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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31 20:00 수정 : 2013.08.01 10:03

1 커스텀멜로우의 슈트. 2, 4, 5, 7 란스미어의 슈트와 구두. 3, 6 샌프란시스코 마켓의 남성 팔찌와 타이.

[esc] 스타일
패션시장 흔드는 남성 슈트의 변화…세계적 트렌드 흡수하며 클래식 관심도 높아져

여성 패션 일색이던 편집매장
남성 전용 숍 속속 늘어나
유럽의 장인 브랜드 대거 유입
보수적인 장신구도 다양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패션 시장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감지됐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를 상대로 컬렉션을 선보이는가 하면, 인터넷으로 패션 트렌드 또한 실시간 중계되고 있다. 이 속에서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남성복 시장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 남성복 패션 편집매장은 없다시피 했지만 지금은 외국 출장지에서나 볼 법했던 남성복 편집매장이 서울에서만 10곳이 넘는다. 영국과 이탈리아의 슈트 및 구두 브랜드 전문 매장도 강남 지역을 시작으로 여러 백화점에 속속 들어섰다. 남성전문지 <루엘>의 박정희 패션에디터는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변하고 있다. 특히 남자들의 옷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명품 시장도 유럽 럭셔리 브랜드들뿐 아니라 미국, 일본의 소규모 브랜드로 폭이 더 넓어졌고, 이런 변화는 다시 국내 남성복 브랜드로 확장됐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비즈니스 룩’으로 대표되는 직장 남성들의 옷차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갈라파고스 섬’이라고 해도 될 만큼 우물 안 트렌드를 좇던 남성복 시장은 이제 유럽과 미국에서 쏟아지는 트렌드를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변화의 출발은 20대와 30대를 주 고객층으로 둔 국내 남성복 브랜드의 분화였다. 2000년대 초반을 휩쓸던 ‘은갈치 슈트’는 남성복 브랜드 획일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늘어난 외국여행과 인터넷 쇼핑의 증가, 다양한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의 확대로 젊은 남성들은 점차 백화점에서 멀어졌다. 유명 패션사진 블로그 ‘더사토리얼리스트’(thesartorialist.com)처럼 최신 길거리 패션을 찍는 사진가들의 눈길을 끈 피렌체의 남성복 장인들 또한 일반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국내 남성복 전문 편집매장 ‘란스미어’와 ‘샌프란시스코 마켓’은 대표적이다. 급변하는 트렌드를 영리하게 선별한 ‘커스텀멜로우’는 젊은 비즈니스맨을 대상으로 성공한 대표 남성복 브랜드 중 하나가 됐다. ‘시간여행자’라는 콘셉트로 선보인 이 브랜드의 이번 봄/여름 남성복은 패셔너블한 남성복에 유럽과 미국에서 이어온 남성복 제작 기법을 마케팅 포인트로 더했다. 좁은 소매의 회색 3버튼 재킷과 복사뼈가 보이도록 한 단 올려 마감한 크롭팬츠는 영국과 이탈리아의 남성복 장인들이 수십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선보여온 디자인이다. 재킷의 봉제선이 강조되지 않고, 어깨선을 따라 물 흐르듯이 마감한 ‘언컨스트럭티드 재킷’도 클래식 남성복의 대표 아이템이다. 주로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는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도 젊은 고객들이 입기 쉽게 변형해 선보였다. 좁아진 라펠과 허리선이 들어간 디자인, 특유의 엄격함을 무늬로 살리기도 한다. 은은한 격자무늬의 회색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은 젊은 남성을 위한 비즈니스 슈트의 좋은 예다.

