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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30 20:24 수정 : 2013.10.31 22:06

영화 <연애의 온도> 화면 갈무리

[esc/커버스토리] 싱글남녀 3인의 뒤끝 있는 이별 이야기
싱글 남녀 3인의 고백 ‘내가 겪은 이별의 뒤끝’

‘고집멸도’(집착을 버리고 해탈에 이른다는 불교 용어)를 아무리 되뇌어봐도 속이 가라앉지 않는다. “왜 날 버렸어?” “우리가 남남으로 살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멈추기가 어렵다. “모든 이별은 실전”이라고 하더니 과연 실연처방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랑이 대부분 영화와 달랐던 것처럼 이별도 그랬다. 낭만적 사랑의 종말 대신 뒤끝 있는 이별을 견뎌온 3명의 현실적인 이별기를 소개한다.

나 혼자 떠난 게 아니었어

마음을 내주었던 애인들은 헤어지고도 마냥 안타까웠다. 사랑은 식었어도 연민은 여태 그대로여서 늘 마음 한쪽이 무지근했다. 몇해 전 애인을 두고 비행기로 열 시간이나 떨어진 나라로 홀랑 달아나면서 나는 새 전화번호를 그에게 일러주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하루에 한 번씩 이메일을 보내왔고 나는 ‘수신확인’을 들킬까봐 일 년이 넘도록 그것들을 열어보지 않았다. 나는, 무사한 척하고 싶었다. 네가 없어도 나는 이렇게나 잘 지내. 나는 태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화번호를 일러준 적 없는데도 전화가 울렸다. 새벽 세 시. 아주 기쁘거나 아주 불행한 소식들이 전해지는 시간이다. 서늘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고 그는 말도 잇지 못하고서 울기만 했다. “잘 지내라고 했잖아. 왜 울어.” 전화통을 붙잡고 눈물범벅이 되었을 그가 안쓰러워 나는 침대 밑으로 내려와 쪼그려 앉았다. “울지 마.” 해줄 말이 없어 나도 같이 울었을 것이다, 아마. 뜬눈으로 새벽을 보냈고 며칠 동안 얼이 빠져 지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내온 시간들이 다 거짓말 같았다. 그만 돌아갈까. 그래야 하는 걸까. 그렇게 일주일쯤 보냈는데 선배 하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다짜고짜 그가 한 말은 “미안해”였다. “뭐가?” 무심하게 물었다. “며칠 전에… 내가 술 먹고 전화해서 막 울었지? 통 기억이 안 나는데 다들 원성이 자자하더라고.” 이런, 너였단 말이냐. 하마터면 전화기를 집어던질 뻔했다.

일 년하고도 반이나 더 지나 나는 한국에 돌아왔고 헤어졌던 그를 다시 만났다. 단체 모임이었는데 그 자리에 그가 올 것을 짐작했기 때문에 나는 공들여 메이크업을 했고 가장 예쁜 옷을 챙겨 입었다. 그 없이 잘 지냈던 시간들을 칭찬받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제법 시크한 표정으로 서로를 안아주었다. 예전보다 마른, 하지만 거의 그대로인 그의 등뼈가 하나하나 만져졌다. 그러나 그는 여섯살이나 어린, 예쁜 아가씨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했다. 맥주나 한잔할까, 말하려 했던 나는 그때 알았다. 이별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하는 것만큼 그도 이별을 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맹하게도 그때야 알았던 거다. 친구들은 그의 결혼식에 함께 가자 했지만 마침 그때 나는 조금 뚱뚱해져서, 갈 수가 없었다. 옛 애인은, 예쁠 때나 만나는 거였다.

김서령 소설가


영화 <연애의 온도> 화면 갈무리

그래 나 뒤끝있는 남자다

겨울이었고, 달이 밝았다. 구석에 쌓인 눈이 환하게 빛나던 방학이었다. 이별을 통보받은 지 2년4개월 정도가 지났을 즈음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적은 양의 술을 마셨다. 그러니까 학교 선후배들과 즐겁게 맥주 한 잔, 딱 한 잔만 마시고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절대 취하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였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셔서 잠이 깰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하고 싶어졌다. 매일 생각나던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2년4개월 전에 지웠지만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남은 번호를 휴대전화에 꾹꾹 눌렀다. 신호가 가고, 한참 뒤에 그녀가 받았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야, 너 나 왜 찼냐?” 한숨소리가 들렸다. 나도 숨을 내쉬었는데, 내 숨은 하얀색이었다. 나는 머릿속이 백지 같아서, 숨이 하얗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신기해 계속 숨을 내쉬었다. 한참 뒤에 그 여자가 “이러지 마. 원래 다 그런 거야. 남녀가 사귀면 헤어지기도 하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궁금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으니까. 우리가 헤어진 이유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어서 네가 나를 싫어하게 된 이유를 알려달라고 졸랐다. 협박조로 들릴까봐 다정하게 물었다. 목소리 톤은 약간 높았고, 추워서 조금 떨렸다. 나름 애교도 피웠다. 술에 취해 전화하는 찌질한 구남친이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나는 계속 질문했는데, 그 여자는 한숨만 쉬었다.

