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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귀은 교수와 어머니 박경순씨. 햇볕이 잘 들고 바깥이 시원하게 보이도록 창을 크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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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시행착오 겪으며 텃밭 넓은 집을 지은 육십대 엄마와 사십대 딸의 건축학개론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실천했을 때 비로소 그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집짓기가 그랬다. 엄마와 딸은 집짓기를 시작했고, 이것이 삶의 답이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는 예순을 넘겼고 딸은 마흔이 넘었다. 집짓기에 대해 전혀 모르는 모녀가 집을 짓는 모습은 어떨까?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그래도 둘은 재밌다. 마치 ‘덤 앤 더머’ 같다. 집짓기는 기억의 리모델링이었다. 딸은 집짓기와 기억 리모델링의 과정을 책으로도 썼다. 제목도 <엄마와 집짓기>(한빛비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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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목공사를 지켜보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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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밖으로 싹이 올라오는 밭이 보이도록 집터는 높아졌고 밭이 될 땅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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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튼튼한 벽돌집. 줄눈은 카키색으로 넣어 튀지 않도록 했다. 지붕은 오지기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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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싹이 나는 밭이
보이길 원했다
집이 지어질 터는 좀더 높아졌고
밭이 될 땅은 평평하게 넓어졌다
엄마의 시선이 토목공사의 중심이었다 “집은 벽돌로 튼튼히 지어야지. 무조건 벽돌이다. 벽돌이 튼튼하다.” 엄마가 그러시는 이유를 딸은 모를 수 없다. 엄마의 불안이 벽돌을 찾은 것이다. 집이 지어지면서 과거의 슬픔과 미래의 불안이 섞였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만족감과 행복감을 더 짙게 했다. 아니 차라리 절박하게 했다. 엄마의 집짓기는 절박했고, 절박한 만큼 오히려 점점 소박해지고 있었다. 엄마는 그 집이 주위의 자연과 화해롭게 공존하기를 바라셨다. 집의 벽돌이 흙빛이 되었던 것도, 지붕의 색마저 비슷해졌던 것도, 모두 가장 자연스럽고 튀지 않기 위해서였다. 벽돌은 골드베이지색, 줄눈은 연한 황금빛이 도는 카키색으로 골랐다. 벽돌색과 묘하게 어울렸다. 벽돌 사이의 줄눈이 뭐 대수냐 하겠지만 그것이 집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꿀 수도 있다. 만약 줄눈이 하얀색이었다면 정말 뜬금없이 보였을 것이다. 반대로 검은색이었다면 무척 어둡고 무거운 집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붕 또한 붉은색이 도는 오지기와로 했다. 일종의 찰흙기와인데 무엇보다 번들거리지 않고 그저 흙 느낌이 나서 좋았다. 외벽은 콘크리트에 벽돌이지만 내부는 여리고 부드러운 나무와 한지를 썼다. 거실 벽은 나무로 감쌌고, 방의 벽은 한지 벽지를 둘렀다. 바닥은 거실, 부엌, 방 할 것 없이 모두 한지 장판이다. 새집증후군 같은 것이 없다. 방문객들은 거실에서 나무 냄새가 난다고 한다. 시각적 냄새도 한몫할 것이다. 누구나 공감각적 능력이 있어서 나무를 보면 나무 냄새가 나는 것이다. 시각의 후각화다. 방의 한지 벽지도 마찬가지다. 마른 꽃잎이 하나씩 붙어 있는 한지 벽지를 발랐는데, 그 압착화에서 소슬한 냄새가 났다. 벽지와 장판을 고르면서 엄마는 비염 증세가 있는 손자를 염두에 두었고, 딸은 그곳에서 주무시고 창밖을 바라보실 부모님의 모습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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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집 내부는 나무로 꾸몄고 거실과 부엌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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