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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9 17:35 수정 : 2014.01.29 18:24

미국 시트콤 드라마 <빅뱅이론> 화면 갈무리.

살며 연구하며

하루하루 허우적대느라 보고 싶은 미국 드라마도 접어둔 지 오래지만 그래도 <빅뱅이론>만은 유일하게 챙겨본다. <빅뱅이론>은 과학 연구자 네명의 이야기를 그린 미국 시트콤이다. 이 드라마를 챙겨보는 데엔 재미도 재미이려니와 물리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약간의 의리(?) 의식도 한몫한다. 물리학의 전문 용어·개념이 담긴 개그 같은 대사에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터무니없는 행동에 우습기도 슬프기도 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 주변에도 <빅뱅이론>의 괴짜 주인공인 셸던 쿠퍼 박사의 분위기가 비슷한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셸던의 괴짜 같은 면모를 보고서 난 왜 웃었을까?

몇 년 전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았던 ‘여자 공대생 아름이’ 이야기는 이공계 여학생한테는 현실이었다. 2006년 스무살 동기끼리 떠난 첫 모꼬지 여행. 다른 여자대학 미술대생들도 같은 곳에 놀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남학생 몇몇이 우리 모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우르르 숙소를 나갔다. 사실 그런 일을 경험하는 이공계 여학생에게 최고의 칭찬은 아마도 ‘음대생 혹은 미대생 같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 이공학도인 우리 자신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촌스러운 모습에다 남들은 모를 전문용어나 떠들어대는 고리타분한 그런 사람일까?

드라마에서 셸던의 고집스럽고 황당한 행동에 다른 주인공들의 눈썹은 자꾸 찌푸려진다. 이공학도인 우리도 마찬가지이진 않을까? 몇 해 전 파리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온 어느 교수님이 학회의 느슨한 분위기를 인상적으로 전해주었다. 참석자들은 발표 일정이 없을 때엔 시내 카페에서 수다를 떨곤 했고, 자연스레 연구 주제에 관한 이야기꽃이 펼쳐지며 토론도 이어졌다는 것이다. 학회의 목적 중 하나인 소통이 학회장 대신 카페에서도 이뤄지는 것이다. 국내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혹시 연구 주제에 빠져 수다를 떠는 연구자에게 “이런 자리에 와서도 그런 얘기를 하느냐”며 핀잔을 주진 않았을까.

이공계 시청자한테나 인기가 있을 줄 알았던 <빅뱅이론>은 국내에서 꽤 넓은 인기를 누렸다. 궁금하지도 않을 이공계 세상을 다른 사람들이 궁금해하며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는 호평도 있지만, 이와 달리 우려되는 점도 있다. 과장이 섞이는 시트콤이니까 우스꽝스러운 소재로 한번 웃고 넘기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이공계 연구자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의 인식에 ‘자기 세계에 빠진 촌스러운 괴짜’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심어주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또 그런 이미지에 이공학도인 우리 자신도 갇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실 그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자연스럽고 또한 아름답기도 하다. 연구에 치여 바삐 살지만 내면으로나 외면으로나 멋있는 사람은 참 많다. 그리고 설령 겉모습이 촌스러워도 무엇이 문제랴. 촌스러움은 연구에 쏟는 순수한 열정의 증표이기도 한 것을, 그게 우리 식의 아름다움일 수 있음을,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홍주은 서울대 천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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