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23 19:51
수정 : 2013.10.2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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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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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동미의 머쓱한 여행
여자 친구 둘과 함께 셋이서 방콕 여행을 갔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방콕에서 가장 큰 수영장을 갖춘 곳이자, 리조트급 분위기라 꽤 인기가 높은 곳이었다. 수영장 길이가 25m는 되는 곳으로, 하루 종일 이곳에서 놀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여유롭고 부대시설도 훌륭했다. 한참 일광욕을 즐기다 물로 뛰어들었다. 참고로 나는 수영을 곧잘(?) 한다. 기초반부터 시작해 접영 손 젓는 단계까지 착실히 배우고 그만뒀다. 수영을 정석으로 배운 까닭에 물안경도 쓰고 물에 꼬박꼬박 머리도 집어넣어가며 수영을 하지만, 뭐 나름 폼도 괜찮다.
수영장의 한쪽 끝에서 시작해 나는 여유롭게 평영을 하며 중간쯤까지 왔다. 그런데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던 물속 바닥이 저 앞에서 낭떠러지처럼 시커멓게 뚝 끊어져 있었다. 사실 그건 끊어진 게 아니라, 너무 깊어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이 호텔의 수영장은, 한쪽 끝은 낮은 수심으로 시작해 맞은편 끝은 다이빙을 할 수 있도록 수심이 3m가 넘는 구조였다. 아, 그걸 모르고 갑자기 시커먼 바닥과 맞닥뜨린 순간 공포감에 오금이 저려왔다. 발을 딛고 서려 하였으나 이미 그곳도 수심이 내 키를 넘는 곳이었다. 더욱 당황한 나는 결국 물을 먹고 수영장 한가운데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무도 내가 물에 빠졌다는 걸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난 이미 물을 엄청 마셨고, ‘헬프 미’라는 말조차 못할 상황이었다. 바로 1m도 안 되는 거리에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허우적거리며 얼핏 친구들 쪽을 보니, 선탠 의자에 누워 있던 한 친구가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급하게 오는 게 보였다(하지만 그녀는 수영을 못한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가냘픈 “헬프 미”를 한번 더 외쳤다. 그때 할머니 한분이 나를 봤고,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내 목을 팔에 끼고 얕은 곳으로 옮겨줬다. 나는 살기 위한 물기침을 목청이 터지도록 해댔다. 살아났다, 나이가 70살은 돼 보이는 할머니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에 집중시킨 나는, 살고 나니 정말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내 키를 넘는 수심에서는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발이 안 닿는 곳에서는 두려움이 먼저 밀려온다. 그 두려움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으면 이제 해결이 안 된다.
외국 호텔의 수영장 중에는 이런 곳(수영장 한쪽 수심이 엄청 깊은 구조)이 꽤 많다는 것을 그 뒤에 알았다. 골드코스트에서 가본 서퍼스 파라다이스 메리어트 호텔은 수심의 정도가 상상을 뛰어넘었다. 이곳 수영장은 마치 바닷속처럼 만들어졌다. 산호초로 둘러싸인 물속은 수심이 6m가 넘고, 안에는 300여마리의 열대어가 살고 있어 스노클링도 할 수 있다. 폭포와 연못, 인공비치까지 만들어놓아 호텔 수영장이 아니라 마치 해수욕을 하러 온 기분이 든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이렇게 넓고 잘 꾸며진 호텔 수영장에 가시거들랑 물에 뛰어들기 전에 먼저 수심부터 체크하시길. ‘물 반 사람 반’ 수영장에서도 아무도 모르게 물 먹고 갈 수도 있으니. 물론, 수영 잘하는 70살 할머니가 대기하고 계신다면 다행이지만.
이동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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