8 란스미어 나폴리 스타일의 슈트와 매장 내부.
더불어 최근 남성복의 커다란 변화 중 하나로는 장신구의 다양화다. 최근 세계 남성복의 성지라 불리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남성복 박람회 ‘피티 우오모’ 등에서 찍은 남성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 대유행하면서 그들이 착용한 장신구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졌다. 브리프케이스(서류가방), 카무플라주(위장색) 무늬, 캔버스 소재 끈의 손목시계 등은 실제 유럽과 미국의 남성복 관계자들이 애용하는 품목이었고, 이제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유행에 민감한 비즈니스맨들 가운데는 ‘시모노 고다르’처럼 마(리넨)와 면 소재 포켓 스퀘어(윗주머니에 꽂는 손수건)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프랑스 브랜드의 마니아들이 이미 존재한다. 국내 마니아들에게 소문이 자자했던 영국의 타이와 스카프 전문 브랜드 ‘드레이크스’는 절제된 느낌의 단정한 무늬와 유럽에서 수백년 동안 생산하는 최고 품질의 소재를 사용한 전문 브랜드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비즈니스 룩의 완성인 구두 역시 이탈리아와 영국 등 유럽 남성복 패션 유입의 상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남성용 구두 및 액세서리 전문 편집매장 ‘유니페어’는 유럽과 미국의 유서 깊은 구두 장인 브랜드를 모은 곳이다. 이곳 대표 브랜드 중 하나로, 1890년 영국 노샘프턴 지방에서 시작한 ‘에드워드 그린’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신사를 위한 최고의 구두’를 지향한다. 모든 제작 과정은 오랜 숙련 과정을 거친 장인의 수작업으로 탄생한다. 일반 남성 구두보다 화려한 디자인으로도 유명한데, 최고급 송아지 가죽과 굿이어 웰트 제법(신발의 안창과 갑피를 함께 실로 꿰매는 제법으로, 좋은 구두를 구별하는 척도로 쓰임)으로 만든 부츠들은 초창기 용도였던 사냥이나 외부(아웃도어) 활동을 넘어 포멀 슈트에 어울리는 비즈니스용 부츠로 알려졌다.

중고가를 형성하는 남성복 외에도, 젊은 남성들이 더 쉽게 살 수 있는 중저가 브랜드 또한 유럽발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올해의 ‘대세남’ 김수현을 모델로 기용한 ‘지오지아’는 수년간 남성복을 휩쓴 카모플라주 무늬를 차용한 셔츠부터 갈수록 고온다습해지는 여름철 직장인을 위한 니트 타이 등을 주요 아이템으로 선보이고 있다. 또한 지오지아는 상대적으로 저가를 형성하는 기존 브랜드의 고객층을 늘리기 위해 프리미엄 라인 ‘앤드지 바이 지오지아’를 시장에 내놓았다. ‘정통을 추구하면서도 끊임없이 동시대와 교류하는 남성을 위한’ 새로운 브랜드라는 이 남성복 라인은, 영국 전통 테일러링에 기반을 두고 컬렉션을 전개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남성복 디자이너, 홍승완이 총괄 디자인을 감독한다. ‘앤드지’의 캡슐 컬렉션이자 최고급 라인인 ‘에이치에스더블유(HSW)’는 그 이름처럼 홍승완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컬렉션이다. 디자이너가 뿌리로 삼은 영국 남성복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일상에서 쉽게 입을 수 있는 젊은 감각의 그래픽과 톤 다운된 파스텔 색상으로 이뤄진 컬렉션을 이번 봄/여름 시즌 선보이기도 했다.

에스피에이(SPA) 브랜드 역시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과 착용감의 비즈니스 룩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유니클로’는 항상 매장의 일정 면적을 남성 비즈니스 코너에 할애한다. 겨울의 보온성과 여름의 통기성을 강조하여 좋은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답게 올여름에는 ‘드라이 노턱 팬츠’와 ‘드라이 스타일업 노턱 팬츠’를 출시했다. 입었을 때 통풍이 잘되고 땀이 잘 마르도록 면과 폴리에스터, 폴리우레탄이 혼합된 소재를 사용한다. 독신 직장 남성들의 편의를 위해 직물 단계부터 구김 방지 가공을 더해 빨래 뒤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유럽발 남성복 트렌드가 빠른 시일에 안착한 데는 남성복 고객층의 소비 패턴 변화도 한몫했다. 남성복 편집매장 므스크샵의 디렉터 민수기는 남성 소비자들이 더 깊이 있는 소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얘기한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옷을 바라보는 한국 남성들의 관점이 심화하고 있다. 트렌드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제는 더 깊이 찾아본다는 뜻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몇백만원짜리 슈트와 구두에 투자한다. 유럽발 남성복 브랜드와 스타일을 소비하는 시장 자체도 커졌다. 그들은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고, 유럽 남성복 브랜드들의 섬세한 제작과 소재, 착용감을 세련되었다고 받아들인다.”

요즘 남성복 시장은 뚜렷한 디테일을 지닌 유럽 각국 남성복 트렌드를 그대로 차용하기보다는 영국과 이탈리아, 미국 등 남성복을 선도하는 시장의 트렌드를 영리하게 결합한 브랜드가 대세를 이룬다. 예전보다 다양해진 남성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갈수록 세분화하는 남성복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양한 남성복에 관한 논의가 많아질수록, 좋은 남성복을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트렌드는 앞으로도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글 홍석우 패션칼럼니스트, <스펙트럼> 편집장, 사진 각 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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