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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6 20:56 수정 : 2013.10.17 11:49

1 지난 10월12일, 강원 인제군 한계령 들머리의 ‘한계3리 캠핑장’에 캠프를 차린 모토캠퍼들. 2 모토캠핑 경력 29년의 손형윤씨가 할리데이비슨 스트리트 글라이더를 몰고 캠핑장에 도착하고 있다. 3 돼지갈비콩비지찌개를 끓여놓고 건배하는 모토캠퍼들. 4 오토바이의 톱박스와 사이드 백에 캠핑 장비를 꽉 채워 싣다.

[esc] 모토캠핑 즐기는 사람들

캠핑은 대표적인 가족 레저이지만 호젓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나홀로 캠핑족들도 늘고 있다.
오토바이에 최소한의 캠핑 도구만 싣고 떠나기, 요즘 중년 남성들의 로망이라고 한다.

주말인 지난 10월12일 강원도 인제군 한계령 자락 한계천 물길 옆의 ‘한계3리 야영장’. 낮 12시 무렵 널찍한 야영장 소나무 숲 그늘 안으로, ‘크르릉~ 끄릉 그릉~’ 저음으로 포효하는 묵직한 오토바이 5대가 줄지어 들어섰다. 오토바이 중엔 그 유명한 할리데이비슨의 투어링용 바이크인 스트리트 글라이더 1600㏄(옵션까지 4000만원대)도 있고, 베엠베(BMW) K1300R 1300㏄(2500만원대)도 있다. “오늘 참가자는 9명입니다. 회원 4명이 더 합류할 겁니다.” 인터넷 카페 ‘모토캠핑’ 매니저 윤광재(31·닉네임 일곱발가락)씨가 일행과 함께 헬멧을 벗으며 인사했다. 서울·수도권에서 출발해 1박2일 ‘번캠’(번개 캠핑)에 나선 모토캠핑 회원들이다.

이날 참가자는 20대부터 60대까지로 주로 개인사업을 하는 남성들. 이들은 각자 오토바이에 “일박할 방과 이불, 부엌 세간살이와 먹을거리 등 1박2일간의 살림살이”를 깔끔하고 단출하게 정리해 싣고 나타났다. 일반 오토캠퍼들이 ‘산더미 같은 짐’으로 표현하는 캠핑 장비들을 이들은 50ℓ짜리 톱박스와 사이드 백 등에 ‘칼같이’ 촘촘히 정리해 싣고 있었다.

특별한 재미가 있을 것도 같고, 한없이 불편할 것도 같은 오토바이 캠핑. “오토캠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황제 캠핑” “낭만이 살아 숨 쉬는 고독한 헝그리 캠핑” 등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수사가 따라붙는 모토캠핑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담한 톱박스(오토바이 뒷자리에 설치한 수납상자)와 사이드 백(양옆에 매단 수납주머니)에서 마술상자처럼 끊임없이 꺼내놓는 캠핑 장비를 지켜보면서, 또 장작불에 돼지갈비콩비지찌개를 끓여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정담을 들으며 “빠지면 빠질수록 낭만적”이라는 모토캠핑의 재미를 들여다봤다.

모토캠핑 첫 동호회 넉달 만에 회원 700여명

모토캠핑이란 모터사이클 캠핑, 즉 오토바이로 떠나는 캠핑을 말한다. “인터넷 카페 만든 지 4개월여 만에 정식 회원이 70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들은 국내 첫 모토캠핑 카페 개설 이후 거의 매주 수도권, 충청권, 강원권 등으로 1박2일의 모토캠핑을 다녀왔다고 한다. 초기엔 4~5명이 캠핑을 나섰으나 갈수록 참가인원이 늘어 최근엔 7~10명씩 나눠 여러 곳으로 캠핑을 다닌다. “멤버가 10명을 넘어서면 대화를 통한 친목 도모도 어렵고, 이동 때 대규모 대열 운행에 따른 부담(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생기기 때문”이다.

혼자 오토바이를 몰고 국도를 달려서
혼자 텐트 치고 혼자 밥해 먹고
혼자 잠자고 돌아오는
고독한 여행이 원래 모토캠핑

카페 매니저 윤씨는 회원 급증에 대해 “모터사이클 애호가 중에 그만큼 새로운 레저생활에 대한 욕구를 가진 이들이 많다는 얘기”라며 “최근 캠핑 바람이 거세지면서, 도로 질주만을 위해 모이던 바이크 동호인들이 바이크를 활용한 캠핑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회원 구성원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데 대부분은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인 중년 남성층이 많다. 700여 회원 중 절반 이상이 “남자로서 인생을 돌아볼 나이”인 40~50대라고 한다. 한 50대 회원은 “젊었을 때 로망이던 오토바이를 타고, 자유롭게 여행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분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같이 또 따로’ 즐기는 모토캠핑 재미

속도감에 몰입하던 바이크족들이 “질주 본능”을 버리고 “고즈넉한 자기반성의 시간”으로 표현하는, 대자연 속 캠핑에 빠져들게 된 이유는 뭘까. 오토바이 경력 10년의 이정한(33·공무원)씨는 “숲속에서 텐트 치고 잔다는 점에서 일반 오토캠핑 재미는 기본이고, 여기에 모토캠핑만의 각별한 세계가 따로 있다”고 주장했다.

“오토바이 캠핑은 본질적으로 나홀로 캠핑입니다. 혼자 오토바이를 몰고 국도를 달려서, 혼자 텐트 치고 혼자 밥해 먹고 혼자 잠자고 돌아오는 고독한 여행이 원래 모토캠핑이죠.” 나홀로 캠핑족들이 홀로 돌아다니다 도로 주행의 안전을 생각하고 비용 부담을 줄이며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함께 모이게 된 것이 바로 모토캠핑 동호회라는 게 매니저 윤씨의 설명이다.

