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9 20:16
수정 : 2014.03.2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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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의 커리 ‘치킨띠까마살라’와 ‘새우커리’.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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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인도식 커리 대 일본식 카레 비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에 붓는 향긋한 노랑 국물. 오랫동안 카레의 이미지는 이 하나였다. 지금은 다르다.
톡쏘는 향의 소스에 얇은 빵을 찍어 먹는 인도식 커리와 부드럽게 혀에 감기는 맛의 일본 카레집이 속속 늘어나며 경쟁중이다.
인도인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방심하다가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다. 일본 식품회사 관계자인 히라야마 마코토, 오하시 사치요 등 일본인 2명이 카레 특허권을 출원했기 때문이다. 특허신청서에 자신들을 ‘손쉽게 조리할 수 있는 카레요리 창안자’로 소개했다. ‘배타적 카레 제조권이 보호’받고 ‘독점판매도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카레 종주국으로서 인도와 영국은 일본이 권리를 국내에서만 행사하지 않을 거라고 봤다. 인도는 ‘종주국 지위에 대한 정면도전일 뿐 아니라 카레 제조 방법에 대한 간섭’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인디펜던트> 등 영국 언론도 브리태니커 사전을 인용해서 ‘카레는 인도통치 시절 영국인들이 인도 전통음식을 혼합해 만들었다’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1999년 11월 한 일간지에 게재된 기사 내용이다. 두 나라의 격렬한 대응 탓인지 이후 카레특허권에 관한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커리와 카레의 맛 차이는
밀가루와 향신료가 만든다
밀가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든 카레는
밥에 부어 먹기 맞춤이고
향신료가 주인공인 커리는
빵을 찍어 먹기 좋다
인도나 영국만큼이나 카레를 사랑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인에게 어머니의 손맛을 물으면 바로 ‘카레’란 답이 나온다. 요리학교인 나카무라아카데미 서울분교의 가와시마 토시오 교수는 “가난하던 시절, 어머니가 해준 카레를 많이 먹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일본인들의 유년의 기억에는 카레가 있다”고 말한다.
요즘 서울 한복판에서 카레를 둘러싼 일본과 인도의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인들의 섬세한 혀를 사로잡으려는 외식업계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점심시간. 14년째 명동에서 영업을 하는 인도카레전문점 ‘타지’는 홀이 거의 찼다. 4인용 식탁만 20개가 넘는데도 말이다. 한국어가 서툰 인도인 종업원에게서 이국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 둘러보니 20대부터 50~60대까지 손님층이 다양하다. 매니저 라린다 라나씨는 “처음에는 장사가 안됐지만 2005년쯤부터 좋아져서 지금 분점이 두 개다. 진짜 우리 커리 맛을 알게 된 거다”라고 한다. 지난 14일에 찾은 서울 신대방동의 ‘코코이찌방야’. 정오가 넘자 손님들이 밀려든다. 뱀 꼬리가 분초 단위로 늘어나는 꼴이다. 20~30대 여성이 대부분. 코코이찌방야는 우리로 치자면 김밥집만큼이나 많은 일본의 카레체인점이다. ‘카레 레스토랑 체인 점포수’ 1위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코코이찌방야를 국내에 들여온 농심의 김성환 팀장은 “강남점은 초반부터 인기였고, 처음 경험한 카레 맛이 제일 맛있는 법”이라면서 한국인이 먹어온 카레와 비슷한 코코이찌방야의 앞날은 밝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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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캉가꾸가꾸의 햄버그를 토핑으로 올린 ‘가꾸가꾸카레’.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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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카레집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인도식이 대세였다. 2000년에 ‘강가’(10개 매장)와 ‘달’(3개 매장), ‘나마스테’(5개 매장)가, 2006년에 ‘두르가’(6개 매장) 등이 잇달아 인도풍 인테리어와 조리법을 내세워 영업을 시작했다. 영혼의 안식을 찾겠다며 갠지스강으로 떠났다가 돌아온 여행자들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저렴한 가격과 현지의 맛으로 대박난 창신동 뒷골목의 ‘에베레스트’(2002년. 3개 매장)도 주인의 고향이 네팔이지만 인도식 카레집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판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1만원대가 훌쩍 넘는 강가와 달이 주춤하는 사이 일본식 카레가 상륙했다. 2008년 농심은 일본의 코코이찌방야(16개 매장)와 손을 잡았다. 카레 하면 진한 노란색이거나 코를 후벼 파는 강한 향만 기억하던 소비자에게 갈색의 국물이 흥건한 일본식 카레는 독특했다. 부산에도 곧 문을 열 예정이다. 2010년에 문 연 ‘아비꼬카레’(33개 매장)도 인기다. 5~10단계의 매운맛을 고를 권리와 오징어, 가라아게(닭튀김) 등 카레 위에 얹는 토핑 선택권이 재미로 소비자를 끌어당겼다. 1만원 미만대의 가격도 무시 못할 요소다. 