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19 19:54
수정 : 2014.02.2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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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하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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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 10년차 라디오 피디 김훈종이 쓰는 라디오 인물 탐방기, <라디오 스타>가 격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란 말이 있다. 영화는 감독 놀음, 티브이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고도 한다. 라디오 피디로 일한 지 어언 10년 만에 단언컨대 ‘라디오는 디제이 놀음’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2시간 생방송 멘트를 전부 써줄 수는 없고, 아무리 능력 있는 피디라도 멘트마다 디렉션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아예 감독의 사인 무시하고 방송을 쥐락펴락한 디제이, 그게 하하다.
2007년 <하하의 텐텐클럽>이란 프로그램에 배치된 나는 온갖 선입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상꼬맹이, 까불이, 떼쟁이. 이게 하하에 대한 내 이미지였다. 방송을 맡은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사소한 문제로 하하와 청취자들 간에 말싸움이 붙었다. 라디오 디제이는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연을 보고 진행하는데 하하가 말하면 청취자들이 딴죽 걸고, 청취자 의견을 읊어주며 하하가 역정내는 식이었다. 디제이와 청취자들 사이에 샅바잡기가 계속됐다. 라디오는 생방송이기에 편집도 없다. 담당 피디인 나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디제이가 보는 컴퓨터 메모장에 연신 ‘그만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동시에 부스 창밖에서 목을 치는 손동작으로 그만하라는 사인도 보냈다.
‘손님이 짜다면 짠 거야 인마!’ 부아가 치밀었다. 디제이와 청취자가 생방송 중에 싸우다니, 내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방송국에서 하는 말 중 ‘양복 입는다’는 말이 있다. 평소 입지 않던 정장을 입고 피디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곳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징계받으러 가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간만에 양복 입자면 허리가 좀 쪼이겠는데….’
그런데 잠시 뒤 청취자들이 보내오는 문자 게시판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 하하 편드는 청취자든 반대 의견이든 게시판 글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그 재미나다는 싸움 구경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디제이 하하는 청취자들의 의견에 무플보단 시끄럽고 정성스러운 악플을 단 셈이다.
그 뒤에도 하하 때문에 심장이 쫄깃해진 적은 여러번이었다. 하하는 밤 10시 라디오 프로그램의 법칙을 바꿔놓았다. 다른 디제이가 ‘잘 자요’ 속삭였던 시간에 고래고래 소리쳤다. “죽지 않아~ 스파르타!” 게시판에 시끄럽다는 항의글이 빗발치면 더 소리를 질러댔다. 피디가 안절부절못하고 부스 밖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기를 여러번. 그러다 헨델의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깔리면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죄송합니다. 제가 방금 정신이 나갔나 봐요.” 담당 피디를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
라디오에서 하하는 본명인 ‘하동훈’으로 통했다. 하동훈은 언제나 진심을 과도하게 내비치는 사람이다. 비 오는 날이면 하동훈은 한없이 센티멘털해졌다. 신청곡이 있거나 없거나 제 마음대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불러댔다. 비록 끝까지 곡을 소화하기 어려운 고음불가였지만. 자연인 하동훈의 맨 얼굴을 보았던 나는 요즘도 가끔 <런닝맨>이나 <무한도전>에서 하하를 보게 되면 웃다가도 기분이 묘해진다. 재간둥이 하하 말고 가끔은 인간 하동훈이 다시 보고 싶다.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사진 에스비에스(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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