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24 19:38
수정 : 2013.07.2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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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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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시계태엽 패션
누군가 펑크의 시대는 완전히 지나간 것 중 하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1970년대 뉴욕과 런던에서 음악과 패션을 비롯한 펑크문화가 탄생한 지도 벌써 40년이 흘렀다. 펑크가 남긴 방대한 유산을 반추할 수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충분한 물리적 시간이 지난 것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 5월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펑크가 패션에 끼친 영향과 의의들을 되짚어 보는 패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펑크는 패션의 곳곳에 해체주의, 반체제주의와 같은 개념에서부터 옷의 재료나 제작 방식에 있어 다양한 요소들을 남겼다. 그런데 최근엔 원형에 가까운 펑크 패션을 좀체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뉴욕 펑크의 발원지인 세인트마크스 플레이스 골목에 가면 1975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켜온 ‘트래시 앤 보드빌’이라는 펑크 옷가게가 있다. 몇달 전 이곳에서 흰색 티셔츠를 하나 구입했다. 소매가 아무렇게나 잘려 있고, 구멍도 마구 뚫려 있는데다 심지어 낡아 보이기 위해 누렇게 칠도 했다. 이런 제작 방식만 보면 펑크의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디아이와이(DIY) 정신’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 옷이다. 집에서 혼자 소매를 자르고, 구멍을 뚫는 간단한 수준의 변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옷은 펑크보다는 최신 유행에 더 가까운 옷이다. 요즘 유행하는 ‘페이크 패션’의 하나로, 일본 브랜드 꼼데가르송의 ‘플레이’(PLAY)를 ‘프레이’(PRAY: 기도하다)로 패러디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유서 깊은 가게엔 징이 무수하게 박힌 라이더 재킷이나, 옷핀으로 연결한 찢어진 바지, 펑크 밴드의 티셔츠, 본디지 팬츠, 굽이 30㎝는 족히 되어 보이는 제프리 캠벨의 구두 등 40년 전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패션 아이템도 많았다. 하지만 트래시 앤 보드빌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기에 새로운 젊은이들을 고객으로 맞으려면 트렌디한 옷도 구비해 놓아야 하고, 70년대엔 없던 페이스북과 인터넷 쇼핑몰도 활발히 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펑크 패션도 비슷한 행적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펑크 패션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4년 즈음이었다. 펑크 밴드를 소재로 한 만화 <나나>에 빠져 펑크 의류를 취급하는 인터넷 쇼핑몰들에서 하루가 멀다고 옷을 샀다. 당시엔 의류나 액세서리를 가게의 취향에 따라 한국에서 자체 제작하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신촌, 홍대, 이대에 포진했던 펑크숍들이 하나둘씩 없어졌고, 그나마 남아 있는 쇼핑몰들은 최신 유행을 좇아 페이크 패션이나 아이돌 패션에 치중한 옷들을 팔고 있었다. 펑크 패션은 잘 만든 것보다 옷이 담는 의미와 정신에 더 중점을 둔다. 그렇기에 국내 펑크 패션의 제작에서도 으레 겪는 기술적인 측면의 한계, 물가상승의 어려움보다 가게의 존속에 영향을 미치는 큰 변인은 트렌드이다. 유행의 변화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펑크 패션에서도 원형에 가까운 옷이 예전처럼 제작되지 않는 것이다.
트래시 앤 보드빌을 나오며, 몇십년 동안 가게의 매니저이자 펑크 패션의 산증인인 지미 웹이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박물관에 박제된 펑크 패션을 관람하듯 그와 가게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무언가 허전한 마음으로 골목을 떠났다.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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