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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15 20:31 수정 : 2014.01.16 17:59

네이버 밴드를 통해 옛 학교 동창을 만난 사람들. 이들은 옛날 앨범 사진을 서로 보내며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밴드 동창회 전성시대
10년 전 아이러브스쿨의 광풍을 잇는 온라인 동창회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30년 만에 만난 친구와 어제 만난 듯 서로를 가깝게 묶어주는 손안의 ‘밴드’가 동창회의 엔진을 가열했다.

지난달 말, 몇년에 한번씩 드물게 연락을 주고받던 소꿉친구한테서 오랜만에 뜬금없는 메시지를 받았다. ‘네이버 밴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도구로 동기 모임을 열었으니 서둘러 가입하라는 것이다. 10여년 전 ‘아이러브스쿨’이나 뭐 다를라구? 대충 알았다고 대답한 뒤 가입 반나절 만에 게시판을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

“가스나, 안 죽고 살아 있었네~ 반갑다”, “나 ○○다. 우리 30년 만이네!”, “지금 사진 좀 올려봐라”, “안 올려도 된다. 인터넷에서 니 요즘 사진 발견!”, “우리 지금 점심 번개 하면서 니 사진 보고 키득거리고 있다”, “근데 야가(얘가) 우리 댓글 아직 못 보고 있는 거 아이가?”

200개 남짓 되는 댓글이 줄줄이 올라온다. 무엇보다 놀란 건 열렬한 환대였다. 먼저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인원이 이미 110명을 돌파했고, 나도 모르는 새 ‘신상털기’에 들어가 자기들끼리 한창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30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밤낮으로 게시판에 모여 앨범 같은 옛날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밴드에는 용량이 큰 사진이나 동영상을 편안하게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 사진, 학예회 사진,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이 줄줄이 게시판에 올라왔고 삭제된 데이터를 복구하듯 저마다의 타임캡슐을 여느라 바빴다. 채팅·댓글 등 하루에 뜨는 메시지만 1000건을 넘게 찍는 동창회라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가운데 말띠 새해를 잘 맞으라는 친구의 게시물엔 댓글이 1000개 이상 달렸다.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았던 한 친구 녀석이 뜬금없이 초등학교 때 첫사랑을 고백해 ‘추억담’에 불이 붙었다. 오프라인 모임도 야단법석이다. 같은 시각 다른 지역에서 따로 모인 친구들이 고향 친구들과 화상통화로 얘기하고, 폭력적이거나 비교육적인 그때 선생님들의 ‘뒷담화’로 30년 만에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식사 모임, 술 모임뿐 아니라 볼링 모임, 등산 모임 등도 날개를 달았다. 외국에 있는 친구까지 ‘동창 등반대’의 한겨울 어묵 사진을 보고 입맛을 쩝쩝 다셨다.

폐쇄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각광받은 네이버 밴드에 동창 찾기 기능이 탑재된 건 지난해 8월20일이었다. 네이버 쪽은 “학교를 기준으로 밴드 이용의 특징이 보였고, 밴드명에서 ‘동창’ 키워드가 다수 사용되는 특징이 확인돼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원래 대학생들의 과제물 작업 등 소모임으로 시작한 밴드가 소비자들의 욕구에 따라 서비스 폭을 넓힌 셈이다. 네이버 쪽 자료를 보면, 2013년 말 기준 애플리케이션 내려받기 횟수는 2300만건에 이른다. 실제 가입자 수와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가운데 절반가량 인구가 서비스 가입 뒤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기준 총 체류시간은 월 26억분. 다른 커뮤니티 체류시간 10억분대에 견주면 갑절 이상 높다. 2013년 말 기준 밴드에는 800만개의 모임이 개설돼 있으며, 동창 밴드는 약 40만개로 전체 밴드의 5% 정도를 차지한다. 그중 초등학교 밴드가 50%, 중학교 30%, 고등학교가 20% 정도로 어린 시절 친구일수록 밴드 개설의 비율이 더 높다. 회사 쪽은 연령에 따른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밴드 활동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나이가 40~50대라는 분석이 나온다.

