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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01 20:35 수정 : 2014.01.02 11:21

1 장류업체 ’죽장연’을 찾은 대학생 김대욱(사진 왼쪽), 김민경(오른쪽 둘째), 이동욱(맨 오른쪽)씨와 죽장연 대표 정연태씨.

[매거진 esc] 요리
영세한 지역사회 업체나 농민들과 손잡고 사업 활성화 돕는 대학생 동아리 ‘인액터스’

전통 장류 브랜드 ‘죽장연’ 대표 정연태(48)씨는 지난해 7월 낯선 이들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하루가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그였다. 모르는 이의 메일 따위는 휴지통으로 직행이다. 하지만 그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모든 음식에 가장 근본이 되는 재료는 소금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서에는 평소 자신의 된장 제조 철학도 적혀 있었다. ‘세월 외엔 아무것도 담지 않습니다.’ 경기도 서해안의 천일염 생산 염전과 납품 및 파트너십을 맺자는 제안서였다. 몇년 전부터 ‘우리 식 전통 된장 제조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그에게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제안이었다. 정작 그의 눈에 띈 것은 제안한 이들이었다. 염전 주인도, 공무원도, 관련 업체도 아니었다. 대학생들이었다.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인액터스 서울대학교 지부’ 학생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들은 서해안 영세 염전 살리기 프로젝트인 ‘연프로젝트’를 5년째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신선했다. “아이디어가 많고 ‘연’(然)도 끌렸다. 죽장연의 ‘연’과 같은 한자에다 제 이름에도 ‘연’이 있다.” 그와 대학생들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해 12월26일 동아리 회원인 김대욱(23·농경제사회학부), 이동욱(23·경제학부), 김민경(20·경제학부)씨는 구불구불 4시간 이상 걸리는 죽장연 제조장이 있는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사리행 차에 몸을 실었다. 정씨가 송년 파티에 이들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끼는 업체나 분야를 선정해서 저희가 디자인이나 마케팅을 도와드리고 신사업 시작에도 도움을 드린다.” 김대욱씨가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 동아리 활동을 설명한다. 386세대가 수건 질끈 동여매고 땡볕에 밭매고 비닐하우스 농사를 했던 1980년대 농활과는 사뭇 다르다.

2 동주염전의 염전체험학습프로그램.

인액터스는 세계 39개국, 1518개 대학, 4만8112명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대학생 비영리단체다. ‘비즈니스적 접근을 통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며 기업가정신을 기르고 실천하는 단체’라고 한다. 한국에선 건국대, 동국대, 강원대 등 대학 28곳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 지부에는 세 팀이 있고 그중 한 팀이 연프로젝트를 진행한다. 7명이 팀원이다. 이 프로젝트를 거쳐 간 회원만 40~50명이 넘는다. 이동욱씨는 “5년 전에 선배들이 무슨 프로젝트를 할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국내 염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한다. 급격하게 쇠락하는 서해안 염전은 지켜야 할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일염이라고 해서 다 뛰어난 영양 성분을 가진 게 아니다. 한국의 토판염(갯벌을 다져 만든 염전 바닥에서 생산하는 소금)은 미네랄과 각종 영양 성분이 많이 함유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생산성 등의 문제로 토판염보다는 장판염(폴리염화비닐 장판을 갯벌에 깔고 생산한 소금)이 많다. 옹기 조각을 깐 옹기판염이나 타일을 깐 타일염 등도 있다. 이씨는 “서해안은 옹기판염이 많다. 유해물질이 적고 장판염보다 질이 좋다. 미네랄 함량이 프랑스 천일염보다 약 두세 배 많다는 보고도 있다”고 자랑한다. 서해안 염전의 쇠락을 분석한 이들의 논리는 꽤 설득력이 있다. 전남 신안군의 천일염보다 소비자에게 덜 알려진 점, 천일염산업 특구로 지정된 신안군에 정부의 육성 정책과 지원이 집중된 점, 중간상 등의 왜곡된 운영으로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낮다는 점을 들었다.