이런 체인점 이외에도 주인장의 개성을 한껏 살린 서교동의 ‘캉캉가꾸가꾸’(2012년), 연남동의 ‘히메지’(2011년) 같은 일본식 카레집도 식도락가들의 목록에 올라갔다. 영락없는 일본의 골목길 카레집이다. 두 집 모두 가격은 5000~7000원대다. 인도식 카레집도 질세라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이태원과 합정동과 상수역 일대에 생겨났다. 선배 격인 ‘와즈완’과 ‘차크라’의 격려에 고무된 ‘시타라’, ‘웃사브’, 모던 인도식을 내세우는 ‘타이거 마살라’ 등이 문을 열었다. 치열한 외식업계의 선두다툼은 어디로 갈까? 맛의 차이를 논하지 않고 전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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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이찌방야의 신대방동 지점.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로 붐빈다.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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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는 본래 여러 가지 항신료와 고기, 채소 등을 넣고 푹 끓인 인도 전통음식이다. 영국인들이 ‘커리’라는 이름을 달았고, 그 커리가 일본으로 건너가 ‘카레’가 되었다. 단지 발음만의 차이는 아니다. 커리와 카레의 맛 차이는 밀가루가 만든다. 일본은 카레루가 베이스다. 여기서 ‘루’(roux)는 소스 등을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버터에 볶아 만든 것을 말한다. 카레루란 이 루와 커리 가루가 합쳐진 것이다. 즉석카레는 이 카레루에 각종 맛내기 조미료 등을 첨가한 것이다. 가와시마 교수는 밀가루를 섞게 된 이유를 밥 문화에서 찾는다. “밥에 얹어 먹으려면 어느 정도 농도가 있어야 맛있다”고 설명한다. 밀가루 때문에 끈기가 생겨 걸쭉해진다. 반면 인도식은 공기를 순식간에 점령하는 수십가지의 강한 향을 풍기는 커리 가루가 맛의 기본이다. 땅이 넓어 지역에 따라 요구르트, 쌀가루, 코코넛밀크, 녹두 등을 섞기는 해도 밀가루는 넣지 않는다. 조리할 때 정향, 계피, 커민, 코리앤더, 후추 등 10여 가지 향신료를 섞은 ‘마살라’를 기본양념으로 깔고 향신료들을 더 넣는다. 매혹적인 향신료는 우리 미각을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게 한다.
일본도 커리가 전해졌다고 알려진 메이지시대에는 카레루가 없었다. 혼슈 가나가와현의 요코스카항에 정박한 영국 함대의 해군들이 커리를 먹는 것을 보고 일본 해군도 커리를 들여왔다고 한다. 일본 해군의 눈에는 영국군의 쌩쌩한 체력이 커리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였다. 지금도 요코스카항에서는 ‘해군카레’ 축제가 열린다. 해군카레전문점들도 모여 있다. 가와시마 교수는 “80여년 전에 카레루가 편리성 때문에 만들어졌고, 퍼져나간 것은 60여년 전”이라고 말한다.
인도식과 일본식은 단짝도 다르다. 일본식이 밥이면 인도는 난 같은 밀가루 전병이다. 물론 훅 불면 날아가는 고슬고슬한 밥도 짝꿍이지만 주로 난을 먹는다. 조리 과정을 살펴보면 인도식은 기름이 꽤 여러 단계에서 들어간다. 재료가 첨가될 때마다 기름을 넣어 볶는다. 각종 토핑은 일본식의 특징. 인도 현지를 여러 번 방문한 오뚜기의 김승욱 책임연구원은 인도 카레의 특징을 한마디로 별만큼 많은 다양성이라고 말한다. “북인도는 유제품이나 기(인도의 투명 버터) 등을 많이 쓰고 양고기와 난을 먹는데, 남인도는 고추 재배와 쌀농사 등이 잘돼서 카레가 맵고 쌀 전병처럼 얇게 부친 것을 먹는 경우가 많다.”
인도식이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독특한 감성 충만한 도민준이면 일본식은 부드럽고 은근한 매력의 이휘경이다. 천송이가 될 것인지 유세미가 될 것인지는 여러분 선택할 바다. 그 선택에 따라 서울의 카레전쟁의 향방이 정해진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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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 카레. 오뚜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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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 카레 소사
한국식 카레 하면 오뚜기의 노란색 카레 가루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1969년 ‘오뚜기 분말 즉석카레’(사진)가 국내 첫생산 되면서 70년대에 대중화됐다. 60년대는 일본의 에스비(S&B), 하우스인도카레 등의 제품만 있던 시절이다. 이전에도 우리는 카레를 먹지 않았을까? 1930년대 ‘우리 조선에서도 시골궁촌이 아니면 어지간이 보급되여’ 있었다.(1935년 5월3일치 동아일보) ‘라이스요리몃가지’란 제목에 카레조리법도 신문(1937년 8월18일치 조선일보)에 등장하는데 ‘삐푸카레-라이스’, ‘치큰카레-라이스’, ‘드라이카레-라이스’ 조리법은 꽤 그럴싸하다. 카레 파는 식당도 있었다. ‘흔히 너절한 식당 가튼 데를 가면 주문한 지 오분도 안되어서 내어놋는 라이스카레가 잇습니다.’(37년 12월11일치 조선일보) 이 기사에는 인도음식이란 점을 분명히 밝히고 ‘이것은 먹고 잇슬 때는 입안이 확근확근’하고 ‘몸에 털이 오르는 것 가트며 더옵기도’ 하다고 평했다. <커리의 지구사>에는 1903년 이후 주요 개항지에서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일본에서 커리 가루를 들고 왔다고 한다.
요즘 우리 카레는 건강을 강조하는 추세다. 강황 등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노란색도 강황에서 나온다. 고형의 일본 즉석카레보다 사용된 기름 양도 적어 담백하다.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맛은 ‘약간 매운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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