간이다. 하수구에는 쥐들이, 변기에는 구더기가 바글거린다. “5층은 지하 하수구, 전기고문실, 폐가, 묘지 등의 공간을 할리우드 영화 같은 호러 스타일로 세심히 만들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공포 공간들을 나열해서 장르별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움을 탈 수 있는 시퀀스를 고심했죠. 은근히 배어나오는 공포, 무섭지만 비주얼에 감탄하게 되는 공간이 제가 꿈꾸는 곳입니다. 다크둠은 기술과 제작, 보여주는 호러가 시작됐다는 표시가 될 것 같아요.” 강순철 다크둠코리아 이사의 말이다.
그는 가장 만족도가 높은 공간으로 전기고문실을 꼽는다. “미국 미래과학 소설에서 등장하는 증기기관을 이용해 인체를 실험하려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관객들도 불시에 전기고문을 당합니다. 공사장에서 쓰는 기계를 붙여서 신선한 재미를 주려고 했습니다.”
호러시설 기획자들은 공포체험관에서 쉽게 무서워하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맑은 영혼’이라고 부른다. “40대가 되면 인생이 호러라 무서워하질 않아요. 착한 젊은이들은 제 작품 보면 다 깜짝 놀라고 이게 공포구나 하는 것을 소리질러가며 느끼죠. 공포를 모르는 나이에 공포를 배우는 사람들이 주요 타깃입니다. 험난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공포도 선행 학습해야 한다고 평소 주장하는데 그런 의미에선 여기가 학교입니다. 넘어야 할 산입니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호러메이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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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스아이 체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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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만 지르지 말고 머리를 써봐!
공포동호회가 흉가 탐험에 나설 때 추리동호회는 모여서 사건을 고심한다. 지난 6월22일 네이버 카페 ‘아르에스(RS) 추리동호회’(http://cafe.naver.com/rs505)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정다방 프로젝트에서 정모(정기모임)를 했다. 이들의 정모 주제는 탈출게임. “늑대인간을 찾아라. 아니면 모두 위험에 처할 것이다”는 영상으로 시작하는 리얼탈출게임은 제한된 시간 안에 단서를 종합해 늑대인간을 가려내는 추리 게임이다. 게임을 기획한 이벤트 업체 메이킹 파티는 매달 한번씩 정다방 프로젝트에서 리얼탈출게임을 열 예정이라고 했다. 8월 RS 추리동호회는 서울 시내에서 “사라진 매니저를 찾아라”는 추리 이벤트를 연다. 카페 매니저가 납치됐다는 설정으로 온라인 추리 이벤트를 해온 이 카페는 정모 때 회원들이 모여서 거리에 숨겨진 단서를 토대로 실제로 매니저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선 시에스아이 체험전(사진)이 시작됐다. 미국범죄 과학수사드라마 시에스아이 수사관이 되어 사건현장을 분석할 기회를 제공하는 전시다. 관람객들은 모텔 옆 골목길에서 발견된 한 젊은 여자의 시체, 등산객의 발치에 걸려 드러난 땅속에 묻혀 있던 해골 등 3개의 사건 현장을 돌며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지문 검사, 모발에서 디엔에이 분석, 탄두 검사 등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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