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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2 20:25 수정 : 2013.10.03 11:35

최지현 제공

[매거진 esc]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

다음은 최근 잘 팔리고 있는 화장품 광고에서 발췌한 표현들이다. “48시간 유지되는 보습력”, “7일 후 빛나는 3D 광채 피부”, “2주 사용 후 잡티 없이 깨끗해진 피부”, “3일 만에 달라지는 피부!”….

제품의 효능을 강조한 표현들인데 과연 근거가 있는 걸까? 물론 근거는 있다. 2011년 8월에 화장품법이 개정되면서 국내에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표시·광고 실증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즉, 화장품 회사들이 라벨이나 광고를 통해 어떤 주장을 하려면 반드시 그 사실 여부를 과학실험을 통해 실증해야 한다.

가이드라인도 마련되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시험은 “20명 이상의 피시험자를 확보”해야 하고, “국내외 대학 또는 화장품 전문 연구기관에서 시험”한 것이어야 하며 “5년 이상 해당 분야의 시험 경력을 가진 자의 지도 및 감독 하에 수행·평가” 되어야 한다. 꽤 믿음직하게 들린다. 이 가이드라인을 따랐다면 화장품 회사들이 쏟아내는 그 화려한 주장은 모두 사실일 것 같다.

하지만 상식적인 의문이 든다. 도대체 “48시간 지속되는 보습력”은 어떻게 증명된 걸까? 굉장히 치밀하게 시험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엉성하다. 20명의 피시험자에게 제품을 바르게 하고 촉촉함이 유지되는 시간을 본 것이다. “72시간 지속되는 보습력”을 주장하는 제품이 있는데 이것 역시 시험 방법이 비슷하다. 대단한 결과로 여겨지지만 뭔가 이상하다. 보습력을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평가한 걸까? 피부 자체에서 나오는 피지나 노폐물은 시험 결과에 반영했을까? 다른 회사의 제품을 같은 방식으로 비교 시험한다면 큰 차이가 있을까?

역시 추측대로이다. 실증 방법의 그 무엇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과학실험의 기본에 해당하는 대조군과의 비교도 없고 이중맹검법(시험자와 피시험자 모두 어떤 약으로 시험하는지 알지 못하는 시험 방식)도 없다. 게다가 20명은 표본으로 보기에는 너무 적은 인원이다. 어떤 논문에도 실릴 수 없는 엉터리 시험인 것이다.

광고실증제를 일찍부터 도입한 유럽의 화장품 시장은 혼탁해진 지 오래다. 연구소와 화장품 회사는 마치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와 같다. 일단 손을 잡으면 어떻게든 원하는 증거를 조작해낸다. 구글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어떤 데이터든 창의적으로-과학적으로가 아니다- 만들어주겠다는 연구소 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표시·광고 실증제를 도입한 이유는 허위 과장광고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실제로 실증제 도입 이후 많은 과장광고가 적발되었다. 주로 여드름, 아토피 등의 치료 효과를 강조한 제품들이 대거 행정처분을 받았다. 화장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광고를 규제한다는 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일반 화장품의 과장광고를 규제하는 면에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저 화장품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해왔던 엉터리 시험을 이제 대학이나 화장품 연구소들이 돈을 받고 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유럽이 야심차게 도입한 광고 실증제가 연구소들의 밥줄이 되고 화장품 회사들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한 것처럼 우리도 그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최지현 화장품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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