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13 20:26
수정 : 2013.11.1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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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티브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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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한식대첩>과 함께하는 전국한식순례기
어쩌면 서울깍쟁이라는 말은 서울음식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른다. 예부터 서울 토박이들은 가짓수는 많게, 양은 적게 만들었다. 송편도 한입에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알뜰’과 ‘야박’을 오가는 크기다. 예절과 품위를 중요하게 생각한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영향이다. 밥상에서도 먹는 폼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서울음식은 조선시대 궁중음식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가 없다. 다채로웠던 궁중음식은 반가의 주방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에는 역관, 의관 등 부를 축적한 중인계급의 밥상이 매우 화려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왕실은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했으나 후대로 갈수록 화려한 채식요리를 먹었다. 고기음식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국수는 조선시대 한양의 상류층이 즐긴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밀 생산이 쉽지 않았던 한반도의 사정 때문이다. 서울에서만 생산되는 이렇다 할 특산물은 없지만 전국의 산해진미가 모두 모여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꽃피웠다. 짜지도 맵지도 않았던 서울음식은 갖은 양념을 곱게 다져 썼다. 상차림은 다른 지방과 달리 보는 즐거움을 최대한 살렸다.
이런 서울음식의 배경 때문에 한식 서바이벌 프로그램 <한식대첩>의 서울팀인 김경미(56)씨와 유경희(55)씨는 부담이 컸다. 김씨는 “한시간 안에 서울음식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는 서일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음식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여러 강좌를 운영하는 이다.
유씨는 북촌전통주문화연구원에서 한식을 강의한다. “주로 우리 장류나 장아찌를 가르쳐요.” 경쾌한 목소리에는 활력이 넘친다. 그는 쉰이 넘은 나이에 혜전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했다. 10학번이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자 “어릴 때부터 이루고 싶었던 일을 부담 없이” 시작했다. 남편은 6남매의 장남이었다. “시동생, 시누이까지 결혼시키고 이제 내 일을 시작해야겠다 생각했지요.” 충남 홍성군에 있는 혜전대학교를 가려면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매일 밤 9시가 돼야 집에 돌아왔다.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즐겁기만 했죠.” 음식은 그의 일상을 꿈과 희망이 가득한 세상으로 바꿔놓았다. “요즘은 늙은 호박이 한창 맛있을 때예요. 가을 고추장도 맛나죠.” 가을 고추장은 차가운 날씨 탓에 천천히 숙성되어 더 찰지고 맛깔스럽다. 이 둘이 만든 ‘돼지머리 모듬구이(사진)와 늙은 호박 겉절이’는 7회 우승을 안겨줬다. 김씨는 “예전에 강인희 교수(2001년에 작고한 한국음식 대가)가 돼지머리 고기에 삶은 달걀을 섞어 누르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머리 고기도 콧등이나 턱 등 부위에 따라 맛이 다르다. 살을 꼼꼼하게 발라내 배즙에 재웠다가 구웠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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