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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크의 ‘흑미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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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밥맛 특별한 밥집들
입맛 변덕스러운 트렌드 세터들이 모이는 이태원과 가로수길에 고슬고슬하고 차진 밥맛으로 승부하는 밥집이 인기다.도정부터 쌀 씻기, 밥물까지 까다로운 프렌치 메뉴보다 공들여 짓는 밥 맛에 감동하는 건 20~30대 젊은이들이다. 밥은 더 이상 ‘올드 패션’이 아니다. 과거 우리 식탁의 주인공이었던 밥은 한때 파스타 등에 밀려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외식문화의 트렌드세터들에게 밥은 ‘진부한 아이템’이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식도락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외식문화에 분다. 빈티지풍 액세서리와 의류가 최첨단 문화로 등극한 것처럼 말이다. 지난 7일 낮 12시 서울 이태원동. ‘피제리아 드 부자’(일명 부자피자) 앞은 한산하다. 한때 동네 주민들은 진풍경을 목격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도전정신 불태우며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한 조각 피자에 쏟아붓겠다 나선 많은 이들을 봐왔다. “어, 자리 없어요? 몇 시에 다시 와요? 12시 반에 오라고요?” 부자피자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부자피자 뒤 건물 2층에 자리잡은 ‘파르크’(parc)를 찾은 이들의 아우성이다. 20~30대가 80%다. 더러 흰 머리카락 날리는 노신사와 유럽에서 막 도착한 듯한 외국인들도 보인다. 아담한 소반에 밥 한 공기(200g), 슴슴한 국과 밑반찬 3가지, 주요리 한 가지가 다다. 주요리는 ‘도토리&청포묵 콤보무침’, ‘묵호항 직송 오징어볶음’, ‘호주산 생소 부챗살구이’ 중에 한 가지를 고르면 된다. 매일 바뀐다. 그저 평범한 밥상이 사람을 부르는 이유는 뭘까? 파르크의 주인 박모과(34·본명 박성우)씨는 “집에서 늘 먹던 어머니의 밥” 때문이라고 말한다. 백미밥과 흑미밥 중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는데, 모두 박씨의 어머니가 해주던 집밥 그대로다. 그는 1세대 브이제이(VJ·비주얼자키·공연이나 쇼의 배경 영상을 제작하는 직업)로 활동하다가 3년간 타이에서 살았다. “아시아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떠나 많은 것을 배웠다”는 그는 늘 어머니의 밥이 그리웠다. 외국의 유명한 한식당을 가도 어머니의 밥은 만날 수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의 밥과 음식을 배우자”고 생각하고 지난해 파르크를 열었다. 전라남도 순천 출신의 어머니는 솜씨가 좋았다. 셰프 6명이 일산지역의 청결미로 대형 전기압력밥솥 6개를 사용해 밥을 짓는다.
피자, 파스타집 제치고 줄서서 먹는
이태원 파르크
순천 출신 어머니에게 전수한
밥짓기법
가로수길 쌀가게 바이 홍신애
매일 직접 도정한 쌀로 밥해
박씨는 도정 날짜를 꼭 확인한다. 쌀은 도정한 날로부터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최소 15일 이내에 도정한 쌀로 밥을 해야 맛있다. 막 도정한 쌀로 쌀의 수분을 잘 유지하면서 가동되는 밥솥에 짓는 게 가장 맛있다. 그는 물과 쌀의 양, 맛 등을 매일 적은 데이터북도 만든다. “한번은 모든 조건이 같은데 밥이 질어져서 혼난 적이 있다.” 그때부터다. 당연한 소리지만 묵은쌀보다는 햅쌀이 맛나다. 묵은쌀은 수분이 이미 많이 빠져 맛깔스러운 향도 사라지고 밥을 해도 퍼석하다. 지난 1년간 점심에만 열었던 파르크는 손님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22일부터 저녁에도 밥을 판다. 영상을 업으로 했던 이답게 파르크는 세련된 카페풍의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파스타나 케냐 에이에이(aa) 같은 고급 커피가 식탁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다. 성공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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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캐주얼한 한식당, '쌀가게 바이 홍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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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맛있게 짓는 법
좋은 쌀 고르기 부서진 쌀은 밥 짓는 동안 녹말이 흘러 밥을 질척하게 만든다. 쌀의 수분 함유량은 14~16%가 적당. 한 줌 쥐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들고, 알이 통통하고, 광택이 나고, 가루가 묻지 않은 쌀이 좋은 것.
쌀 보관법 어둡고 통풍이 잘되는 곳이 적당. 서늘한 베란다가 좋다. 쌀통에 사과를 넣어두면 신선도가 오래 유지됨. 묵은쌀은 식초에 씻어 냄새를 없앤다.
묵은쌀 맛나게 밥 짓기 밥물은 1.5배. 여름에는 30~40분, 겨울에는 1시간~1시간30분 불린다. 다시마 끓인 물이나 청주, 우유 등을 소량 넣고 짓는다.
솥 종류별 맛있게 짓는 법
돌솥 잔열이 오래 보존되고 열전달이 솥 안에 골고루 퍼지는 게 특징. 소리가 자작자작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끈다.
양은냄비 불 조절이 힘들다. 얇아서 불이 직접 닿는 곳만 열이 전달되어 고루 익지 않을 확률이 높다. 처음 확 끓어오를 때까지 뒀다가 넘치는 듯하면 중간불로 줄이고 뚜껑을 3분의 2 정도 연다. 2~3분 더 조리하고 불을 한번 정도 센불로 키웠다가 끈다. 뚜껑은 덮는다.
전기압력밥솥 자주 청소해주는 게 좋다. 물을 1~2컵 넣고 찜 기능을 선택한다. 시간은 20분으로 맞춘다. 뜨거운 증기가 나와 스팀 노즐의 찌꺼기를 없앤다. 녹차 티백을 넣으면 밥솥에 밴 음식 냄새도 제거할 수 있다.
압력솥 노재승 교수가 가장 추천하는 밥 짓기 도구. 쌀의 수분을 가장 많이 유지하면서 밥 짓기가 가능한 솥.
코펠 양은냄비와 비슷한 특징을 가졌다. 열전도율이 높다. 코펠이나 양은냄비의 밥 짓기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냄비에 비해 쌀 양을 지나치게 많이 넣는 것. 용기의 반만 쌀로 채워라.
참고도서 <쌀> (김영사)
도움말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노재승 교수, ㈜리홈쿠첸
정리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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