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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12 19:59 수정 : 2014.03.13 16:33

2003년 국내 발매된 닷지 다코타를 타는 영화 촬영감독 전용훈씨. 김재현 제공

[매거진 esc] 라이프
한국에서 냉대받는 차종, 트럭 타는 사람들…
아웃도어 활동, 전원생활에 편리하지만 선택 폭 턱없이 부족

픽업트럭은 한국에서 흔히 ‘짐차’로 불린다. 보통은 짐싣기가 필요한 사람들의 업무용 차량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얼마 전 열렸던 2014 북미국제오토쇼의 가장 큰 화제작은 패밀리 세단이나 스포츠카가 아니었다. 짐차, 포드 픽업트럭 F150의 신모델이었다. 세단이 주로 팔리는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F150은 전세계에서 단일 차종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차다. 지난 한 해 판매량만 80여만대. 30년 이상 북미 베스트셀링 카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가히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한편 지난 연말 여성으로서 세계 자동차업계 사상 처음으로 경영자 자리에 오른 지엠 대표 메리 바라는 첫 공식 일정이었던 지난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픽업트럭인 지엠시(GMC) 캐니언과 함께 등장했다. 가장 미국적인 차인 픽업트럭 시장에서 승부를 내지 않고는 지엠의 부활 역시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글로벌(특히 미국) 시장에서 픽업트럭은 회사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카드인 셈이다.

한국에서 픽업트럭은 아주 작은 시장이다. 에스유브이(SUV, 스포츠실용차)가 붐을 이룰 때조차 픽업트럭은 소외돼 있었다. 화물차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동차는 운전자의 경제력과 지위를 나타내는 일종의 액세서리다. 한국에서 세단을 탄다는 건 ‘먹고살 만하다’는 뜻이고, 그래서 해치백이나 왜건, 픽업트럭처럼 실용적이지만 ‘짐차스러운’ 디자인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런데 2002년 한국에서도 픽업트럭에 대한 수요가 잠깐 꿈틀댄 일이 있었다. 무쏘 스포츠가 발매되면서다. 무쏘 스포츠는 큰 인기를 얻었던 무쏘의 뒤를 트럭 형태로 잘라 발매된 일종의 파생상품이었다. 2003년 수입 픽업트럭으로는 처음으로 크라이슬러 닷지의 다코타가 발매됐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던 시점이었다. 아웃도어 문화에다 개성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었다. 게다가 화물차로 분류됐던 픽업트럭의 1년 세금은 고작 2만8500원. 픽업트럭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겼다. 한국에서 굳이 짐차를 몰고 다니는 남자들은 이런 변화에 민감했다.

전원생활은 도심과 달리
거의 모든 걸 직접 해야 해요
시멘트 한 포, 합판 한 장 사도
용달을 불러야 하죠
픽업트럭이 있으면 그럴 필요 없죠
짐 싣고 내리기도 쉽고 멋도 있고

영화 현장에서 스테디캠 감독으로 일하는 전용훈씨는 2003년 국내 발매와 함께 닷지 다코타를 구입했다. “픽업트럭을 사는 게 오랜 꿈이었어요. 미국 영화 속에 나오는 픽업트럭을 보며 늘 저런 차를 하나 구입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다행히 다코타가 국내 정식 수입되면서 바로 마음을 굳혔어요. 저 같은 경우 픽업트럭은 일상생활에서도 쓸 수 있고, 일로도 사용 가능했기 때문에 주저함이 없었어요. 큰 짐을 실을 수도 있고, 험로를 돌파해야 할 때도 힘이 충분하거든요. 영화 현장에 있다 보면 예정과 다른 카메라 앵글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제 차에 달아서 사용할 수도 있고요.”

그가 생각하는 픽업트럭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안정감이다. 일반 승용차는 도저히 갈 수 없는 험로를 픽업트럭은 잘도 돌파한다. 넘치는 힘과 네 바퀴가 함께 도는 사륜구동 시스템 덕분이다. 어떤 길도 걱정 없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오지 촬영이 많은 그에게 큰 장점이었다. 여기에 큰 덩치가 주는 ‘멋’은 덤이다. 물론 고작 5㎞/ℓ에 불과한 연비가 아쉬운 부분이지만 장점에 비하면 큰 문제는 아니다.

사업가인 김영동씨는 2004년식 쉐보레 S10을 탄다. 3년 전쯤 픽업트럭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딜러를 통해 구입했다. 그는 픽업트럭의 장점이 무조건 ‘멋’에 있다고 했다.

사업가 김영동씨가 딜러를 통해 구매한 쉐보레 S10의 뒷모습. 김재현 제공

“픽업트럭을 볼 때마다 이유 없이 가슴이 뛰었어요. 거대한 픽업트럭보다 작고 올드한 픽업트럭을 좋아했는데 특히 S10이 너무 멋있어 보였죠. 사실 이런 개인적인 애정이 없다면 한국에 정식 수입되지도 않는 차를 굳이 가지고 올 이유는 없었죠. 물론 실용적인 이유도 있어요. 전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데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어요. 도심과는 달리 거의 모든 걸 직접 해야 할 경우가 많아요. 시멘트 한 포, 합판 한 장 사려고 해도 용달을 불러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픽업트럭이 있으면 그럴 필요가 없죠. 차체가 낮아서 짐을 싣고 내리기도 너무 쉽고. 멋도 있고, 실용적이기까지 하니 불만이 없어요. 에이에스(AS)요? 한국에서 주문하면 늦어도 보름이면 부속이 미국에서 도착해요. 카센터에 가서 공임만 주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데요 뭘.” 여러 사람이 타지 못한다는 것, 협소한 주차장에 가기 힘들다는 것 정도가 아쉬움이지만 그 역시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불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픽업트럭을 타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국산차는 선택의 폭이 사실상 둘(액티언 스포츠, 코란도 스포츠)뿐이고, 환경 규제로 외국에서 수입해 오기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픽업트럭 수입 대행을 10여년째 해오고 있는 오토네트워크의 이태주 대표는 아쉬움을 표했다. “픽업트럭을 한국에 들여오려면 제약이 많아요. 환경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워요. 비용도 상당하고, 국가에서 정해둔 곳에 가서만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피곤한 일이죠. 개인이 가져오는 건 사실상 무리예요. 자동차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자동차는 문화다. 미국에서 픽업트럭이 잘 팔리는 건 넓은 국토가 한몫했다. 한국처럼 24시간 편의점이 곳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1주일분의 식재료를 한번에 사다 둬야 하다 보니 픽업트럭이 큰 인기를 얻는다. 한국에도 전원생활을 즐기는 이들,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났지만 이들의 선택은 여전히 에스유브이로 한정됐다.

얼마 전 만났던 포드코리아 관계자는 자사의 베스트셀링 모델인 F150의 수입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건 도요타나 닛산 같은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 정식 발매된 최초의 수입 픽업트럭이었던 닷지 다코타는 수입이 중지된 상태다. 쌍용은 국내 자동차 기업 중 유일하게 픽업트럭을 발매하고 있지만 픽업트럭용으로 따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에스유브이의 후면부 디자인을 살짝 바꾼 것에 불과해 디자인에 아쉬움이 있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픽업트럭을 타려면 여전히 병행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그럼에도 취재를 위해 만났던 픽업트럭의 오너들은 다음 차도 꼭 픽업트럭으로 구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뜻일 것이다. 워낙 차체 골격이 튼튼해 잘만 관리하면 평생 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고, 감가상각이 낮아 중고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도 픽업트럭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실제로 보면 오너들의 말처럼 끝내주게 멋있다.

이기원 <젠틀맨 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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