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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대첩> 1회에서 공동 우수팀으로 선정된 서울팀이 만든 쇠골찜. 올리브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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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요리
전국 10개 지역의 요리 고수들 모여 서바이벌 벌이는 올리브티브이 <한식대첩> 촬영현장
지난달 12일, 가을을 알리는 바람 소리를 뒤로하고 경기도 남양주시 외딴 건물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건물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간판도 없다. 개미조차 얼씬거리지 않는다. 귀를 바짝 대고 소리를 염탐해도 고요하기만 하다. 육중한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공포영화 <컨저링>의 소녀가 된 기분이 든다. 깜깜하다. 몇 초가 지나자 서서히 옅은 불빛이 보인다. 운동장만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1652.8㎡(500평) 규모다. 무대도 보인다. 주방 싱크대도 있다. 어떤 이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어떤 이들은 세련된 양복과 한복 차림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제한시간 60분입니다. 이제 시작하세요”라고 말하는 이를 자세히 보니 어딘가 낯이 익다. 몇 달 전 프리 선언을 한 아나운서 오상진씨다. 그가 이 공간이 어딘지를 알려준다.
이곳은 지난달 28일 첫 방송이 나간 케이블채널 올리브티브이 프로그램 <한식대첩>의 제5회 방송분 촬영현장이다. 첫 방송은 일찌감치 녹화해 지난달 28일 방송했다. “엔드(END) 치고 가실게요.” 20대 제작진 한 명이 슬레이트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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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대첩> 1회에서 공동 우수팀으로 선정된 제주팀이 만든 옥돔 요리. 올리브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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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대첩>은 진지하게 한식을 다루지만 그 방식은 끝을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영화 같다. 매회 피 말리는 요리 대결로 탈락자가 결정되는 요리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서울, 경기, 강원,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제주도 등 전국의 요리 고수들이 자존심을 걸고 맛깔스러운 요리를 펼친다. 10개 팀, 총 20명. 우승 상금은 1억원.
심사위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심영순 선생은 80~90년대 정·재계 며느리들의 ‘옥수동 선생님’으로 알려진, 40년 경력의 전통음식 명장이다. 프렌치 레스토랑 ‘줄라이’를 운영하는 오세득 셰프는 뉴욕 요리학교 아이시이(ICE)를 졸업한 프랑스 요리 전문가다. 우리 식재료와 한식 레시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로 유명하다. 한때 많은 매체에서 종횡무진 활동했던 1세대 음식평론가 고형욱씨가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20여년 전부터 팔도를 돌면서 우리 맛을 섭렵했다. 20~30대 여성들의 입맛을 대변할 조희경씨는 고급 한식 레스토랑 ‘비채나’를 운영하는 시이오(CEO)다.
마장동에서 입수한 소의 골
수조에 산소통 단 채 가져온 잉어
지네 200마리 먹은 오계 등
재료부터 치열한 경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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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대첩> 5회 녹화현장. 서울팀 김경미·유경희씨가 만든 음식을 심사위원이 맛보고 있다. 올리브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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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진은 제작진이 지역의 향토음식연구회, 내림음식연구회, 농촌진흥청, 음식 관련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섭외한 이들이다. 제주도 다금바리 장인(강창건)부터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남도의례음식 전수자(이미자), 종갓집 종부(박형둘)까지 경력도 다양하다. 크고 작은 요리대회 우승자들이 많다.
“뭐하노, 그것부터 깔아라”, “거시기 빨리 해부리랑께” 팔도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어느새 촬영장은 보글보글 소리와 온갖 맛 냄새로 가득하다. 심사위원들의 눈은 매섭다. “5, 4, 3, 2, 1, 이제 손을 놓으세요.” 아나운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쉬움을 담은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제 심사위원들의 혀를 사로잡을 시간.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무슨 맛을 느끼라고 만든 겁니까? 이건 쫄깃해야 하는데.” 심사위원의 타박을 듣자 출연자는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항변한다. 곧 튕겨 나갈 고무줄처럼 긴장감이 깔린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1라운드는 제작진이 준 주제에 맞는 식재료를 출연진이 구해 와 요리를 한다. 그러고 나면 잠시 쉬는 짬이 찾아온다.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가 가족처럼 가까워졌어요.” 박형둘씨의 말이다. “안동으로 놀러 온나!” 김정순씨가 말을 잇는다. 경쟁과 우정이 한 바구니에 있다. 2라운드는 심사를 하고 최하위 점수를 받은 두 팀이 ‘데스 매치’를 펼쳐 탈락자를 정한다. “같이 있다가 가면 섭섭해요.” 박씨가 말한다.
