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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15 20:10 수정 : 2014.01.16 10:38

스마트폰 소개팅 앱은 주선자를 통하지 않고서 주도적으로 상대를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설계되어 있다. 왼쪽부터 이츄, 사랑애, 길걷다보면, 꽃보다 사랑, 소개팅 다임 등 잘 팔리는 스마트폰 데이트 앱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라이프
33살 독신남의 인기 데이트 앱 체험기

1997년 겨울, 장미꽃다발을 들고 서울 여의도광장을 서성였다. 여의도 한가운데 아스팔트 광장이 있던 시절, 피시통신에서 채팅하던 여자애는 장미꽃을 들고 광장 가운데 서 있으면 찾아오겠다고 했다. 500m 앞에서 어떤 여자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우리는 하이텔 영화 동호회의 ‘영퀴방’(영화퀴즈방)에서 처음 대화를 나눴다. 매일 쪽지를 보내고, 새벽마다 채팅을 했다. 피시통신에서는 사진을 주고받을 수 없으니 늘 그녀의 얼굴이 궁금했다. 그래도 만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충분히 서로를 알고 있었다.

피시통신 ‘번개’는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트위터, 카카오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자신을 드러내야 누군가한테 접근할 수 있다. 의도적 만남만이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 시대의 운명적인 만남은 앱에서나 가능하다. 다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 시대 마지막 남은 로맨티시스트의 심정으로 스마트폰 데이트 앱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주변 지인들이 더 이상 소개팅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사정도 있긴 했다.

피시통신 채팅이 상대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즐거움이었다면, 소개팅 앱은 조건을 맞추는 재미다. 최근 앱 스토어에서 다운로드 순위 상위권에는 소개팅 앱이 즐비하다. 이 앱들의 목적은 명확하다. 이성과의 만남이다. 소개를 통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상대를 고를 수 있다. 그중 다섯개의 소개팅 앱 ‘이츄’ ‘꽃보다 사랑’ ‘길걷다보면’ ‘사랑애’ ‘소개팅 다임’을 비교해 봤다. 선정 기준은 내려받기 횟수와 별점이다. 이 앱들은 전부 무료였다. 무료로 내려받고, 소개팅이 진전될수록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엊그제 월급을 받았으니, 든든한 마음으로 다섯개 전부 내려받았다. 앱을 많이 설치할수록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소개팅 앱에서 중요한 건 조건이다. 조건에는 직업, 외모, 지역, 취미, 성격이 포함된다. 성격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니 제외하자. 다섯개의 소개팅 앱에는 위의 조건들을 기입하는 칸이 있다. 외모는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 사진을 올려야 한다. 당당하게 셀카를 찍어 올렸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직업과 지역, 취미 등은 최대한 솔직하게 썼다. ‘이츄’의 경우 학력, 출신 학교, 몸무게와 키, 사는 지역과 직장명도 기입해야 했다. 실제 만남을 위한 조건들이기 때문에 꾸밈없이 적었다. 여자가 실제의 나를 보고 실망할 때의 눈빛은 견디기 힘들 테니까.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면 승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진과 프로필을 명확하게 기입했는지를 심사하는 과정이다. 평균 3~4시간 정도 소요됐다. 소개팅 앱은 목적부터 조건까지 명확했다.

로그인하면 여자들의 사진이 제공된다. 여자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찜하면 된다. 처음에는 일부다처제 사회에 왔거나 모르몬교 신자라도 된 듯한 착각을 경험한다. 상대 여자에게는 내가 선택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내 정보가 전달된다. 그럼 그녀는 고민을 하다가 거절을 누른다. 한번에 10명의 여자를 선택할 수 있는데, 10명 다 나를 거절했다. 여자를 더 소개받길 원한다면 하트를 구입해야 한다. ‘사랑애’의 하트는 35개에 3.99달러, ‘길걷다보면’의 하트는 5개에 0.99달러다. 하트가 없으면 마음을 졸이게 된다. 소개팅 확률을 높이려면 결제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내 돈은 앱 개발자와 애플이 7 대 3으로 나눠 먹는다. 월급을 털어 하트를 구입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소개팅 앱은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선택은 여자의 몫이다. 20명의 여자를 내 취향에 맞춰 고른다고 해도 나는 그녀들의 취향에 부합되지 못했다. 내 주변의 소개팅 앱 사용자들을 살펴봤다. 남자들은 며칠에 한번씩 여자들로부터 선택받았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여자들은 시간 단위로 선택을 받았다. 앱이 비슷한 나이대를 무작위로 선별하고 상대를 추천하니까 ‘원조교제’ 같은 불순한 의도는 실현되기 어려워 보였다. 소개팅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자를 추천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하트를 구입해야만 한다. 나는 첫날 32.99달러를 썼다.