우리는 아름답게 이별했다. 카페에 마주 앉아서 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사실 난 그때도 이해가 안 됐다. 왜 우리가 헤어지냐고 물었지만 그 여자는 말없이 일어났다. 답답했지만 화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참고 있었다. 그래서 2년4개월 동안 참았다. 더는 못 참겠다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이제는 이유를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고, 새벽 4시라고, 출근해야 된다는 동문서답을 했다. 오히려 그녀가 취한 것 같았다. 나는 이성적인 남자답게, 차근차근 따져 물었다. 다른 사람이 생긴 것도 괜찮고, 그냥 내가 싫어진 것도 괜찮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앞으로 얼굴 볼 일도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네가 나빴다는 소리는 안 할 거고, 그렇게도 생각 안 한다. 그러니까 이유만 알려 달라. 구걸하듯이 물었다.

결국 그녀는 “야 이 새끼야, 눈에 흙이 들어가는 일이 있어도 다신 너랑은 상종 안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의 이별은 미스터리로 남겨졌다. 종결되지 못한 이별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다시 겨울이 온다.

조진혁 칼럼니스트


이별능력자 자격 반납!

나로 말하자면, 점점 이별을 잘하게 된 사람이다. 내가 제일 자신있는 이별은 ‘뭐가 지나갔냐?’ 하는 식의 무미건조한 이별이다. 뭐 하루아침에 그렇게 이별능력자가 된 건 아니다. 나도 한때 징글징글하게 헤어져 보았다. 매달리고 질척대고 울고불고 욕하고 소리 지르고 그의 방 창문 밖에서 비를 흠씬 맞으며 동정에 호소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대동해서 협박도 해보고, 그러면서 서서히 ‘내게 좋은 이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스윽 연락이 끊기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는 그런 이별. 그런데 한동안 이별능력자로 잘 살아가던 나에게 이별을 다시 알려준 한 남자가 있었다.

식은 사랑을 방치하는 건 죄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런 기운이 둘 사이를 오가면 자연스럽게 이별의 수순을 밟는다. 그와도 그랬다. 더 이상 떨리지 않고, 그의 얘기가 지루하고, 얼굴도 점점 오징어로 보이고, 나의 일과를 왜 보고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이 연애를 왜 하는 건지 목적도 없고, 애인과 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여겨지고…. 슬슬 내 식대로의 이별을 시작할 타이밍이다.

이별에서 중요한 건 티를 팍팍 내야 한다는 거다. 지루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면 중간중간 하품을 하고, 자꾸 다른 일들이 생겨 약속을 미룬다. 이쯤 되면 이별 완료! 더 이상 그 남자에게서 연락이 없다. 또 뭐가 지나갔나, 또 하나의 사랑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쯤 뒤에 그 남자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어 뭐지? 이 반가운 기분은? 왜 떨리지? 이 사랑, 식은 게 아니었나? 내 식대로의 이별공식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진짜 사랑을 잊어버린 건가? 쪼르르 달려 나갔다. 아, 멀리에 그가 보인다. 떨린다. 만지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려는 결심을 굳히고, 앞에 선 내게 그이가 건넨 말. “저기 미안한데, 여자친구가 너랑 끝난 게 확실한 건지 확인해야겠다고, 니가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어.”

그사이 새로 생긴 그의 여자친구는 내 후배였다. 남자가 나를 못 잊었다고 생각하던 그 여자는 ‘확인사살용 만남’을 기획했던 거다. 이런 자리에서 왜 눈물이 나니. 이별, 반납하고 싶다. 그날 이후, 나는 이별능력자 따위 얘기는 다시 못 하게 되었다.

구모니카 M&K 출판사 대표


>>> 내 마음에 고통을 허하라

뒷날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이별은 어떤 모습일까? 고수들에게 물어봤다.

먼저 기본편. 영화 <연애의 목적> 시나리오를 쓴 고윤희 작가는 <연애잔혹사>라는 책에서 기본 예의를 갖출 것을 당부한다. 차는 사람은 헤어지자는 말을 정확하게 하고,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차이는 사람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사귀었던 이야기를 소문내거나 옛 애인 주변에 알짱대는 건 최악이다. 마지막으로 웃는 사람이 진짜 승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단다.

팟캐스트 ‘남자를 말해주마, 순정마초’ 진행자 박영진씨도 지난 사랑을 잊는 가장 ‘섹시한’ 방법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을 추천한다. “차였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면 찬 사람이 오히려 당황하고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모저모 따져도 “뒤태를 잘 관리하자”는 말이 맞다.

그러나 당장 내 마음속에 차오르는 슬픔과 상실은 어쩔 것인가. 심리상담가 이승욱씨는 “쿨한 이별? 그런 건 없다. 헤어지면 아픈 게 정상”이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회복하고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신감을 찾는 것, 그게 건강한 거다. 헤어지자마자 새 애인 찾는 사람, 죽을 둥 살 둥 하면서도 못 헤어지는 사람, 헤어지자고 했더니 칼부림 내는 사람들은 애착 형성이 잘못된 집착형이나 양가감정형 사람들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마리 루티 교수는 책 <하버드 사랑학 수업>에서 이별 뒤 우리가 떠나간 사람의 부정적 특성을 내면화했는지, 긍정적 유산을 받았는지를 따져보자고 충고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고통을 허용해야 합니다. 연인은 우리의 삶에 들어올 때뿐만 아니라 떠날 때도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고통을 견디며 자신을 돌아보라, 이별의 고급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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