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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15 20:26 수정 : 2014.01.16 13:55

지난 1월10일 오후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이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민통선 안 임진강변 하늘을 날고 있다.

[매거진 esc] 여행
경기 연천·강원 철원 민통선 주변으로 떠나는 두루미 탐조 여행

“내 이걸루 올가밀 만들어 놀께 너 학을 몰아오너라.” (성삼이가 덕재 손에 묶여 있던) 포승줄을 풀어 쥐더니, 어느 새 잡풀 새로 기는 걸음을 쳤다. …중략… 그제서야 덕재도 무엇을 깨달은 듯 잡풀 새를 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단정학 두세 마리가 높푸른 가을하늘에 곧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었다.(황순원의 단편 <학> 마지막 부분)

동족간 전쟁의 비극과 인간애를 그린 이야기. 적이 되어 만나 호송길에 나선 두 친구가, 포승줄을 풀고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그곳, 이념 따위는 필요 없는 그곳에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고 섰는 것 같은” 단정학(두루미) 떼가 있다. ‘삼팔선 완충지대’였던 그곳은 아직도 ‘민간인 통제구역’인 채로 군인과 두루미·독수리·고라니·삵 등 야생동물의 세상이 돼 있다.

“두루미요? 아침에 수십마리가 임진강 북쪽 지류에 앉아 있다가 조금 전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민통선 안의 태풍전망대에서 만난 군인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루미는 먹이를 찾아 북과 남을 오가며 겨울을 나고 있었다. 군부대의 허락 없이는 드나들 수 없는 이곳에, 지금 수백마리 두루미들이 허락 없이 몰려와 뚜루르르, 꾸루르르…, 여울목 물 흐르는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하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두루미 도래지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 최전방 지역에서, 앉으나 서나 날아오르거나 고고한 자태를 내뿜는 두루미를 만나고 왔다.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민통선 안 논에서 마주친 고라니.

지난 1월9일 오후 연천군 중면 횡산리 ‘빙애여울’. 두루미를 만나기 위해 찾아들어간 임진강 물길의 빙애여울은 민통선 안쪽, 산자락 옆 도로 좌우가 온통 율무밭으로 덮인 곳에 있었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 목적을 밝힌 뒤에야 출입이 허락되는 군사지역이자 지뢰지역이다.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한 임진강 물줄기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내려와 휘돌아 내려가는 곳, 여느 곳은 꽝꽝 얼음판이 됐어도 호박돌 깔린 얕은 여울은 얼지 않았다. 거기, 민감하고 자존심 강하며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함께 산다는 두루미들이 여기저기 떼지어 앉아 뚜루르르 깨르르르 떠들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 확대해 헤아려보니, 두루미(천연기념물 202호) 30여마리,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 120여마리 등 무려 150마리가 넘었다. 재두루미보다 몸집이 크고, 흰 몸에 날개 끝과 목 일부만 검은색인, 정수리에 붉은 점이 있는 두루미들의 자태가 돋보였다.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함께 모여 지내는 모습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한다.

1월11일 낮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한탄강 여울에서 쉬고 있는 한 쌍의 두루미. 이곳에서 이날 낮 40여마리의 두루미·재두루미떼를 만났다.

물 마시고 날갯짓하며 떠들던 두루미들은, 고라니 두마리가 강쪽으로 내려서자 일제히 물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키 1m30~1m40, 몸무게 10㎏에 이른다는 그 큰 몸집들이 거센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자, 오히려 고라니들이 놀라 몸을 숨겼다.

두루미들의 비상은 정말 아름다웠다. 황량했던 겨울 들판과 흰 눈 희끗희끗한 먼 산자락은 두루미 떼의 날갯짓과 화려한 군무로, 순식간에 생명 가득한 대자연 풍경으로 거듭났다. 녀석들이 멀리 날아가지 않고, 주변을 돌며 펼치는 눈부신 공중 쇼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시리고 아리도록 짙푸른 겨울하늘을 배경으로 서서히 날며, 자유로운 비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지를 알려주려는 듯했다. 서너 무리로 나뉘어, 높낮이를 달리해 오가며 부딪칠 듯 만나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고 흩어져 가는 모습은, 비행기들이 펼치는 에어쇼보다도 윗길이었다.

