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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이면 홍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앞에서 목연포차를 여는 유목연씨와 본격 이동형 목연포차를 알리는 포스터.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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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라이프
넘치는 메뉴, 대용량 시대를 거부하는 좌판 ‘목연포차’와 ‘개인주의 야채가게’ 연 젊은 예술가들
요즘 서울 홍익대 앞에는 이상한 좌판이 열린다. 현란한 입간판과 갖가지 메뉴를 내세운 푸드 트럭이 경쟁하는 거리 한편에서 술 한 잔씩 파는 ‘목연포차’와 당근 반 개도 파는 ‘개인주의 야채가게’다.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하는 예술 프로젝트 ‘소액다컴’의 후원을 받은 사람들이 여는 작은 좌판을 찾았다.
유목형 선술집 ‘목연포차’
10월5일 토요일, 저녁 6시가 되자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 차려진 목연포차에 등이 밝혀졌다. 밤이 좀더 깊어지면 목연포차에서는 가수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나 1980~90년대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보통 포장마차의 3분의 1이나 될까. 대형마트에서 쓰는 쇼핑카트 위에 새집처럼 생긴 나무로 만든 좌판을 얹은 미니 포장마차다. 영업준비를 마친 주인이 접힌 좌판을 펼치자 높이 180㎝에 가로 80㎝ 정도 되는, 3~4명이 서서 두런거리며 술을 마실 정도의 자리가 나왔다.
주종 관계없이 술 1잔+안주=1000원 혼자 먹을 찌개
야채 한 묶음 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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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이면 홍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앞에서 목연포차를 여는 유목연씨와 본격 이동형 목연포차를 알리는 포스터.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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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들의 밥을 챙기는 ‘개인주의 야채가게’와 주인 유재인씨. 좌판 옆엔 ‘필요한 만큼만 낱개로 사는 개인주의 야채가게’를 알리는 간판이 서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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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식탁 위한 ‘개인주의 야채가게’ 다음날 일요일 다시 찾은 서교예술실험센터 앞에선 장을 보았다. 양배추 4분의 1개, 풋고추 2개, 대파 한 뿌리를 샀다. 한번 찌개를 끓이는 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양이다. 이렇게 사고도 1050원. ‘개인주의 야채가게’ 주인은 50원을 깎아줬다. 7월26일부터 ‘대용량 시대를 살아가는 소규모 청춘들을 위해’ 이곳에서 채소가게를 연 사람은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한 유재인(28)씨다. 유씨는 매주 화·목요일은 오후 6시, 일요일엔 낮 1시에 사온 채소들을 좌판에 부려놓는다. 근처 시장과 동네 과일가게에서 사온 것들이다. 고추와 마늘은 부모님이 가꾸는 텃밭에서 부모님 몰래 조달한다. 마늘 한 알에 50원, 대파 한 뿌리에 250원이다. 바나나, 브로콜리, 당근은 잘라서 판다. 대파, 양파가 한 뿌리씩, 고추 2개, 마늘 4알이 든 ‘뭐든지 키트’를 1200원에 사면 찌개든 조림이든 뭐든지 만들 수 있다. 채소가게 주인은 채소가 실려갈 단출한 식탁을 상상했다. “우리 세대에 대한 비난, 비판 이런 것들은 많잖아요. 근성이 없다거나 미리 포기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에 대한 항변이기도 해요. 우리끼리 잘 챙기고 나눠 살 수 있다는 거죠. 이기주의, 개인적이라고들도 하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교육환경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일탈하겠어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심지어 을도 못 되면서 살아도 한끼 밥만큼은 싱싱하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건네는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고요.” 개인주의 야채가게는 “자취방에서, 작업실에서 썩은 대파를 골라내면서 혼자 생각했던 거고 진짜 했을 때 수요가 있을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지, 필요한 일인지 궁금했다”는 유재인씨가 박리다매 시장에 던지는 질문이며 실험이다. 유재인씨가 영업을 시작한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해온 장부를 훔쳐보니 지금까지 총매출은 24만5000원. 유씨는 11월3일까지 100일 동안 영업할 생각이다. “돈 못 버는 일에 이만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술가밖에 없죠. 100일은 이런 곳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홍보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100일 뒤 개인주의 야채가게는 문을 닫아도 이런 가게는 자리잡았으면 좋겠어요. 재래시장에 1인용 채소를 파는 가게를 넣어달라고 서울시에 청원해야 하나 고민중이에요.” 유 작가는 개인주의 야채가게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yacheguail)에서 매일 그날의 가게 이야기를 전한다. 장사나 해볼까, 고민하는 사람은 많다. 정작 필요한 장사는 많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두 작가의 장사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거리는 소소한 좌판들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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