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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30 20:17 수정 : 2013.10.31 15:02

1 서리얼벗나이스의 이수형·이은경은 세계를 여행하는 콘셉트로 각 도시를 상징하는 문자와 그래픽을 섞었다. 2 김서룡은 ‘우아한 남성 슈트의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게 고유의 시적인 슈트를 선보였다. 3 스티브제이앤요니피의 정혁서·배승연은 유니콘 프린트와 자수 장식을 썼고 액세서리로 롱보드를 선택했다. 4 카이의 계한희는 힙합 문화와 하이패션, 스트리트패션의 상호관계에서 받은 영감을 효과적으로 풀었다. 5 고태용의 비욘드클로짓은 ‘소년들의 놀이터’랄 수 있을 정도의 일상복과 운동복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esc/스타일]
패션평론가 홍석우의 서울패션위크 리뷰…경향의 일원화 벗어난 각자의 개성 돋보여

지난 10월23일 2014년도 봄/여름 시즌 서울패션위크가 6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최근 몇번의 서울패션위크는 미리 새로운 패션을 만나는 반가움과 운영상의 안타까움이 항상 공존했지만 이번 행사는 양쪽 모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전 컬렉션 지정 좌석제를 처음으로 도입해 현장 혼선을 줄였고, 모바일 표 예매도 불필요한 과열을 막는 데 적절했다. ‘아시아 패션 허브’를 위해 주변국 디자이너들의 참여가 늘었다는 점도 반갑다.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 남성복 중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디자이너는 김서룡이다. ‘우아한 남성 슈트의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이 진중한 디자이너는, 컬렉션의 외부 요인을 통제하고 오직 ‘옷’에 집중했다. 너풀거리는 통 넓은 흰색 바지는 연한 크림색 겹여밈 재킷(더블브레스티드 재킷)과 함께했고, 발에 꼭 맞는 운전용 구두(드라이빙 슈즈)와 낙낙한 통의 바지를 접어 입고 펄럭이는 큰 치수(오버사이즈) 코트를 걸쳤다. 노장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이 대체로 동시대 패션을 반영하는 것에는 소홀한 데 견줘, 이번 김서룡 컬렉션은 동시대의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적인 슈트를 만드는 디자이너임을 입증했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보여주며 모델들에게 시구절을 들게 한 씨와이초이 최철용의 무대.

‘시위자들이 아름다운 시구절을 들고 걸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컬렉션을 출발했다는 씨와이초이(Cy Choi)의 최철용은 항상 ‘경계’에 선 옷과 실루엣, 물건과 액세서리, 활자와 음악 그리고 예술을 이야기한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패션(혹은 옷)이 보여주는 ‘이미지’와 그 대척점의 ‘글’(텍스트)을 결합했다. 유희경 시인이 직접 낭독한 시를 들려준 도입 영상은 컬렉션의 주제이자 핵심이었다. 시를 ‘단어’와 ‘문장’으로 조각내어 붙여 재가공한 물건(오브젝트)과 몸에 꼭 맞는 검은 슈트, 글자를 가린 보호 필름(프로텍티브 필름. 일종의 방수 소재)을 붙인 스웨트셔츠, 라이더재킷이 인상적이었다.

선명한 색상과 여성복에 스며든 장식
힙합 문화에서 빌린 유니섹스 스타일
차분한 단색조의 남성복 등이 열쇳말

스티브제이앤요니피의 정혁서·배승연은 ‘팝 유니버스’라는 주제로 스트리트 패션 분위기의 남성복과 정교한 장식이 들어간 여성복을 함께 선보였다. ‘로맨틱 스포티즘’이라 칭한 컬렉션답게 유니콘 프린트와 선명(네온)하지만 부드러운 위장색(카무플라주)이 조화를 이뤘다. 두 디자이너가 최근 몰두하는 취미인 롱보드(스케이트보드의 일종)는 가장 돋보이는 액세서리 역할을 했는데, 피날레 뒤 직접 롱보드를 타고 무대를 한 바퀴 도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관객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스티브제이앤요니피의 스포티즘에서 주목할 것은 몸을 감싸는 정교한 자수 장식의 여성용 반투명(시스루) 코트와 대비되는 큰 치수의 남성복이었다. 마치 최근 힙합 뮤지션의 옷차림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디자이너 정혁서의 평소 스타일이 반영된 ‘현실적인 스트리트웨어’였다.