아리도록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날갯짓과 화려한 군무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고
흩어져 가는 모습이
에어쇼보다 한수 위네

두루미들의 군무는 다음날 연천의 환경운동가 이석우(56·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상임대표)씨의 안내를 받아 잠시 둘러본, 빙애여울 상류 필승교(남방한계선) 앞 양수장 주변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한바탕 군무를 선보인 두루미들은 다시 내려앉지 않고 고공행진으로 산너머 북녘땅을 향해 사라져갔다.

연천은 이웃한 철원과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두루미 월동지다. 본디 철원의 토교저수지 일대 등 민통선 주변이 두루미 월동지로 이름높았다. 연천의 민통선 안쪽 임진강과 주변의 대규모 율무밭들은 10여년 전부터 두루미·재두루미들이 날아들기 시작해 학자들과 환경단체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2000년 무렵 처음 두루미가 발견된 이래, 요즘엔 해마다 11~3월 두루미 200~300마리와 재두루미 800여마리가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민통선 안쪽인데다 여울이 발달해 있고, 두루미들이 좋아하는 율무를 경작하는 밭이 많기 때문이다. 연천은 전국 율무의 70%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 율무 산지다. 잡식성이지만 두루미는 특히 율무를 좋아하고, 재두루미는 볍씨를 좋아한다고 한다.

“대체서식지가 문제예요. 멀쩡한 서식지를 망가뜨려놓고 대체서식지를 조성한다니 말이 됩니까. 해마다 수백마리가 날아들던 저 아래 장군여울 주변은 이제 두루미가 거의 사라졌어요.”

장군여울은 빙애여울 하류 700m 지점(시멘트 교각 주변)의 여울을 말한다. 이석우씨에 따르면, 장군여울 아래쪽에 2년 전 완공한 홍수조절 목적의 군남댐이 겨울에도 물을 가둬놓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수위가 높아져 여울이 주변 모래톱과 함께 물에 잠기면서, 영하 20도를 밑돌아도 얼지 않던 장군여울이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다슬기·미꾸리 등을 잡아먹으면서 여울에서 머물기를 좋아하는 두루미들의 안식처이자 잠자리가 사라진 겁니다.”

1월9일 오후 연천 횡산리 임진강 빙애여울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들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빙애여울엔 이날 낮 150여마리의 두루미·재두루미들이 날아왔다.

이씨는 “수위가 조금만 높아져도 위쪽 빙애여울까지 물에 잠길 것”이라며 “군남댐 담수를 중단하지 않으면 두루미는 영영 날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웃한 드넓은 철원평야는 국내 최대의 두루미·재두루미 월동지역이다. 약 3000마리의 두루미류(두루미 800여마리, 재두루미 2000여마리)가 찾아와 철원의 민통선 안팎에서 겨울을 나고 중국 북동부, 몽골, 시베리아 등 번식지로 돌아간다. 대표적인 월동지인 토교저수지 안쪽은 민간인 출입이 금지돼 있지만, 양지리 등 여울이 발달한 한탄강 주변에선 누구나 탐조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가·탐방객들이 함부로 논밭과 물길에 접근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두루미들이 놀라 날아가는 일이 잦아지자, 한국두루미보호협회 철원지회에선 아예 한탄강변 둑(이길리 배수펌프장 옆)에 사진 촬영과 탐조를 위한 컨테이너와 비닐집을 설치하고 강쪽으로 촬영·관찰 공간을 뚫어놓았다. 가끔 강변에 볍씨·옥수수 등 두루미 먹이를 뿌려주기도 한다.

사진가들에게 이용료 1만원씩을 받는데도, 주말 아침이면 사진가들의 발길이 이어져, 비닐집과 컨테이너가 붐빌 때가 많다. 얼마나 붐비는지, 비닐집 안쪽 벽엔 커다란 글씨로 ‘조용히 합시다!’라고 쓰여 있다. 두루미들은 날아오더라도, 먼저 선발대 두루미들이 여러 차례 하늘을 선회하며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차례로 내려앉는다고 한다.

