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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번역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사업자등록증을 받은 지난해 8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주민센터에서 1차 조합원총회를 열고 있다. 번역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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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 국내 첫 ‘번역협동조합’
외국어를 전공한 남편과 아내, 대학 동문, 그 동문의 친구들이 모였다. “눈이 번쩍 뜨였어요. 서광이 비쳤지요.” 번역협동조합(www.transcoop.net)의 최재직(39) 사무국장은 지난해 5월 처음 협동조합 교육을 받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큰돈은 못 벌어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제 가슴속에 늘 언어 공부한 사람의 ‘로망’이 있었거든요. 통역하고 번역하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을 세우는 거죠.” 최 사무국장은 12년 동안 하던 보험영업을 그날로 접고, 협동조합과의 ‘연애’에 푹 빠져들었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최 사무국장은 아내 이수경(36)씨부터 설득했다. 대학 후배로 아랍어 전공자인 아내는 삼성전기에서 번역사로 6년간 근무한 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번역사들이 제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협동조합 만들어 제대로 대우받으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번역 일을 함께 하자고요. 제가 보험영업은 잘 못했지만, 좋은 번역 일감 따오는 영업은 정말 잘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아내 이씨도 금세 든든한 협동조합 동반자가 됐다. “협동조합은 돈보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였잖아요. 협동조합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다들 갖고 있으니까, 그런 게 든든한 힘이 되더라고요.” 지난해 6월 한달 만에 일사천리로 설립한 번역협동조합 창립총회에서는 아예 이사장직을 맡았다. “처음에 당장 나서는 사람이 없다 보니 제가 우선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이사장이래야 따로 월급도 없고 의무와 책임만 큰 자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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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에는 서대문구청이 후원해 홍제천에서 벌인 사회적 경제 홍보행사에 참여했다. 이수경 이사장과 최재직 사무국장 부부 모습. 번역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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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협동조합의 조합원한테서 선물받은 ‘번역협동조합’ 손글씨. 번역협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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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조합 새 흐름 수수료율 높은 업종·전문직 협동조합 결성 사례 잇따라 중간수수료를 많이 떼이는 개인사업자들이나 혼자서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수연 연구원은 “협동조합을 세우면 중간에서 떼이는 수수료율을 낮춰 조합원의 실질소득을 높일 수 있다. 퀵서비스협동조합이나 번역협동조합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로 퀵서비스 기사들은 협동조합을 세워 수수료율을 10%포인트 정도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만큼 퀵서비스 기사들의 수입을 늘릴 수 있다. 번역협동조합의 최재직 사무국장도 퀵서비스 사례에서 협동조합 설립의 힌트를 얻었다. 1인출판사, 그림책 작가, 영상제작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에게도 협동조합이 제격이다. 서울 마포의 1인출판협동조합, 그림책작가협동조합, 미디어콘텐츠창작자협동조합이 지난해에 연이어 세워졌다. 번역협동조합도 따로 일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유형에 속한다.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던 개별 전문직 종사자들이 당연한 경제적 권리를 누리거나 되찾는 데 협동조합의 힘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1인출판사들은 협동조합을 세워 공동 마케팅을 벌이고, 그림책 작가들은 대형 출판사의 횡포에 공동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영상제작자들은 자존감을 높이면서 능동적으로 창작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을 세운 사람들은 “모이니까 힘이 되더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수연 연구원은 “홀로 외롭게 일하던 전문직 종사자들은 협동조합을 세워 경제적 이익을 얻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보호받는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크게 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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