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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군 장계면에 위치한 육십령휴게소를 운영하는 조철 셰프(왼쪽)와 아내 김성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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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전도유망한 요리사에서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
육십령휴게소 식당 주인 된 조철 셰프의 특별한 메뉴
도톰한 덩이를 위아래로 가르자 잘 익은 돼지고기가 하얀 살을 드러낸다. 고소하다. 밑에 눌려 있던 밥을 올려 혀와 함께 칭칭 감자 구수하다. 위에 올라간 사과조림과 어린잎까지 입안에서 뒤엉키자 아삭하고 새콤하기까지 하다. 뒤이어 ‘크림소스 까르보나라’가 나온다. 우리로 치자면 된장찌개나 다름없는, 가장 대중적인 이탈리아 파스타다. 하얀 접시에 우윳빛 국물이 흥건하다.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빡빡한 비빔면 수준인데 국물문화권인 한국에서는 좀 다른 모양새다. 맛집의 격전장에 내놓아도 꿀릴 것이 없어 보인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에 위치한 육십령휴게소에는 돈가스와 2가지 파스타가 있다. 이 메뉴들이 700m가 넘는 고갯마루에 나타난 때는 올해 4월이다. 조철(53), 김성숙(51)씨 부부가 군청의 공개입찰에서 이 아담한 휴게소를 낙찰받아 운영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원래 산야초 뜯어 한식을 하려 했는데, 주변 분들이 서양음식을 전공했으니 그런 메뉴를 해봐라 했어요.” 조씨는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의 전신인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에서 프랑스 음식 등을 전공했다. 졸업하기 전에 용산 미8군 내 ‘멤버스 클럽’에서 일할 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실제는 미군보다 행세하는 한국인들이 더 많았죠.” 차에 미8군 출입증을 달고 거드름 피우는 이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한겨울이면 스산한 휴게소 돈가스·파스타 먹으러
한두시간 달려오는 단골 많아
건강한 먹거리 운동도 열심 졸업 후에는 3년간 ‘쉐라톤 워커힐 호텔’(현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일하고 87년께 ‘스위스 그랜드 호텔’(현재 ‘그랜드힐튼 서울호텔’)로 옮겼다. 주로 대사관 주최 파티나 대형 행사를 뚝딱뚝딱 해치워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그가 화려한 호텔 주방에서 덕유산 자락의 휴게소 부엌으로 인생을 옮긴 사연이 궁금하다. “20대였죠. 연회장 파트를 맡아 아주 열심히 일했어요.” 서울에서 열린 국제요리대회에서 금상도 탔다. 1991년 인생의 분기점이 찾아왔다. 1988년 호텔 설립과 동시에 생긴 스위스 그랜드 호텔 노조를 “민주적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과 후배들의 간곡한 청 때문에 덜컥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두차례 위원장을 하고 주방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1997년 호텔노조들이 연대해 민주노총 산하 민주관광연맹을 결성했다. 또 연맹위원장을 맡았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최소 10년은 해야지 생각했어요.” 그는 2000년께 호텔업계에서는 최초인 특급호텔 연대파업을 이끌어냈다. 그해 6월 롯데호텔을 시작으로 스위스그랜드호텔, 서울힐튼호텔(현재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 등 서울의 특급호텔 3사가 비정규직의 정규화 등 공동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대포를 쏘는 듯한 커다란 소리(섬광탄), 끌려 내려오는 조합원들의 얼굴, 뿌연 연기, 점점 더 커지는 투쟁가 등. 그 시절이 아직 선하다. 수배령이 떨어지자 명동성당에서 6~7개월간 “갇혀 지내다가” 자진출두해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소속 호텔은 그를 해고했다. 2002년의 일이다. 꼬박 10년하고 1년을 더 채우고 나서 노동운동 판을 떠났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셰프’였다. 다시 도마와 칼을 잡았다. 노동운동을 하는 동안 투정조차 안 한 아내에게 진 마음의 빚도 갚고 싶었다. 7~8년간 서울 강남 일대와 명동, 압구정동 등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외식업 컨설팅도 했다. 하지만 “(음식을) 조리하기가 싫어질 정도”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외식업체의 재료들은 대부분 수입 농산물인데다가 수익을 내기 위해 (불필요한) 기교를 부려 가격을 올렸어요. 푸아그라, 캐비아 써서 소비자를 현혹했죠.” 현실도 예전과는 달랐다. 2000년대 서양음식을 다루는 외식업계는 유학파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르 코르동 블뢰, 시아이에이(CIA), 아이시아이에프(ICIF) 등, 외국 유명한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고는 간판도 내걸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수업료가 비싼 탓에 해외파들은 대부분은 부유한 집 자식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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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철 셰프가 만든 ‘장수돈까스’ 세트. 돈가스 외에 사과수프와 어린잎샐러드가 나온다. 3 육십령휴게소의 크림소스 까르보나라. 4 밤새 쌓인 눈에 덮인 육십령휴게소.※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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