함께 모여서 왔는데 홀로 즐긴다는 게 가능할까? 일행 중 하나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온 한 중년 남성을 가리켰다. 캠핑장 한쪽 소나무 그늘에 1인용 텐트와 개인 타프를 멋들어지게 쳐놓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타프 밑 의자에 홀로 앉아 쏟아져내리는 가을 햇살을 지그시 바라보며 커피 물 끓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 첫눈에도 노회한 캠퍼의 유유자적한 자태가 뚜렷했다.

“오토바이 타고 캠핑을 한 지 29년째입니다.” 스무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캠핑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손형윤(49·사업)씨가 막 물을 내린 커피를 권하며 말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캠핑을 합니다. 산과 들과 하천을 정원으로 삼아 머물면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사업 구상도 하고요. 동호인들과 함께 오더라도 서로 돕는 가운데 되도록이면 개인 시간을 많이 갖도록 노력하죠.”

교통체증 없이 구석구석 누비며 둘러보는 맛

이날 참석한 동호인들은 대형 공용 타프를 중심으로 둘레에 개인 텐트들을 쳐놓고 차를 끓여 마신 뒤, 한계령 넘어 동해안 여행에 나섰다. 일행은 한계령 정상~양양 낙산사~속초 설악동~미시령~용대리~원통 코스를 둘러보고 3시간여 만에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모토캠핑의 특별한 재미 중 하나가 이렇게 베이스 캠프를 마련해 놓고, 주변 볼거리를 구석구석 둘러보는 겁니다. 산골짜기 임도 끝의 경치, 도심 골목 안의 볼거리, 오솔길 끝 절터까지도 신속하게 이동하며 둘러볼 수 있어요.” 윤씨는 “어디를 가든 교통체증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일행이 여행에 나선 뒤 “고독을 좋아하는” 두 사람만 남아 캠핑장을 지키며 각자 “책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사업 아이디어도 구상하는” 자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남아 있던 모토캠핑 경력 1년의 이승윤(37·사업)씨가 한계천 물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탁 트인 자연에서 홀로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 대부분 남성들의 로망 아닌가요? 결국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몰고 캠핑에 나서는 거지요.”

결론적으로 모토캠핑은 “질주하고 먹고 놀다 오는 여행이 아니라, 홀로 달리고 홀로 자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마음을 재정비하는 힐링 여행”이란 주장이다.

모토캠핑 한번, 가족 오토캠핑 한번 조화

남편이, 한때 ‘인생 졸업장’이라 불리던 오토바이 면허를 따고 매주 나홀로 캠핑을 나선다면 반대하지 않을 아내가 있을까? “사실 아내를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듭니다.” 지난해 오토바이를 구입했다는 한 회원은 “폭주족이 아니고 동호인들과 안전하게 다녀오는 여행이라고 설득하지만 불안해합니다. 혼자만 다닌다는 불만도 크고요.”

옆에 있던 노련한 캠퍼 손형윤씨가 답을 내놓았다. “한달에 두번 정도 캠핑을 합니다. 한번은 나홀로 모토캠핑을 하고, 한번은 가족과 함께 오토캠핑을 하죠. 내가 워낙 바이크와 캠핑을 좋아하니 아내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인정을 해주지요.” 손씨는 신뢰의 문제라며 “남편이 안전하게 주행하고, 직장 스트레스를 푸는 등 취미생활을 통해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결국 이해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쿨렐레까지 싣고 왔다. 모토캠퍼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모토캠퍼들은 장비 수납의 달인

동호인들의 장비에 대한 관심은 좀더 작은 것, 더 가벼운 것, 더 짧고 가는 것에 모아진다. 제한적인 오토바이 뒷자리에 모든 장비를 실어야 하므로, 하나씩 버려가며 핵심만 남기는 기술이 바이크 수납기술이다. 윤씨는 “짐을 줄이기 위해 후추 한 통, 설탕 한 봉지도 고민하며 짐을 싸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29년 캠핑 경력의 손씨가 풀어놓은 장비를 들여다보니 입이 벌어진다. 대형 타프와 지줏대, 이너텐트가 딸린 1인용 텐트, 침낭, 매트, 접이식 철제 탁자 2개, 천으로 된 말이식 탁자 1개, 큼직한 의자 1개, 소형 무쇠솥, 커피 짜는 도구, 화로대, 돗자리, 타프, 코펠, 버너, 랜턴, 스피커, 톱, 망치, 비상약품…, 여기에다 쌀과 찌갯거리, 참치회 반찬 등 먹을거리까지, 거의 이삿짐 수준이다. “잘 접어 넣으면 다 들어가요. 접이식·말이식 장비가 많아 더플백 하나와 사이드 백 두개면 충분하고요. 나머지도 뒷좌석에 묶어가지고 다니는 데 부담이 없어요.”

1박2일 모토캠핑에 비용은 얼마나 들까. 이날 동호회원들은 연료비로 각자 3만원 정도를 쓰고, 회비를 2만원씩 거둬 야영장 사용료와 음식 장만 등의 공동경비로 사용했다. 카페 매니저 윤씨는 “모토캠핑은 최소 장비, 최소 비용으로 즐기는 합리적인 캠핑 여행”이라며 “일반 오토캠핑 차량에 비해 야영장 공간도 작게 차지해 캠핑장 비용도 할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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