석정호 피디는 “(채널에서) 이탈리아 등의 서양음식이나 유행에 민감한 요리만 집중적으로 다룬 경향이 있었다”며 평소 다뤄보고 싶었던 음식은 한식이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 향토음식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쉬웠고, 그 지역에만 있는 식재료들도 조망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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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골찜의 재료인 소의 골. 올리브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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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대결 미션은 ‘왕을 위한 진상품’. 출연자들이 가져온 식재료들은 기절초풍할 정도로 신기했다. 녹화 당일, 마장동축산물시장에서 가져온 소의 골(서울), 수조에 산소통을 단 채 올라온 잉어(경북), 지네를 200마리 먹은 오계(오골계, 충남), 신선도가 생명인 민어 부레(전남) 등. 제주도 팀은 옥돔과 함께 보말(고둥)을 직접 물질해 가져왔다. 고형욱씨는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들이 나와서 매우 놀랐다”고 한다. 오세득 셰프는 “오히려 저 자신이 반성을 많이 했다”며 한 시간 안에 3~4가지 요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과거 궁중에 진상된 음식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조선시대에는 계절마다 지역에서 제일 먼저 생산되는 식품을 올렸다. 종류나 가짓수가 다양했다. 조홍시, 생전복, 황석수어(충청)와 말린 숭어와 알, 굴비, 석류, 전복 등(전라도)과 청귤, 표고버섯 등(제주), 대구, 죽순, 건광어, 건대구 등(경상), 건광어, 생홍합, 건해삼(강원) 등.
첫 대결에서는 쇠골찜과 타락죽(우유를 넣어 끓인 죽)을 선보인 서울팀의 김경미·유경희씨와 옥돔미역국, 옥돔구이, 생옥돔찜 등을 만든 제주팀의 강창건·한수열씨가 우수팀으로 선정됐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소고기에 관한 미각이 발달한 사람들이다. 곱창, 허파, 간, 콩팥 등 소의 거의 모든 부위를 요리해 먹었다. 방송에서 눈에 띈 쇠골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보통 백숙을 하거나 골의 막을 벗겨 전을 부쳐 먹었다. 그 전을 넣은 골탕도 있었다고 한다. 첫 방송에서는 탈락자가 없었다. 지역음식을 더 소개하자는 취지에서다. 과연 최종 우승을 누가 할까? 올리브티브이는 방송에 앞서 에스엔에스(SNS) 등을 통해 총 2386명에게 ‘1위는 누가 할 것인가?’ 물었다. 누리꾼들이 뽑은 유력한 우승 후보 지역은 약 29%의 지지를 얻은 전라남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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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충남팀이 가지고 나온 연산오계(오골계). 참가자들의 레시피는 프로그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올리브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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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은 우리 생명과 연결되어 있지만 너무 익숙해 소중함을 잊는 산소 같다. 흰쌀밥보다 파스타가 더 친숙한 20~30대에게는 더 그렇다. 심영순 선생은 “나이 든 이와 젊은이가 같이 출연했는데 보기 좋았다”며 “우리 젊은이들이 한식을 더 많이 이해하고 전수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방송 시간은 매주 토요일 밤 9시40분.
첫 방송 시청률은 평균시청률 1.7%(닐슨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올리브, tvN, 스토리온 합산), 최고 시청률 2.3%를 기록해 케이블, 위성, 아이피티브이(IPTV) 등 유료채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남양주/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참고서적 <우리 음식 백가지>, <조선왕조 궁중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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