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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가’의 말고기 사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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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제주 특산 말고기 즐기는 법…초보자는 육회·구이 추천, 간·막창은 현지 주민에 인기
다음 내용 중 맞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1. 우리나라에도 말고기만 파는 전문점이 있다. 2. 우리 말고기의 고향은 제주도다. 3. 조선시대 왕은 말고기를 먹었다. 4.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대표적인 말고기 소비국이다.
2개 이상 동그라미를 쳤다면 당신은 식도락가 고수라고 해도 좋다.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동그라미다. 제주도에는 현재 말고기전문점을 포함해 60여개의 말고기 식당이 있다. 지난 3년 사이 꾸준히 늘었다. 관광객과 도민들의 수요 때문이다.
고려시대부터 목마장으로 유명했던 제주도. 말고기는 고급식품이었다. 조선시대 <태조실록>에는 음력 섣달그믐 밤에 암말을 잡아 건마육포(말린 말고기포)를 만들어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단종실록>에는 제향에 올렸다는 내용도 있다. 뇌물로 쓰였을 정도로 맛은 최고였다고 한다. 군마 확보를 위해 말 도축을 금했던 세종 때 일이다. 세종 29년 제주목사였던 이흥문은 세종의 최측근 황희와 김종서 등에게 건마육포를 뇌물로 바쳤다가 사헌부에 발각돼 처벌을 받았다. 제주도의 말고기는 전통문화인 추렴(모임이나 놀이, 잔치 따위의 비용을 여럿이 내는 것)과 결부돼 이어져왔다. 제주향토음식연구가 김지순씨는 “음력 섣달에 산촌 사람들이 말추렴하면 연이 닿은 해촌 사람들까지 1년에 한번 정도 맛을 봤다”고 한다. 그도 간장에 재웠다 숯불에 구운 할아버지의 말고기를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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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가’의 말고기 내장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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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들은 “말고기는 질기다는 육지 사람들 얘기는 틀린 말”이라고 못박는다. “한번 드셔보세요. 어때요? 질겨요? 아니죠.” 제주시에 위치한 말고기전문점 ‘마진가’의 주인 이종언씨의 말이다. 그는 대학에서는 말 영양학으로 박사학위를,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말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마진가는 지역민들의 단골집이다. 도내 미식가들의 추천리스트 맨 앞줄에 오른다. 말뼈 엑기스차를 시작으로 사시미, 말고기스테이크, 구이, 말고기만두, 삶은 말 막창, 말고기초밥, 육회, 말갈비찜, 말곰탕 등이 줄지어 나온다. 그는 직영농장까지 운영한다. “10년 전에 일본 말고기 현황을 파악하러 갔다 좋은 경험을 했어요.” 아토피를 앓고 있던 자녀에게 일본 출장길에 구한 말기름을 발랐다가 효험을 봤다. “완치는 안 됐지만 긁지 않는 것만도 큰 소득이었죠.” 그는 소고기, 돼지고기, 말고기 기름의 비교분석에 들어갔다. 콜레스테롤 감소에 효과적인 팔미톨레산(palmitoleic acid)과 오메가3 지방산이 다른 육류보다 2~3배 많았다. 구리, 칼슘, 글리코겐, 단백질 등의 함량도 풍부했다. 관절염, 빈혈, 척추 등에서 좋다는 <동의보감>의 기록도 찾아냈다. “말고기의 마블링(지방)은 불포화지방이고 저칼로리 식품이죠. 많이 먹어도 탈이 안 나요. 기생충도 없고 구제역 같은 병과는 아예 담을 쌓았어요. 인슐린 분비도 돕습니다.” 이 박사의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차는 진하고 사시미는 입안에서 녹는다. 구이용 고기는 불을 만나자마자 기름이 자르르 흐르면서 부드럽기가 비단결이다. 혀가 부드러움에 좋아 뛴다. “간은 아삭한 사과 같죠. 막창은 냄새가 독특해 관광객들은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간과 막창은 제주도민들이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최고 인기 부위다. 신선도가 생명인 간은 운이 좋아야 먹는다. “잡는 날 전화 달라는 이들이 줄을 섰어요.” 제주도민들이 ‘검은 지름(기름)’이라 부르는 말 창자는 소의 반밖에 안 돼 양이 적다.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회·구이·만두·찜·초밥 등
코스 메뉴로 즐길 수 있어
오메가3 지방산 다른 육류보다 풍부
예민하고 거친 말 특성상
공장형 대량사육은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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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제주마장’의 말고기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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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유통되는 말 종자는 서러브레드와 제주도 토종말인 제주마, 이 두 종을 교접한 제주산마(한라마)다. 식육용으로는 제주산마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제주마다. 더러 경주마로 뛴 말이 소량 유통되기도 한다. 맛의 차이는 큰데 후자가 질기다. 일반적으로 경주마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말이나 137㎝가 넘은 제주산마가 식육농장으로 직행한다. 2~3살 정도의 말이다. 6개월간 비육과정을 거친 뒤에 유통된다. 곡물사료 등을 먹여 살을 찌우고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과정이다. 경주마사육농장을 겸업하는 곳까지 합쳐 제주도 내 비육농장은 10여곳이 있다. 말고기가 유명한 일본은 캐나다 등지에서 식육용 종을 수입해 비육한 뒤 600㎏이 되면 도축해 유통한다. 구마모토현이 유명하다. “추운 지방에서 적응을 해 지방 축적이 좋은, 진화된 품종들입니다.” 이씨의 설명이다.
