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5 20:26
수정 : 2014.02.0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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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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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서울의 오래된 카페들
서울의 가장 오래된 풍경을 쫓아 낙산의 이화동을 거닐어 본다.
낙산은 조선시대만 해도 도성 안 최고 경승지 중 하나로 손꼽혔다지만 낙타의 혹 같았던 화강암 봉우리들이 조선총독부 같은 대규모 석조 공사를 위해 떼어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처럼 산세는 밋밋해졌다. 아직까지 낙산 동편으로는 뚜렷한 채석장의 흔적들이 상흔처럼 남아 있다. 해방이 되지 않았다면 낙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지 모를 일이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서울로 밀려든 난민들의 대규모 판자촌락이 들어서며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평안은 찾아왔다. 2006년부터 정부에서 시작한 문화사업 덕분에 일부나마 공원과 성곽의 모습을 되찾았고 재개발 압박이 늦춰지면서 달동네는 느리고 편안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화동길에 들어서면 여전히 자동차는 고사하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층계 가득한 좁은 골목길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다. 나는 공공미술가들이 들어와 동네 주민들과 벽화와 미술작품을 설치할 당시부터 이 동네를 스케치하며 꾸준히 드나들었다. 동네를 예쁘게 꾸며주어 고맙다며 빵과 음료를 들고 나오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카메라 든 외지인들을 대놓고 싫어하는 주민도 있었다. 계단 하나 허투루 된 것이 없이 땅을 아껴 세운 집들을 보면 오래 살아온 주민들의 말이 대체로 옳다.
이화동을 오르는 길은 달팽이 길이라 불린다. 마치 달팽이 껍데기처럼 270도를 돌아 올라서야만 하는 길이다. 자동차를 위한 나선계단 같은 이 도로는 김현옥 서울시장 때 뚫어 놓은 길이다. 70년도 더 되었다는 미화이발관은 동네 상징 같은 곳이다. 층계 골목을 오르면 오래된 구멍가게들이 더 많았는데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다. 미화이발관조차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골동품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맡겨봐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올라가 성곽에 다다른 삼거리 골목의 모퉁이에 틀어 앉은 작은 기와집은 화분을 가득 두르고 있다. 날 좋을 땐 노인들이 모여 철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골목길 작은 정원이다. 아직 겨울이라 화분에는 흙만 가득 담겨 있지만, 봄이 오면 꽃도 담기겠지. 봄에는 이화동의 오래된 집들이 마을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할 예정이다.
글·그림 이장희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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