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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7 20:19 수정 : 2013.11.28 10:06

마고걸스 회원들이 핼러윈 장식을 꾸민 뒤 낙엽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매거진esc] 스타일
아기자기함 속에 친자연적인 스타일 자랑하는 여성 캠핑 모임 ‘마고걸스’

숲속에 요정들이 나타났다! 나무 사이로 다니며 땅에 떨어진 가지를 줍고, 이파리를 긁어모으며 살 집을 꾸미느라 분주하다. 나뭇가지에 털실을 매달고, 나쁜 꿈을 쫓으면서 좋은 꿈을 지켜준다는 인디언 부적 ‘드림캐처’를 건다. 양모를 압축해서 만든 펠트로는 버섯을 만들어 집 밖에 내놓았다. 옷차림만으로도 한눈에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털실 모자를 쓰고 치마를 입었다. 손목과 발목엔 토시가 도톰하다. 목에는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젓가락이 깃털 장식과 함께 달랑거린다. 다 낡아빠진 나무바구니 손잡이엔 털실이 둘둘 말려 있다. 나무접시 위엔 버섯 요리를 얹어 먹고, 텐트 위에는 바람개비가 빙빙 돌아간다.

무겁고 화려한 장비 위주의 오토캠핑 사이를 비집고 ‘걸스 캠핑’이 뜨고 있다. 텐트 설치부터 요리까지 남자들이 모두 해내는 기존 캠핑과 달리 여자들만을 위한, 여자들에 의한, 여자들만의 모임이다. 이들의 캠핑에는 소박하고 따뜻한 소품과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가볍고 쓸모있는 집안의 물건들을 가져다 자연에서 쓰고, 아름다운 복장과 자리(사이트) 꾸밈을 한 채 집시처럼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걸스캠핑족 가운데 700여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마고걸스’(cafe.naver.com/magogirls)는 독특한 캠핑 스타일링으로 유명하다. 20대부터 40대까지 기혼과 미혼의 여성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핼러윈데이를 기념해 이달 초 경북 청도 운문사 야영장으로 전국 회원 40여명이 모이는 캠핑을 다녀왔다. 레깅스에 긴 원피스, 털실 모자를 쓴 ‘소녀들’은 ‘마고빌리지’ 표지를 세우고 텐트 앞에 핼러윈데이용 호박 장식과 풍선을 내걸었다. 나뭇가지에 드림캐처를 걸고 버섯 모양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 마고걸스를 처음 만들어 “하는 일 없는 대장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이지영(29·시스템엔지니어·울산)씨는 “뜻한 바는 아니지만 비구니 사찰이 있고 ‘음기’가 강한 곳이라 ‘걸스 캠핑’의 정체성과 꼭 맞았고 주위에서도 예쁘게 꾸며놓았다며 구경꾼들이 많이 왔다”고 했다.

2 ‘마고마을’ 입구. 3 젓가락 목걸이. 4 마고걸스의 상징인 버섯 모양의 음식들. 5 회원들은 털실과 다양한 천제품을 즐기는 편이다. 6 너덜너덜해진 바구니 손잡이를 털실로 감아 예쁘게 재탄생시켰다.※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그는 2009년부터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캠핑에 푹 빠졌다. 겨울날 까만 밤하늘 아래 친구와 함께한 캠핑은 불편함보다 오히려 낭만과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귀국한 뒤 블로그(nutgum.blog.me)를 열고 그해 4월께 뜻 맞는 친구들을 모아 걸스 캠핑 동호회인 ‘마고걸스’를 만들었다. “고가의 장비를 갖춰야만 ‘감성 캠핑’으로 인정받는 현실을 보고 놀랐고, 하나의 캠핑 스타일에서 벗어나 여자들만의 아기자기한 캠핑을 새로 선보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해 리사이클링에 매료됐고, 지금까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즐긴다. 요즘은 악몽을 물리치는 드림캐처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회원들 사이에서도 집안에 있는 소품을 재활용한 것들이 인기를 끈다. 다도와 천연염색을 하는 어머니의 애장품들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너덜너덜해진 나무바구니 손잡이를 털실로 감고, 찻잔을 받치는 차탁을 갖고 와 접시로 썼다. “할머니들이나 옛날 어머니들이 쓰시던 것들에서 힌트를 얻어요.” 이씨는 그밖에도 표면이 반들반들한 벚나무 가지를 깎아 젓가락으로 만들었다. 양모 펠트로 젓가락 보관함을 만들어 깃털을 달고 목에 걸면 그대로 액세서리가 됐다. 마고걸스의 상징인 버섯을 함께 모여 만드는 것도 그들이 즐기는 놀이 가운데 하나다. “캠핑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멍하게 있는 것이니까요.” 이씨의 말대로 나무에 걸어두면 팔랑거리면서 바람의 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걸개(갈런드), 바람개비도 마고마을에서 흔한 풍경이다. 어떤 회원은 손수 천을 끊어다가 텐트를 만들기도 했다. 침낭에 도전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는 회원들도 있단다.

