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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9 20:12 수정 : 2013.10.10 21:38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혁

[esc] 김중혁의 메이드 인 공장 (16) 콘돔 제작 공장 (하)

콘돔 공장의 외관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빈티지스럽다고 해야 할까, 클래시컬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무척 예스러운 건물의 하얀 외벽에 ‘우리 상품 일등 상품, 알고 보니 품질 관리’라는 표어가 참으로 예스러운 글씨체로 붙어 있어서 자꾸만 보게 된다. ‘알고 보니 품질 관리’라는 표현이 참 귀엽다. 마치 정답을 몰랐다는 듯, 뒤늦게 알게 됐다는 듯, 능청스럽다. 표어를 보고 있으니 오래전 출산 정책 관련 표어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강렬한 게 많았다. 1960년대에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였고(세상에, 국민들에게 이런 협박을!),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고, 1980년대에는 ‘둘도 많다 하나 낳고 알뜰살뜰’이었고, 2000년대에는 ‘낳을수록 희망 가득, 기를수록 행복 가득’이었다. 그 시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표어들이다. 그렇게 어렵게 태어난 아이들이 요즘에는 표어처럼, 공장의 제품처럼 (‘우리 아이 일등 아이, 알고 보니 성적 관리’) 관리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도 든다.

클래시컬한 공장 안의 클래시컬한 사무실에는 클래시컬한 책상과 의자가 잘 정돈돼 있었는데, 이렇게 예스러운 사무실에서 콘돔 이야기를 열심히 나누다 보니, 참으로 어울리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 한 분이 화이트보드에 콘돔의 종류를 그림으로 그려주고, 또 한 분은 빠뜨린 부분을 추가해주고, 다른 한 분은 콘돔의 제조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그걸 들으며 무척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어디선가 이렇게 열심히 만들고 있다. 공장 취재를 다니면서 경험하는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공장에서 콘돔을 설명해준 분들은 (물론 내가 모르는 고충이 많겠지만) 신나 보였고 재미있어 보였다. 남자 네 명이 (말이 좋아) 클래시컬한 사무실에 앉아서 콘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 그러니까 폭이 있어요. 이게 52밀리가 있고, 53밀리가 있고, 그러니까, 동그란 걸 바짝 눌러놨을 때 사이즈가 52, 53밀리라는 건데, 저어기, 유럽 쪽 사람들은 거기가 좀 커서요, 아니다, 미국 쪽이 더 큰가, 아무튼 동양 사람들은 51밀리가 가장 좋다고 하더라고요.”

궁금증 하나는 ‘불량 콘돔’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
생산 과정에서 전수검사를 해
‘구멍난 콘돔’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불량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여자들의 손톱 때문이다

얼굴이 발그스름해지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옆에 있던 직원분이 “콘돔 사이즈는 유리 몰드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공장 전체에 있는 유리 몰드가 3, 400개쯤 되는데, 다른 스타일의 콘돔을 생산하려면 직원들이 다 달라붙어서 온종일 유리 몰드 교체 작업을 해요. 유리 몰드 하나에 10달러 정도 하는데, 품질에 따라 가격 차이가 꽤 납니다”라는 설명을 곁들여준다. 콘돔에서 나는 과일 향으로 이야기의 주제가 넘어가자 모두들 한번 피식 웃는다. “별의별 향이 다 있어요. 우유도 기본 우유가 있고 딸기우유, 초코우유가 있잖아요. 콘돔에도 기본 고무 냄새 나는 게 있고, 딸기, 살구, 포도, 멜론, 오렌지…, 종류가 많아요. 자극적인 냄새보다 과일 향이 보편적이죠.” 소믈리에처럼 우아하게 콘돔 향의 기본적인 설명을 끝내면, 30년 경력의 베테랑 직원이 “1990년대 중반부터 향이 나는 콘돔을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그냥 고무 냄새만 났지. 그때는 지금에 비하면 수준이 낮았어요. 콘돔 포장할 때 들어가는 오일도 양을 정확하게 맞추지 않았어요. 이제는 요구사항이 많아지니까 품질도 많이 좋아졌지”라는 연륜 가득한 설명을 더한다.

