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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가리산 정상의 제2봉에서 바라본 제3봉 쪽 풍경. 멀리 소양호 물줄기 일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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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여행
낙엽송 그윽한 가을 정취 느낄 수 있는 홍천 가리산과 괘석리 낙엽송 숲
산 높고 골 깊은 강원도 백두대간 서쪽 자락에 ‘너브내’ 홍천이 있다. 전국 지자체 중 면적이 가장 넓다는 고장이다. 서울시의 3배 넓이(1818㎢)다. 땅이 넓으니 고산준령이 줄을 잇고, 골마다 흘러내린 물길이 굽이굽이 돌 때마다 몸을 섞어, 한강으로 흘러드는 넓은 내(너브내: 홍천)를 이룬다. 오대산·계방산·응복산·가칠봉 등 1000m 이상급 고봉이 즐비한데, 홍천 두촌면과 춘천 동면 사이에 솟은 가리산(1051m)도 그중 하나다. 지난 주말, 화려하지는 않아도 수채화같이 단풍이 은은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가리산의 가을빛을 만나고 왔다.
국내 ‘100대 명산’의 하나인 가리산은 ‘홍천 9경’ 중 제2경에 속하는 경치를 자랑한다. 멀리서 보면, 고원처럼 평탄한 산줄기 위에 뾰족한 바위 봉우리 세 개가 모여 솟았다. 이 모습이 마치 수확한 볏단 등을 엮어 쌓은 낟가리처럼 보이는 데서 가리산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한다.
낟가리 닮은 가리산 정상 세 바위 봉우리
산행 들머리는 큰평내마을 가리산자연휴양림이다. 여기서 출발해 능선과 정상을 거쳐 한바퀴 돌아 내려오는 2개 코스의 등산로가 있다. 휴양림에서 큰장구실 계곡을 올라 합수곡~가삽고개~정상~샘터~무쇠말재 거쳐 다시 합수곡~휴양림으로 내려오는 코스(3시간30분·7.2㎞)를 탔다. 산길은 여느 산처럼 평이하지만, 밧줄과 쇠난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정상 막바지의 바위절벽을 오를 땐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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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두촌면 괘석리 범의터 주변의 낙엽송 숲. 수령 30~40년짜리부터 70년 된 아름드리나무까지 낙엽송들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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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초입은 붉은 단풍
위로 갈수록 참나무·낙엽송
노란빛 단풍으로 고즈넉 손바닥만한 낙엽들 두툼히 깔린 능선길을 걷자니 ‘6·25 전사자 탐사 식별호’라 쓰인 리본들이 눈에 띈다. 한달 전까지 이 일대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탐사 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가리산 주변은 한국전쟁 때 미 2사단과 중공군 사이에서 밀고 밀리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모든 것을 지켜봤을 신갈나무 백년 고목들은 올해도 큼직한 갈잎들을 떨구기 시작했고, 탐사를 위해 팠던 구덩이들에 다시 낙엽은 쌓여 바람에 쓸리고 있다. 산 정상은 ‘1, 2, 3봉’이란 멋없는 이름이 붙은 세 개의 가파른 바위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등산로는 먼저 2봉을 오르고, 3봉을 올랐다가 내려와 최고봉인 1봉으로 올라 하산길로 내려서게 돼 있다. 1봉에선 주로 휴양림이 보이는 남쪽 전망을, 3봉에선 소양호 물길 등 북쪽 전망, 2봉에선 남쪽 전망과 함께 소양호 물줄기 일부도 감상할 수 있다. 가리산 자락에 전해오는 전설 한 토막. 산 서쪽 중턱엔 ‘한천자 부친 묘’라 전해오는 무덤이 있다. 옛날 산자락에 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집에 찾아온 두 스님의 말을 엿듣고 부친의 묘를 산 중턱에 쓴 뒤 중국 한나라로 가 천자(황제)에 올랐다는 전설이다. 하산길에 제1봉 바로 밑 거대한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샘터(가리산 약수터)에 들러 목을 축일 수 있다. 갈라진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거대한 절벽 바윗돌 자체에서 미량의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석간수다. 순하고 부드러운 석간수 한 모금에 갈증이 싹 가신다. 나뭇가지를 꺾어 대면 물을 받을 수 있다. 오래전 이곳이 바다였을 때 배를 매던 쇠말뚝을 박았던 곳이라 전해오는 무쇠말재와 밑동이 이어진 참나무·소나무가 얼싸안고 자라는 연리목을 보고 비탈길을 한동안 내려오면 다시 합수곡 갈림길을 만나 휴양림으로 내려가게 된다. 3시간30분 코스라지만, 쉬엄쉬엄 4시간 넘게 걸렸다. 정상 부근 바위절벽이 가팔라, 노약자는 산행을 삼가는 게 좋다. 괘석리 70년 된 낙엽송 숲길 걸어볼만 60~70년 전에 심어진 아름드리 낙엽송 숲이 볼만하다 해서 두촌면 괘석리의 골프장 뒷산을 찾았다. 범의터(벌의터)라 불리는 해발 800m 지역에, 일제강점기부터 심어진 낙엽송 숲이다. 최근 새로 들어선 골프장 정문 왼쪽에 숲으로 오르는 임도 들머리가 있다. 차량 차단기 지나 널찍한 임도를 걸어오르면, 길 좌우로 수직으로 치솟은 늘씬한 낙엽송 숲과 잣나무 숲이 이어진다. 일부 심은 지 30여년 된 나무들도 있지만, 곳곳에 솟은 굵직한 나무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일부 구간엔 나무 흉고(가슴높이) 둘레가 어른 팔로 안지 못할 만큼 커다란 낙엽송들이 6~7m 간격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았다. 임도 개설공사 점검차 숲에 와 있던 산림조합 직원 김경배씨는 “낙엽송들 수령을 측정해 보니 대개 65~70년이었다”며 “높이는 최소 26m 이상, 흉고 지름은 최대 70㎝나 되는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홍천군 산림조합 쪽에 따르면 20㏊ 넓이의 산자락에, 6000주가량의 낙엽송들이 자라고 있다. 주로 1937~59년에 심어진 나무들이다. 낙엽송 우량종자를 채취하는 채종림으로 지정·보호돼 온 숲(도유림)으로, 낙엽송 숲으로는 드물게 오래된 숲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숲은 곧 사라져버릴 처지에 놓였다. 올해 채종림 지정이 해제됨에 따라, 도에서 벌목해 목재로 쓴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두촌면 주민 변유근(55)씨는 “아름드리 낙엽송 숲을 보전해 생태·건강 쉼터로 활용하면 좋겠다”며 “숲속에 생태탐방로와 쉼터를 만든다면 요즘 관심이 높아진 힐링 여행지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낙엽송 숲은 이번 주말께부터 노랗게 물들기 시작해 숲에 낙엽을 흩뿌릴 전망이다. 홍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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