‘걸스 캠핑’이다 보니 복장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남자들의 눈치 볼 것 없이 그들만의 맵시를 맘껏 즐기고 패션왕을 뽑기도 한다. 마고걸스 회원들은 캠핑장에서 바지보다 편한 긴 원피스를 주로 입는다. 보기에도 예쁠 뿐만 아니라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도 부담 없고, 손으로 잡아 걷어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할 때도 편하다. 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겨울에는 좀 다르지 않을까? 웬걸, 겨울에도 치마를 즐겨 입는다고 한다. ‘캠핑 요정’은 추위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일까? 다행히 요즘은 겨울용이지만 패셔너블한 소품들이 잘 나와 도움이 된단다. “손발에는 워머를 하고, 짧은 패딩 치마 안에 기모레깅스를 입고 따뜻한 부츠를 신고 담요로 감싸면 무척 따뜻해요.” 이씨가 답했다.

회원 장은혜(34·회사원·부산)씨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 속 캠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작은 자취방에 아동용 텐트를 쳐두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낭만적인 캠핑을 꿈꿨다. 오토캠핑을 시작했지만 어마어마한 장비를 갖추고 고기를 구워대는 스타일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블로그(naver.com/ninano80) 활동을 하다가 본인이 꿈꾸던 모양새가 ‘걸스 캠핑’에 있다고 판단해 마고걸스에 합류하게 됐다. 특히 그는 예쁜 캠핑 요리에 관심이 많다. 만들기에 관심이 많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에코백을 만들고, 스탬프를 찍고, 그림을 그리며 자연 속에서 서로 웃고 소통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 데 큰 매력을 느낀다.

텐트 설치부터 요리까지
여자들에 의한 여자들을 위한 캠핑
팔랑거리는 걸개, 바람개비 설치하고
천 끊어서 직접 텐트를 만들기도
캠핑업체 협업 제안으로
마고걸스 의자 만들어 판매

솜씨 좋은 회원들의 꾸밈이 유명해지면서 불과 1년여 만에 곳곳에서 협업(컬래버레이션) 제의가 들어왔다. 가볍고 탄탄해서 이들이 주로 쓰는 한 캠핑장비 업체에서는 ‘마고걸스’ 의자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회원 디자이너들이 사전 회의를 하고, 외국에 있는 업체 본사에 디자인 파일을 보내고 만들면서 ‘정식 협업’을 한 것이다. 그들의 상징인 ‘마고걸스’ 글자가 수놓인 캠핑 의자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걸스 캠핑을 눈여겨본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는 예쁘고 기능 좋은 의류를 내놓았다. “덕분에 올겨울엔 모두가 눈밭 위에서 캠핑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어요.” 이씨의 말이다. 업체들의 눈길을 받는다는 얘기는 그만큼 이쪽에 ‘시장’이 있다는 건데, 이들은 뜻밖에 ‘스타일 강박’이 별로 없다.

“여자들이 모두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딱히 그렇진 않아요. 간소한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고, 직접 불을 피우고 최소한의 장비로 캠핑하는 ‘부시크래프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죠. 야외활동 자체가 부담인 여자들이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같이 어울리면서 배우고 얘기 나누는 게 재미예요.”(장은혜)

걸스 캠핑을 시작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이씨는 “처음 참석할 땐 뺏어 먹을 수 있는 자기 수저와 앞접시, 침낭, 매트만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 취사도구와 버너, 텐트는 경험 많은 회원들이 가진 것을 두루 살펴보고 알아본 뒤 구입해도 늦지 않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노스페이스·마고걸스 이지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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