초등학교 동창 밴드를 하고 있는 이경주(46·회사원)씨는 작년 가을 가입했다. 중고교 밴드도 있지만 초등 모임이 가장 활발하다. 회원 111명은 한달에 한번씩 ‘정모’(정기모임)를 한다. 모임에선 친구의 자녀들이 함께 와서 장기자랑도 열고, 옛날 담임선생님을 함께 찾아뵙는가 하면, 동문회 기금을 만들어 연말에 학교에 전달하는 등 건전한 동창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평소 주로 하는 이야기는 교육 문제. 이씨는 “워낙 어릴 때 친구들이라 남한테 말하기 어려운 교육 상담을 부담없이 주고받는다. 40대가 돼 삶의 여유를 가지게 된 친구들이 삶의 어려움을 서로 위로하고, 빈부차가 적었던 옛날에 대한 향수를 되새기는 등 잃어버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해를 잘 맞으라는 게시물엔
댓글이 1000개 이상 달렸다
인기가 많았던 한 친구 녀석이
초등학교 때 첫사랑을 고백해
‘추억담’에 불이 붙었다
오프라인 모임도 야단법석이다

대송초등학교 동기동창회. 안인자(오른쪽 둘째)씨는 “오랜 친구는 가족과 같다”고 말했다.

30대 이상 기혼자들이 주로 모인 밴드 동창회에서는 배우자의 눈치를 보는 일도 많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때가 잦기 때문이다. 실제 친구들 사이에 ‘핑크빛 무드’가 감도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다. 김아무개(40·회사원)씨는 밴드로 초등학교 여자 동창과 연락이 닿아 따로 만날 약속까지 했다가 포기했다. 둘 다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라 어색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김씨는 “옛날 나의 모습을 이성 친구가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했고, 약간 설렘도 있었던 것 같다. 아내가 좋아할 것 같지 않아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가정에서 배우자들이 동창회 활동을 탐탁잖게 생각한다며 “밴드 금지령이 내려져 한동안 못 본다 ㅠㅠ”라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주부 이아무개(47)씨는 “남편의 중학교 여자 동창이 ‘○○야~’라고 이름을 불러가며 말을 턱턱 놓고 사진이나 글귀 등 메시지를 보내 무척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실제 주부들이 주로 모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여자 동창한테서 ‘남편 단속’을 독려하거나 불쾌함을 표시하는 사례가 꽤 많다.

밴드 동창들은 공통적으로 ‘환대의 문화’가 생겨나곤 한다. 수십년 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격한 마음으로 환영의 인사를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반가운 만남이 진지한 관계형성으로 이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연세대 문화학협동과정 나임윤경 교수는 “화려한 스티커(이모티콘)를 써가며 칭찬하는 말이 넘쳐나지만, 관계맺기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불균형을 보이기도 한다. 간혹 저급한 농담이나 외모에 대한 평가가 오가면서 서로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이성간 ‘동료성’을 습득하고 체험하지 못한 한국 문화 탓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동안 친밀성과 경험을 축적해온 중고령자 동창 밴드의 경우, 상호 부조의 수단으로 균형감 있게 활용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만 7년 동안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는 안인자(61)씨는 지난해 8월 동창 밴드 기능이 만들어지자마자 밴드에 가입했다. 215명 동창 가운데 밴드 참여 인원은 125명 정도. 경조사 때 서로 돕고 부담을 나누며 같이 늙어가는 가족 같은 분위기다. 한 친구가 사고로 위독하다는 소식이 게시판에 뜨자마자, 친구들은 댓글을 달고 진심어린 마음을 보냈다. 안씨는 “회복 가망이 없다고 얘기를 들은 뒤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은 새벽기도, 나는 절에서 기도를 하는 등 각자 기원을 하는 가운데 그 친구가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한달 만에 의식이 돌아와서 우리가 기적을 만든 것처럼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 나이에 이르면 친구를 잃는 것은 가족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구에 대해 많이 알아선지 갈수록 애틋해진다”고 말했다.

윤지영 오가닉 미디어랩 대표는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더욱 공감하고 서로를 느끼며 나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훨씬 더 강력하게 받아들이는 시대가 됐다. 지금까지 이 같은 네트워크는 마치 일종의 생명체처럼 운영 과정에서 건전하게 흐르지 않은 서비스는 결국 쇠퇴하는 특징을 보여왔기 때문에, 기획자가 잘 관리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경우 모임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디자인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사진 각 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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