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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9 20:17 수정 : 2013.10.10 11:47

이대리 제공

[esc 라이프] 이대리의 직장생태보고서

잘 팔리는 제품과 탄탄대로를 걷는 직장인의 공통점은? 여러가지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넓게 표현한다면 ‘비교대상과 차별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도일 것이다. 연비가 좋거나 주행성능, 디자인 등이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보다 두드러지는 자동차,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맛을 보유한 식당은 고객의 선택을 받는다. 타인이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함을 갖춘 직장인은 장기근속과 고속승진의 혜택을 받는다. 협상에 강한 영업 담당, 획기적으로 비용 절감을 해내는 기획 담당, 도저히 팔리지 않을 것 같은 물건에 매력적인 이야기를 덧씌워 새 생명을 불어넣은 마케팅 담당자의 머리 뒤에는 고고한 아우라가 자리잡고 있다. 동료들은 그들에게 말한다.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임원까지 무난하게 올라갈 사람”이라고.

하지만 세상사가 정정당당한 승부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학습해왔다. 비방 마케팅과 흑색선전, 음해, 로비 같은 단어가 주위에 생생히 살아있는 이유다.

지난봄, 한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대만에서 현지 브랜드에 대해 부정적인 온라인 댓글을 남기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망신살이 뻗친 바 있다. 두 업체 간의 싸움은 초여름 트위터상에서 다시 벌어졌다. 공식 계정을 통해 각자의 우수성을 자랑하며 서로를 비아냥대던 양측은 급기야 지난봄의 ‘댓글 알바’ 사건을 들먹이며 불편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두 기업이 공개된 자리에서 치고받는 동안 또 다른 한 기업은 “진정해 친구들, 이건 단지 휴대폰일 뿐이야”라는 글을 남기며 어부지리로 최후의 승자가 됐다.

A기업의 최근 화두는 ‘업무 영역의 파괴’다. 평소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좋아하는 ㄷ팀장은 신났다. 특별한 능력이 없던 그가 그동안 본인을 드러내는 방법은 밤늦게까지 남아 있기, 주말에 출근하기, 참신한 아부 멘트 개발 같은 것 따위였지만, 타 부서 업무에 대한 개선 아이디어를 빌미로 공식적인 훈수를 둘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타 팀의 취약점을 해당 팀장에게 조언하지 않고 상위 임원들에게 몰래 알린다. 지적의 대상이 된 팀은 곤욕을 치르지만 ㄷ팀장은 ‘회사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자’로 새로이 자리매김했다.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기보다 비교 대상군을 흠집 내 상대적 경쟁력을 갖춘다는 변칙 전략이다. 이런 만행이 계속되면서 ㄷ의 별명은 ‘밟아야 사는 남자(부제: 모두 까기 인형)’가 됐다. 팀원들은 “우리도 언제 까일지 몰라”, “지금은 한 울타리에 있으니 괜찮지만 남이 되면 언제든 내게 비수를 꽂을 사람”이라며 불안해한다. ㄷ에게 당한 팀장들은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한 자, 피눈물 쏟을 날이 올 것”이라며 복수의 기회를 벼른다. 조직 유지에 필수적인 상호간 신뢰가 ㄷ을 중심으로 무너지고 있다.

쓸데없는 곳에 쏟은 에너지는 단순한 낭비가 아닌 파괴적인 손상이다. 고객들은 본질과 동떨어진 비방전에 염증을 느낀다. 직원들은 ‘정치력’ 같은 모호한 것을 앞세워 입지를 키워나가는 리더를 ‘믿는 척’할 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꾸준히 생각해야겠다. 무엇보다 ‘남을 해코지함으로써 얻은 것은 진짜 경쟁력이 아니다’라고 확신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쉽다. 연말 인사고과평가 시즌에 즈음하여 모든 ‘모두 까기’들의 좌절을 기원한다.

H기업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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