콘돔의 향은 마지막 포장 단계에서 실리콘 오일과 함께 더해지는데, 실리콘 오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들 사뭇 진지해졌다. 콘돔은 왜 멸균 처리를 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제기됐고, 우선 공장 내의 온도가 높기 때문에 공정 자체에서 균이 사라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쪽에서 ‘실리콘 오일은 친유성도 아니고 친수성도 아니기 때문에, 친수성 물체에서 기생하는 대장균들이 기생 및 증식을 하지 못한다’는 전문가적 설명을 내놓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콘돔에 대해서라면 밤새 이야기를 해도 시간이 모자랄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콘돔 이야기를 잘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직원들이 해외 파견 근무를 갈 때면 여러 직종의 공장 사람들이 함께 교육을 받게 되는데, 그때 콘돔 공장 직원들의 인기가 최고라고 한다. 콘돔 공장에서 왔다고 하면, 일단 질문이 쏟아진다. 콘돔의 사용법도 물어보고, 어떻게 해야 발기를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지도 물어보고(아니, 그걸 콘돔 공장 직원에게 왜 물어봅니까!) 콘돔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지도 물어본다. 그런 자리가 잦다 보니 모두들 기본 30분은 콘돔과 성생활에 대해서 ‘썰’을 풀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불량 콘돔’에 대한 것이었다. 사용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콘돔 사용법에 대한 강의도 해준다. 콘돔은 생산 과정에서 전수검사를 하기 때문에 ‘구멍 난 콘돔’이 생길 경우는 거의 없다. 유통 과정에서 상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불량’은 사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가장 많은 불량이 생기는 이유는 여자들의 손톱 때문이다. 콘돔을 개봉하는 과정에서 손톱 때문에 찢어지기도 하고, 만지는 과정에서 찢어지기도 한다.

콘돔을 개인적으로 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외국에서는 개인적으로 장비를 마련해놓고 ‘장인정신’에 입각해 콘돔을 만든다는 얘기다. 라텍스와 다른 물질을 혼합하고, 직접 제작한 유리 몰드를 직접 라텍스에 담갔다가 꺼내길 반복한 다음 잘 말리면 세상에 하나뿐인 콘돔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는 콘돔을 누가 살지는 모르겠지만 풍경은 기가 막히게 그로테스크할 것 같다.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창고로 한 남자가 들어간다. 남자는 특이하게 생긴 유리 몰드를 조심스럽게 라텍스에 담갔다가 꺼낸다. “에잇, 실패야, 이게 아니야!” 콘돔을 찢어버리고 다시 유리 몰드를 라텍스에 넣는다. 수많은 반복 끝에 남자는 결국 균일한 라텍스를 유리 몰드에 입히게 되고, 콘돔 생산에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콘돔이 의료기기 3등급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심사를 받지 않은 콘돔은 생산이 불가능하다. 가끔 장난감 형태의 ‘완구’ 콘돔이 있지만 아무도 성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화이트보드에 그림까지 그리면서 열심히 강의해준 직원 말로는, 콘돔의 형태에는 크게 네 종류가 있다. 밋밋한 일반형이 있고, (지도의 등고선처럼) 굴곡이 있는 콘투어(Contour)형이 있고, 링이나 작은 점이 솟아 있는 돌기형 콘돔이 있고, 콘투어형에다 링과 돌기까지 들어가 있는 이른바 ‘총합형’이 있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명칭은 잘 모르겠지만 직원들끼리 쓰는 용어는 따로 있었다. 밋밋한 일반형은 ‘민짜’라고 불렀다. 링이 들어가 있는 것은 ‘링’이라 불렀고, 굴곡이 있는 것은 ‘콘추라’라고 불렀다. 마지막으로 돌기가 있는 것을 ‘은하’라고 불렀다. 영어로 쓸 때 ‘도티드’(dotted)라는 단어로, 점점이 박혀 있다는 뜻인데, 이걸 ‘은하’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이 맨 먼저 ‘은하’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이름이다. 자작 표어로 기사를 마무리하겠다. 우리 상품 도트 콘돔, 알고 보니 은하 콘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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