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22 20:20
수정 : 2014.01.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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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사키온천마을의 료칸 니시무라야 쇼게쓰테이의 가이세키. 입맛을 돋우는 전채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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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대게철 맞은 일본 돗토리현·효고현의 다양한 대게요리와 가이세키 식도락 여행
“저는 기무라 다쿠야입니다. 사인도 많이 했어요.” 아무리 봐도 영화배우 기무라 다쿠야는 아니다. 자신이 유명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야마다 나오히로(49)씨의 과장어법이다. 그는 일본 혼슈 서부에 위치한 효고현의 가스미항 어시장에서 20년 넘게 일한 생선판매상이다. 대게철만 되면 일본 언론에 단골로 출연해 ‘대게 스타’가 됐다. 어시장에 딸린 상점의 각종 상품에는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을 정도다. “가니(게), 이카(오징어)가 풍성할 때 오셨네요. 지금 제일 맛있어요.” 지난 14~18일 찾은 일본 혼슈의 효고현과 돗토리현은 대게(즈와이가니)철을 맞았다. 이맘때가 되면 일본 전국에서 대게 관광객이 몰려든다. “수게 생식기는 몇 개인 줄 아세요?” 그가 던진 아리송한 질문에 여행객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두 개예요. 두 개! 암게는 4만~6만개 알을 가졌어요. 껍질이 딱딱하고 들었을 때 묵직한 거, 배의 색이 우윳빛 나는 게 좋은 게죠.”
가이세키는 꾸밈이 화려하다
본래는 절에서 차를 내기 전에
나오는 간단하고 소박한 음식이었다
술과 음식이 같이 나오는데
제철 맞은 바다, 들, 산의 재료를 쓴다
지난해 11월5일 가스미항에서는 대게철을 알리는 선포식이 열렸다. 가장 질 좋은 게의 최고 낙찰가를 알리는 행사였다. 무려 25만엔(우리 돈 약 255만원)에 낙찰됐다. “보통 왕에게 올리는 게 전통입니다.” 대게는 쭉 뻗은 다리가 마치 대나무 마디처럼 이어졌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한국도 동해안 지역인 울진이나 영덕 등지에서 주로 잡힌다. 대게 생산량으로는 효고현 가스미항이 일본에서 6위지만 1위 지역인 인근의 돗토리현과 비교해도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야마다씨는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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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토리현에 있는 미사사온천의 료칸 이잔로 이와사키. 대게철을 맞아 나온 대게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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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식재료는 그 계절을 알리는 전령이다. 물 만난 혼슈지역의 대게가 찬 겨울의 매력을 일본 열도에 전한다. 어디를 가나 대게가 주인공이다. 돗토리현의 중부지역에 위치한 850여년 역사의 미사사온천. 온천마을에서 만난 대게는 좀더 섬세한 조리법을 거친다. 미사사온천 마을은 도쿄올림픽이 열렸던 1964년을 마치 가위로 오려 붙여 놓은 듯한 풍경이다. 이곳의 료칸(일본식 여관. 다다미 개수로 방의 등급을 정한다)인 이잔로 이와사키 저녁만찬에는 대게를 활용한 가이세키가 등장한다. 온천료칸 여행은 가이세키를 빼면 앙꼬 빠진 단팥빵처럼 싱거워진다.
여행객들은 젓가락을 들이대기 아깝다고 탄성을 지른다. ‘눈으로 먹는다’고 할 정도로 가이세키는 꾸밈이 화려하다. 본래 절에서 유래한, 차를 내기 전에 나오는 간단하고 소박한 음식이었다. 무로마치시대(1392~1573년)의 화려한 혼젠요리(손님접대음식)의 영향을 받고 관료와 무사의 예법이 중요했던 아즈치·모모야마시대(1590~1603년)를 거치면서 발전한 뒤 에도시대(1600~1876년)에 이르러 그 꼴을 제대로 갖췄다고 한다. 술과 음식이 같이 나오는데, 제철을 맞은 바다, 들, 산의 재료를 쓰는 게 특징이다. 여행객들은 쩍 벌어진 대게 다리를 쭉쭉 잘라 입에 넣고 “잘 삶았네”라고 평한다. 눅진한 내장을 뿌린 대게 다리살은 바로 소담한 불판으로 직행이다. 대게초밥, 대게튀김까지 소화하고 나면 옆구리에서 딱딱한 대게 다리가 자라 튀어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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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사키온천마을의 료칸 니시무라야 쇼게쓰테이의 가이세키. 고베규의 원조로 알려진 다지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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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세키는 일즙삼채(一汁三彩. 한 가지 국물에 3가지 반찬), 이즙오채(二汁五彩), 삼즙칠채(三汁七彩)가 기본이고 일즙오채나 이즙칠채 등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날의 만찬은 삼즙칠채의 가이세키 상차림이었다. 두유에 익히는 쇠고기 샤브샤브까지 여행객들의 혀를 사로잡는다. 두유에는 라듐 성분이 풍부한 온천탕 물이 섞여 있어 독특하다.