지난 11일 비닐집에서 만난, 은퇴 뒤 취미로 새 사진을 찍고 있다는 최병호(78)씨는 “두루미는 정말 볼수록 멋지고 또 귀한 새라는 생각이 든다”며 “멸종위기에 처한 두루미의 서식지를 잘 보존해 더 많은 두루미들이 날아오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와 부귀의 상징이던 두루미(학). 우리 선인들은 정월에 두루미를 만나면 건강·행운이 깃든다고 여겼다. 벽두부터 두루미를 찾아 떠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올겨울 3월 초까지 연천·철원 지역을 찾는다면 희귀새 두루미의 자태와 군무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때나 가서 두루미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역 환경단체에 미리 연락하면 정보와 안내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연천 철원/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연천·철원 두루미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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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는 두루미과 새가 15종이지만 국내엔 두루미·재두루미·흑두루미 3종이 날아와 겨울나기를 한다. 모두 멸종위기종으로, 두루미는 전세계에 3000여마리가 있다. 남한엔 1000마리가량이 날아온다. 재두루미는 전세계 7000여마리 중 2000~3000마리가 날아와 겨울을 난다. 주로 철원·연천에서 월동하고 파주·강화도에도 일부 날아온다. 흑두루미는 순천만과 서해안 일부에서 월동한다. 두루미는 정수리의 붉은 점 때문에 단정학이라고도 한다. 재두루미는 몸이 회색이고 눈 가장자리가 붉다.

가는 길 서울외곽순환도로 의정부 나들목에서 나가 의정부 시내 거쳐 3번 국도 타고 연천읍으로 간다. 내비게이션 태풍전망대. 중면사무소 지나면 민통선 초소다. 신분증 맡기고 출입증을 받은 뒤 임진강평화습지원 쪽으로 잠시 오르면, 장군여울 두루미관찰대가 있다. 빙애여울은 고개 넘어 내려가면 왼쪽 율무밭 너머로 보인다. 연천읍에서 3번 국도 타고 대광리역·신탄리역 지나면 철원 땅이다. 양지리 한탄강 두루미 도래지는 대마사거리~87번 국도~노동당사 건물~월하삼거리~464번 지방도(금강산로) 직진, 옛검문소사거리에서 이길리·정연리 쪽으로 직진하면 왼쪽에 양지리와 토교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솔밭 지나면 오른쪽으로 이길리배수펌프장(양수장)과 두루미 도래지(한탄강)로 가는 좁은 시멘트길이 나온다.

먹을 곳 철원군 동송읍 정연리(민통선 안) 전선교회 옆 전선휴게소(033-458-6068) 메기매운탕(이길리 초소에 신분증 맡기고 방문 목적을 밝혀야 한다). 연천군 도신리 대광리역 앞 대호식당(031-834-1416) 부대찌개, 전곡읍 명신반점(031-832-2307) 중화요리. 양지리 한탄강 두루미 도래지 제방 컨테이너에선 떡라면·떡국 등을 판다.

묵을 곳 숙소 사정은 좋지 않다. 연천읍보다는 전곡읍에 모텔들이 많다.

주변 볼거리 연천·철원 경계 지역 경원선 철길 폐터널의 거꾸로 자라오른 역고드름 무리(사진), 연천의 재인폭포, 신라 경순왕릉, 전곡선사박물관, 연천역 급수탑 등. 철원의 옛 노동당사 건물, 옛 월정리역, 도피안사, 고석정, 직탕폭포, 삼부연폭포, 매월대폭포 등.

경원선 철길 폐터널의 거꾸로 자라오른 역고드름 무리

연천·철원 여행문의 연천군청 (031)834-2211, 연천읍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두루미 탐조) (031)832-2120, 철원군청 (033)450-5151, 철원 안보관광 겸 일부 철새 탐조, 고석정관광지 출발(033-450-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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