소개팅 앱에서 중요한 건 조건이다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면
승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소개팅 확률을 높이려면
결제를 해야 한다

스마트폰 소개팅 앱은 주선자를 통하지 않고서 주도적으로 상대를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쓰도록 설계되어 있다. 왼쪽부터 이츄, 사랑애, 길걷다보면, 꽃보다 사랑, 소개팅 다임 등 잘 팔리는 스마트폰 데이트 앱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다섯개의 앱 중 가장 신뢰도가 높았던 건 자신의 정보를 세세하게 기입하는 앱 ‘이츄’였다. 출신은 물론이고 취향까지 폭넓고 자세히 써야 했다. 그래서 모공이 작고, 머리숱이 많으며, 깔끔한 인상의 33세 슈퍼 동안인데다가 독서와 클래식 음악을 즐기고, 이따금씩 미술관 나들이를 가며, 맛집을 두루 꿰어 종종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는 고독한 몸짱이라고 적었다. 앱은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나와 공통분모를 가진 이성을 추천해 준다. 하루에 한명만 추천해 준다. 마음에 안 든다면, 결제하면 된다. 그럼 한명 더 볼 수 있다. 추천받은 상대방의 사진을 더 보고 싶거든 또 결제해야 한다. 초기의 30달러는 입장료나 마찬가지였다.

하루에 한명의 여자를 추천받았다. 가입 첫날 상대는 내 애정을 거부했고, 둘째 날 추천받은 상대는 내 애정을 수락했다. 기뻤다. 두번째 여자가 더 예뻤으니까. 상대가 내 선택을 수락하면, 나는 그녀에게 쪽지를 보낼 수 있다. 140자 이하로 내 마음을 전달하기는 부족했다. 하는 수 없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짧은 글을 썼다. 내 영혼의 쪽지를 읽은 그녀는 자신의 정보를 내게 공유해줬다. 프로필에 쓰인 그녀의 전화번호를 보고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성과의 만남을 어려워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스테이지마다 상대를 공략할 수 있는 친절한 가이드가 제공된다. 일종의 게임처럼 관계가 진전될 때마다 여심을 잡을 수 있는 팁을 준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전화번호가 공개되면 상대가 당황하지 않도록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카톡을 보내고 읽었다.

소개팅 앱은 자신의 실제 정보를 노출한다는 점에서 채팅과는 달랐다. 채팅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는 일시적이고 가벼웠다. 소개팅 앱은 결혼정보회사와 더 가까웠다.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고, 조건이 서로 맞는 상대들을 연결시켜 준다. 신중하고 또 솔직하게 자신의 사진, 이름, 출신 등의 정보를 노출한다. 소개팅 앱에 떠다니는 여자들의 사진을 눌러 보면 가벼운 만남은 사절한다는 자기소개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진지했다. 카톡으로 인사를 하자 이십분 뒤 그녀가 대답했다. 몇가지 정보를 교환했다. 하는 일과 어디 사는가에 대하여. 주선자가 없는 대화는 계속됐다. 채팅할 때처럼 그녀의 얼굴이 궁금했다. 정말 사진처럼 예쁠까?

“점심과 저녁 사이 커피 마실까요?”

카페에 앉아 있던 그녀는 사진보다 예뻤다. 우리는 정말 커피만 마셨다. 서두르지 말라고 했으니까. 서른을 조금 넘긴 의류회사의 디자이너였다. 그녀는 솔로 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회사 후배의 추천으로 앱을 내려받았다. 하지만 없어 보일까봐 소개팅 앱을 한다는 걸 감추고 있었다. 가벼운 만남을 원하지 않았다. 나도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그녀가 말하길 앱 속 남자들의 직업은 공무원이 가장 많고, 직장인이 그 다음이라고 했다.

“왜 회사원들은 모두 직장을 대기업이라고 적을까요?” 그녀가 물었다. ‘왜 제가 소개팅 앱에서 추천받은 여자들은 간호사뿐이었을까요?’ 나도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서로 답을 모르니까. 만날 땐 시승기를 쓰느라 잠시 빌렸던 수입차를 타고 갔다. 속물 같지만, 그럼 그녀가 나를 더 기억해줄 것 같았다. 그녀를 차로 바래다주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영화 <접속>에서 채팅을 하던 전도연은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만나야 할 사람이었을까? 그녀에게 고백했다.

“실물이 나아요.”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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