돗토리현만큼 다양한 설화가 여행객을 끄는 곳이 있을까. 구라요시지역의 우쓰부키산에는 우리네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한 동화가 전해지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선녀가 아이들을 버려두고 올라갔다는 것. 여행객들은 “모성애가 없는 선녀구먼”이라면서 웃는다.
차로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 가로시장. 10년 전에 문을 연, 돗토리현을 대표하는 어시장이다. 돗토리현문화관광국 국제관광추진과의 나가타 요이치 계장은 “10년간 200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곳도 온통 대게 천지다. 대게 내장만 따로 모아 팔기도 하는데, 여행객이 관심을 보이자 인심 좋은 상인은 “맛보라”고 쓱 내민다. 엄지를 들고 허리를 구부린 과장된 몸짓으로 “오이시이(맛있어요)!”를 외치는 여행객의 모습에 시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내장만 따로 모아 한번 가열해서 조리한 뒤 판다. 나가타 계장이 또 소매를 잡아끈다. 돗토리현의 명물인 두부어묵 가게로 끌고 간다. 어묵은 흔히 생선살을 삶고 으깨 만드는데, 이곳의 어묵은 두부가 70%, 생선이 30% 들어간다. 먹고살기가 어렵던 시절 질 좋은 콩 생산지였던 돗토리현의 사람들이 개발한 향토음식이다. 생선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참치, 날치, 도미 등이 재료다. 카레나 파, 치즈 등을 넣기도 한다. 나가타 계장은 “날치 알만 넣기도 하는데 제일 인기다”고 한다. 독특한 먹거리를 만나는 일은 돗토리현만의 매력이다. 소뼈를 우린 규코쓰라멘(우골라면)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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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사키온천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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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50년대부터 사랑받았던 돗토리현의 규코쓰라멘은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한국의 일본라면집 ‘하카타분코’를 운영하는 김연훈씨는 “주로 일본은 돼지뼈를 사용한다”며 최근 다시 부는 규코쓰라멘의 인기는 우리의 소뼈음식 문화의 영향이라고 한다. 5~6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효고현에는 규코쓰라면만큼이나 여행객들에게 낯선 음식이 기다린다. 고베규(일본 와규의 종류)의 원조인 다지마규다. 효고현의 현청소재지인 고베시의 이름을 딴 고베규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쇠고기다. 푸아그라(거위 간)에 버금가는 맛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가타 계장은 “고베규의 원조는 계단식 논이 있는 다지마 지역의 송아지였다”며 옛 얘기를 풀어놓는다. 19세기 다지마 지역에 들어온 유럽인들은 농업용으로 사용되는 다지마 소를 맛보고 반했다. 일부가 그 소를 고베시로 가져와 레스토랑을 열면서 고베규의 명성이 시작됐다고 한다.
효고현의 기노사키온천의 료칸 니시무라야쇼게쓰테이의 가이세키는 다지마규가 대장이다. 삼즙칠채 상은 검은콩을 발효시킨 식전주로 시작한다. 오리고기 샤브샤브, 방어조림, 방어와 전복 사시미 등에 이어 도톰한 다지마규가 레드카펫의 스타처럼 화려하게 나타났다.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순간 귀신의 혀 놀림도 이보다 빠를 수 없을 정도로 여행객들이 흡입한다. 세상에서 가장 숨기 좋은 곳, 기노사키온천의 밤이 익어간다. 50여개 온천 료칸이 몰려 있는 기노사키온천은 마을 가운데 작은 실개천이 흐른다. 유카타를 입은 이들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걷는 풍경은 시곗바늘을 사무라이시대로 돌려놓은 듯하다.
>> 혼슈 돗토리현과 효고현의 볼거리
산인해안지오파크 교토부의 교탄고시에서 돗토리현과 효고현에 걸쳐 있는 해안지질공원. 2004년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설립된 ‘세계지질공원네트워크’(GGN)는 2008년 산인해안지오파크를 보존해야 할 지질유산으로 등재했다. 3~11월에는 우라도메해안 섬일주 유람선이 뜬다. (어른 1200엔, 어린이 600엔)
돗토리사구와 모래미술관 돗토리현의 북부 해안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모래언덕이다. 동서 16㎞, 남북 2㎞의 넓이. 사구 앞의 모래미술관에서는 4월19일부터 내년 1월4일까지 러시아를 주제로 전시가 열린다.
기노사키온천 13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효고현의 온천마을. 50여개의 온천료칸이 있고 그중에서 7곳을 둘러볼 수 있는 ‘소토유 메구리’ 이색체험도 있다. 작은 공방과 카페, 초콜릿과 소프트아이스크림 파는 집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곳. 오사카국제공항에서 차로 2시간30분 거리.
돗토리현 효고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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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현의 가스미항 어시장에서 일하는 야마다 나오 히로씨가 암게와 수게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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