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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서울 강남의 애프터클럽에선 밤이 시작된다. 사진은 지난 10월25일 핼러윈 파티가 열리는 매그넘클럽 모습. 매그넘 클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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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새벽에 문 열어 아침까지 즐기는 애프터클럽…클럽가의 틈새 시장으로 자리잡아
미국 클럽은 자정, 늦으면 새벽 2시쯤 영업을 마친다. 요즘 한국 클럽은 상당수가 그때부터 슬슬 시작이다. 새벽 4시쯤 절정을 맞는 곳도 있다. 그런데 애프터클럽은 한술 더 떠서, 아예 새벽부터 입장을 시작해 아침까지 영업한다. 클럽들이 문을 닫을 때쯤 집에 가기 허전한 사람들이 새로 기운을 차려 놀기 시작하는 곳, 애프터클럽은 그런 곳이다.
지난 주말 새벽 4시에도 강남의 한 애프터클럽 앞에 긴 줄이 생겨났다. 기다리는 팀이 10팀은 되어 보였다. 최근엔 애프터클럽이 알려지면서 ‘원정’ 온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클럽 나들이가 처음인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한여름에도 샌들과 반바지를 입고 갔다간 아예 입장을 못할 수도 있다. 옛날 클럽처럼 명품 정장을 입고 가진 않더라도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허리춤의 문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청바지나 방금 매만진 듯한 머리를 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이 튄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공들여 화장을 한 남자들도 많았다. 지금까지 다른 데서 놀다 온 것 맞나, 이 사람들?
몇 년 전 갑자기 뭔가 알맹이가 빠진 듯 허전해진 클럽에서 영 시큰둥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는데 선배가 말했다. “따라와 인마. 애프터클럽 안 가봤지. 너 거기 가면 입 찢어진다.” 어쩐지 요즘 클럽에서 안 보인다 싶은 사람들이 거기 다 모여 있었다. 클럽 ‘죽돌이’로 유명한 영화배우를 비롯해 클럽가의 ‘전위’들이 거기 있었다.
원래 애프터클럽은 아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곳이었다. 처음 애프터클럽이 유명해진 것은 강남 일대의 ‘그들만의 리그’ 즉,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나서 들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수도 무척 작았다. 여기가 클럽맞나 싶을 정도로 집 거실 크기보다도 작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곳’이란 관용구답게 간판이 없어야 잘나가는 애프터클럽이었다. 1년이 다르게 변하는 강남 클럽 문화에서 이마저도 옛날 옛적 일이 되었지만, 어쨌든 지금도 애프터클럽이든 클럽이든 강남은 밤새 달린다. 아침까지.
클럽들 문 닫는 새벽 4시 줄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
유흥문화 전위부대의 놀이터
일반 클럽들 영업시간도 늘어나 4시반, 엠디와 눈을 맞춘 덕에 간신히 애프터클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예전 나이트클럽에선 웨이터가 손님을 맞았다면 지금 애프터클럽은 엠디가 관리한다. ‘웨이터’의 진화랄까. 엠디들은 남녀 손님 인맥을 꽉 잡고 있어서 많은 클러버들이 엠디를 따라 클럽을 옮긴다고 했다. 또 엠디는 클럽 안의 자본주의를 보살피는 사람이다. 잘나가는 클럽의 ‘부스석’은 웃돈을 줘도 구할 수 없다. 능력있는 엠디라면 빈자리에 테이블 하나를 뚝딱 펼쳐서라도 단골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준다. 엠디들은 클러버들의 적이기도 동지이기도 하다. 지금 강남에서 대표 선수 애프터클럽을 대라면 ‘매그넘’과 ‘부띠끄’ 두 곳을 꼽는다. 원조 애프터클럽 ‘네이키드’와 ‘미로’는 몇 년 전 영업정지 조치를 당해 없어졌다. 얼마 전 강남 신사동에 문을 연 매그넘은 갑자기 놀기 좋은 곳으로 떠올랐다. 새벽 4시30분쯤 문을 열어 아침 9시, 그날 따라 손님들이 영 아쉬워하는 분위기라면 아침 10시까지도 영업한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 주말 이틀만 문을 연다. 연말에는 목요일에도 열 예정이란다. 매그넘의 특이한 점은 물을 따지는 클럽가에서 음악 덕분에 뜬 곳이라는 점이다. 이곳의 디제이들은 시간마다 바뀐다. 디제이 수가 어림잡아 다른 클럽의 두 배쯤 되는 듯하다. 극도로 사이키델릭한 전자음악을 튼다. 하드코어한 속도감의 음악. 이미 술에 취한 손님들은 그 속도, 환각적인 느낌에 사로잡힌다. 낮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어느 디제이가 이렇게 말했다. “무아지경, 그 필이 중요해.” 애프터클럽 매그넘의 음악이 그렇다. 강남 을지병원 근처에 있는 부띠끄는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가 인테리어에 심혈을 기울인 클럽으로 알려졌다. 돈만 대는 ‘물주’가 하는 클럽과 대표를 갖춘 클럽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클럽 경영자가 그날의 매출에만 관심이 있는 곳은 일렉트로닉 음악도 빠르게, 빠르게만 돌아간다. 선수들은 ‘달리는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자동차로 표현하면 아르피엠(RPM) 수치 200을 넘나드는 비트로 손님들을 달구면 그날의 매상이야 오르겠지만, 클럽마저 그렇게 ‘조루’ 사정해서는 곤란하다. 클러버들의 가슴속 지하를 보살펴줄 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의 지하실이 궁금할 땐 나는 애프터클럽에 간다. 아침 9시. 사람들이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하면 애프터클럽이 문을 닫을 시간이다. 음악은 계속 흐르지만 클럽엔 서서히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눈이 새빨개지고 아까 매만진 머리는 엉망이 됐다. 이 시간까지 파트너 찾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새됐다”를 외칠 시간이다. 오늘도 ‘새’가 된 사람들이 모여 사이좋게 해장국, 아니 ‘새장국’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애프터클럽. 애프터클럽은 강남 유흥문화를 신봉하는 전위적인 클러버들의 모임 같은 곳이다. 처음 가면 배타적인 분위기에 당황할 수 있지만 해가 뜨는 아침까지 함께 놀다 보면 이상한 동지의식도 생겨난다. 애프터클럽이 뜨면서 클럽에서 놀던 사람들이 지구력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애프터클럽은 지금 대세라기보다는 틈새시장이다. 밤새 놀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집에 가는 사람들이 늘자 일반 클럽도 영업시간을 늘려 애프터클럽처럼 영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역 앞에 자리잡은 클럽 ‘매스’는 일요일 아침 문전성시를 이룬다. 깜빡 잠이 들어 토요일 밤을 그냥 보낸 클러버들이 이번 주말 마지막 놀 기회를 찾아 나오기 때문이다. ‘디에이’나 ‘옥타곤’처럼 아침까지 분위기를 끌고 갈 여력이 있는 대형 클럽들도 애프터클럽 영역으로 발을 넓혔다. 밤 12시쯤 시작해 아침까지 하는 강남 클럽들은 대부분 클럽이면서 애프터클럽이다. 대형 자본이 움직이는 슈퍼 클럽이 나오면서 한 시대를 주도했던 강남의 작은 클럽들이 빠르게 문을 닫고 있다. 유명 디제이를 캐스팅하고 유명 브랜드와 협찬할 능력이 있는 클럽들이 나오면서 놀이터가 넓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덕분에 클럽마다 작고 소소한 특징이 있던 시대는 저물었다. 가끔 나의 작은 애프터클럽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대제/팟캐스트 ‘야광성교육쑈’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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