여성복 컬렉션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인 푸시버튼의 박승건은 지난 시즌에 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인상이었다. 현대 문화의 상반된 개념들인 비주류와 주류, 여성성과 남성성, 관능미와 활동성의 결합에 중점을 둔 디자이너답게 빨강과 파랑이 섞인 사선 체크무늬의 마(리넨) 소재 스웨트셔츠, 바지 가장자리에 주름 장식을 단 청아한 하늘빛 바지, 해군복의 자수 장식을 덧댄 연갈색 슈트 등이 주로 눈에 띄었다. 푸시버튼의 의외성에 열광하는 기존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의도 공원 텐트에서 치러진 서울패션위크의 스타 디자이너, 고태용의 비욘드클로짓 컬렉션은 경쾌한 소년들의 놀이터로, 주제는 ‘체육관’(짐)이었다. 각종 운동기구 속에 자리한 모델들은 고태용 특유의 프레피 룩(미국·영국 등지의 사립학교 학생 같은 스타일)에 재치 있는 일러스트를 담은 고유 무늬(패턴)와 만나 토트백, 체크무늬 셔츠, 모자(후드) 달린 테일러드 재킷 등을 선보였다. 일상과 운동의 결합을 암시하는 큰 치수의 미식축구용 저지 티셔츠부터 민소매 셔츠와 함께 연출한 운동복(트레이닝) 바지를 윈드브레이커, 이른바 ‘스타디움 점퍼’로 부르는, 대학·고등학교의 대표팀 재킷인 바시티 재킷과 연출했다. 노랑과 주황, 감색과 낙타색처럼 대비되는 색을 영리하게 결합한 컬렉션이었지만, 옷의 만듦새가 더 보완되면 어떨까 하는 점은 아쉬웠다.

피날레 뒤 보드를 타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디자이너 배승연과 정혁서.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한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의 첫 주자, 그라운드웨이브의 김선호는 한국 전통 누빔 소재와 군용 항공 재킷에 쓰이는 나일론 소재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덧칠한 군용 가방과 운동화로 참신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쇼의 주제는 ‘자가복제한 우주복’이었는데, 이를 위해 총 스무 벌의 일체형(올인원) 슈트로만 런웨이를 채우는 모험을 했다. 동일한 패턴의 옷 한 벌에 조금씩 세밀한 변형을 가한 모습은 신진 디자이너의 패기 그 자체였다.

새로 ‘제너레이션 넥스트’에 이름 올린 서리얼벗나이스의 이수형·이은경은 완성도 높은 컬렉션으로 찬사받았다. 세계 주요 도시를 여행하는 콘셉트로 각 도시를 상징하는 문자와 그래픽을 섞은 티셔츠와 판초는 선명한 푸른색(옵티컬 블루)과 빨강, 밝은 노란색(라임 옐로)으로 채운 드레스와 균형을 이뤘다. 즐겨 쓰는 네오프렌(합성고무의 일종) 소재는 둥근 어깨의 단정한 감색 블루종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봄 서울패션위크의 신진 여성복 디자이너 중 누구보다도 큰 기대를 받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한다.

고작 몇 시즌 만에 ‘제너레이션 넥스트’의 기대주가 된 계한희의 카이는 시즌마다 한두 가지 특징적인 그래픽-이번 시즌에서는 ‘아픈 청춘을 위한 치유’라는 주제로 반창고를 상징으로 내세웠다-을 만들고, 그것을 각기 다른 콘셉트의 남성복과 여성복으로 풀어낸다. 기본적으로 여성복에 디자인 기반을 두지만, 근래 힙합 문화와 하이패션,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영감받은 요소가 곳곳에 드러났다. 다만 최근 힙합 문화의 열풍은 분명히 매력적인 소재이지만 카이의 진가를 드러내는 것은 결국 여성복에 달렸지 않나 싶다.

최근 하이패션은 물론 스트리트 패션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요소를 적절히 버무린, 한껏 공들이면서도 딱 하나로 귀결할 수 없는 개성을 지닌 패션디자이너들의 향연이었다. 주로 힙합을 중심에 둔 대중음악과 하이패션, 자유분방한 거리(스트리트) 문화와 고급 기성복의 조우, 브랜드 고유의 로고와 모노그램의 강조와 정교한 자수 및 주름 장식의 부각 그리고 큰 치수와 가느다란 실루엣의 결합까지. 사실 패션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새로운 시즌의 ‘경향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도 봄을 맞이하는 선명한 색상과 여성복 곳곳에 스며든 장식, 힙합 문화에서 빌린 유니섹스 스타일과 그에 대비하는 차분한 단색조의 남성복 등이 주요 키워드로 읽혔다. 하지만 수년 전 패션위크를 보며 느꼈던 ‘경향의 일원화’에 관한 아쉬움이 점차 옅어지고, 디자이너 각자가 자신만의 길을 걷는 지점을 본 것은 이번 서울패션위크의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자사의 기획 브랜드 상품을 직접 제조하여 유통까지 하는 전문 소매점인 에스피에이(SPA) 브랜드의 득세와 세계 패션 시장의 위축 같은 외부 요인들에 맞서기 위한 패션디자이너들의 힘은, 거대 브랜드가 하기 어려운 지점을 영리하게 찾고 그것을 독자적인 감성으로 풀어내는 ‘다양성’에 있다고 믿고 있다.

홍석우/패션 저널리스트·<스펙트럼> 편집장

사진 서울패션위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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