‘말뼈가 말값의 반이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말고기는 뼈가 차지하는 양이 크다. 700㎏이 조금 넘는 한마리를 도축하면 400㎏ 정도만이 고기다. 뼈는 엑기스로 만들어 칼슘이 부족한 이들이 보약 삼아 먹는다. 최근에는 말기름을 활용한 화장품 등도 출시됐다. 가죽만 빼고 식용이 가능한 말은 돼지, 소와 달리 뒤쪽 부위가 더 쫄깃하고 부드럽다. 익힐수록 질겨지는 고기의 특성 때문에 육회나 살짝 구워 먹는 게 좋다. ‘쓸개 빠진 놈’은 말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말은 쓸개가 없고 위도 소와 달리 한개다. 김지순씨는 “도축 뒤 5~20시간 안에 요리하면 가장 신선하게 먹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 출발단계인 말 식육농장은 어떤 풍경일까? 식육농장을 운영하는 ‘청정제주마장’의 주인 강경수씨는 “예민한 놈이라서 비육과정이 소나 돼지와 다르다”고 한다. 그의 식당 ‘청정제주마장’도 손에 꼽히는 말고기 맛집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한 농장에는 20여마리 비육마가 있다. 우리에는 따스한 겨울 햇살이 비친다. 어슬렁거리는 비육마들은 마르고 날렵한 경주마들과 달리 배와 다리에 살이 올라 탄탄하다. 말은 소나 돼지처럼 여러 마리를 한 우리에 가둬 키울 수 없다. “힘자랑한다고 물고 뜯고 발로 차고 과격해요. 갈비뼈 부러지기 쉽죠. 스트레스에 약해요.” 이런 특성은 공장식 대량 사육이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현재 강씨는 2×2.5m 우리 안에 한마리씩 키운다. “8년간 연구해 얻은 답입니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승마장을 운영해왔다. 삶은 콩 등을 먹이는 등 사료 연구도 한다. “아직까지는 말 전문 비육사료가 개발이 안 돼서 소나 경주마 사료를 먹이지만 달라질 겁니다.” 말은 하루 4~8㎏ 정도를 먹는다. 말 등급 판정에도 앞장서는 그는 “질 나쁜 말고기를 여행객이 먹고 ‘제주도 말고기 맛없다’ 할까 걱정스럽다”고 한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제주지원에서는 2011년부터 말도체등급판정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소나 돼지와 달리 희망자에 한해서다. 도축량의 약 40%(2013년 기준)가 판정을 받는다. 소처럼 근내지방도(마블링), 육색, 지방색, 조직감, 성숙도에 따라 등급판정을 하지만, 저지방 고단백인 말의 특성상 기준점이 다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이력팀장 김승곤씨는 “품질이 낮든 높든 같은 가격에 유통되는 현실” 때문에 사업이 시작됐고 “말고기 고급화, 유통의 투명성 확보가 목적”이라고 한다.
지난 10일 제주특별자치도는 말산업특구로 지정됐다. 조랑말박물관 관장 지금종씨는 “누가 이익을 가져갈 것인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외국은 호스테라피, 재활승마 등이 있는데 우리는 지나치게 경마장 위주로 (말산업이) 발달했다”면서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차원에서 말식육산업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한다. 제주도 말식육산업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상태다.
제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제주도민이 추천하는 말고기 맛집
마진가 전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원이었던 말 영양학 박사 이종언씨가 운영하는 집. 말고기사시미, 말고기스테이크, 구이, 막창 등. 코스요리 2만5000원(8가지). 3만5000원(10가지). 단품 7000~1만5000원. 직영 식용농장을 운영한다. 제주시 용담1동 266-2. (064)721-9282.
청정제주마장 20대부터 승마장을 운영했던 강경수씨가 운영. 비육농장 운영. 말 등급 판정에서 주로 상등급 받는 말 유통.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945-1. (064)787-3662.
이밖에 역사가 오래된 ‘목장원 바스메영농조합법인’(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2631-1)과 말고기 요리 경진대회 등에서 수상경력이 있는 고우니(제주시 노형동 2466-1), 사돈집(제주시 노형동 928-13), 고수목마(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553-2), 제주마원(서귀포시 색달동 309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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