신안염 가려 쇠락해 가던
서해안 염전을 장류 브랜드와 연결
‘죽장연’ 정연태 대표
젊은이들 에너지에 반해
흔쾌히 업무 제휴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염전주에게 대학생들은 어린애로만 보였다. 동주염전 백재환 염전감독은 “처음에는 별로 믿음이 안 갔지만 열흘에 한번씩은 찾아오고 체험 프로그램 계획서를 가져오면서 신뢰가 생겨났다”고 한다. 처음 인연을 맺은 동주염전에서는 올해만 5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인기다. 대학생들은 소포장 방식의 판매도 권유했다. 홍보자료나 포장지 등을 만드는 경비가 안 들어갈 리 없건만 보람이 청춘들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각종 사회적 기업 공모전 입상이나 아르바이트, 선배들의 후원을 받아 프로젝트 경비를 충당했다. 두번째 인연을 맺은 공생염전과 관련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 나섰다. 소금을 많이 쓰는 납품업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 김치공장부터 고등어 염장업체 등 각종 식품업체 100여곳에 전화를 돌렸다. 무작정 덤볐다. “정말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대학생이다 보니 안 믿는 데도 많았다.” 김대욱씨의 말이다. 유일하게 “한번 만납시다” 하고 응답한 곳이 죽장연이었다. “국제구호단체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친구가 처음 전화를 받았는데, 우리 모두 정말 기뻤다.” 김씨는 그날이 눈에 선하다. 죽장연 대표 정씨와 동아리 학생들은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다. 지난해 10월께 바람이 쌩하게 부는 공생염전도 함께 방문했다. 정씨는 지금까지 전남 신안군의 천일염을 썼으나 올해 3월에는 공생염전의 소금 1000㎏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보수도 받지 않고 활동하는 학생들이 기특하고 실제 맛을 보니 품질이 좋았다. 대규모 시스템이 아닌 개인이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면서 옹기판염으로 만드는 게 마음에 들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3 발효실에 걸린 죽장연의 메주.

‘죽장연’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을 받은 한식당 ‘단지’를 운영하는 오너셰프 후니 김(김훈·41)씨가 자주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에 죽장연 장을 쓴다. 일본 미소(된장)와 달리 밀가루, 보리 등이 없이 오직 콩과 물, 천일염만 쓰는 우리 된장에 그는 반했다. 죽장연은 그야말로 ‘느리게, 느리게’ 만드는 우리 전통 장이다. 오지에 가까운 죽장면 상서리 일대의 국산 콩과 3년간 간수를 뺀 천일염, 200m 지하에서 끌어올린 물을 한번 더 정제해 쓴다. 참나무 장작불로 16개의 무쇠 가마솥 단지를 달궈 콩을 삶는다. 4시간이나 뜸을 들인다. 메주콩은 유기농 지푸라기에 묶어 옛날 처마 밑과 같은 조건의 바람에 건조하고 황토방에서 한달간 발효 과정을 거친다. 대량생산이 힘든 구조다. 장은 무형문화재 이무남 옹기장의 ‘숨 쉬는 옹기’에 담긴다. 이 모든 공정은 상서리 주민들이 수대에 걸쳐 이어온 방식이다. 정씨는 학생들에게 된장을 활용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부탁할 생각이다.

오후 2시쯤 도착해 죽장연을 둘러본 학생들은 정갈하게 걸린 메주와 쭉 늘어선 장독대를 보고 감탄한다.

“솔직히 직접적으로 스펙 쌓는 데 도움이 되는 동아리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를 물었다. “사회에 파급력이 있는 봉사활동이란 점이 좋고, 대상자들의 자립과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어 즐겁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배우게 된다.”(이동욱) “의미보다는 재밌을 것 같았다. 활동 특성상 현장 가고 만나는 이들이 다양해서 좋다.”(김대욱) “공부하는 동아리는 싫었다. 바쁘게 살고 싶었다. 친구들이 ‘니들이 그런 거 한다고!’ 놀란다.”(김민경)

포항/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인액터스 서울대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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