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26 19:44
수정 : 2014.03.27 14:25
|
쾅프로그램
|
[매거진 esc] 좋아서 하는 인터뷰
쾅프로그램은 남자 둘이 하는 밴드다. 그래서 매력이 없다. 내가 남자니까. 그럼에도 나는 쾅프로그램이 좋다.
나, 쾅프로그램 왜 좋아하지? 섹시 걸 그룹도 아닌데. 공책을 펼쳤다. 이유를 적었다. 순식간에 세 개나. 첫째는 대충 입은 옷 때문이다. 쾅프로그램이 공연하는 걸 몇 번 봤는데 그때마다 옷이… 그저 그랬다. 잘 입는다 못 입는다를 판단하기 이전에 음, 쾅프로그램의 두 청년, 최태현과 김영훈은 아침에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고 나온 옷을 그대로 입고 공연하는 것 같았다. 그게 내 눈엔, 옷을 잘 차려입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해 그저 옷을 입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 무엇은 그들의 음악이다. “옷이 그것밖에 없어서.” 쾅프로그램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최태현과 대화를 나눴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다. 옷이 그것밖에 없어서.
둘째는 앨범 커버. 쾅프로그램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정규 앨범 <나 아니면 너>는 작년 8월에 나왔다. 커버에 둘의 사진이 있다. 얼굴에 낙서를 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낙서한 건 아니고요, 얼굴을 지운 거예요. 영훈이랑 저랑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다시 민간인이 말했다. 민간인은 누굴까? 슬프게도 둘 다 대한민국 청년이고, 군대에 가야 해서 입대했다. 김영훈은 복무 중이고, 최태현도 복무 중이어야 하는데 병 때문에 돌아왔다. 그런데 다 나아서 가을에 다시 입대한다.
‘한 명은 군대 갔고, 한 명은 군대 가는데, 얘들을 왜 소개하는 거야?’ 하고 물을 수도 있다. 맞다. 하지만 앨범은 군대를 안 간다. 이렇게 적고 나니까 <나 아니면 너>가 굉장한 앨범 같은데 딱히 그렇진 않다. 손톱으로 손등을 긁은 정도는 되지 않겠냐고 적고 싶지만 사실 그건 듣는 사람에게 달린 거 아닌가? 아무튼 누군가 이 앨범을 들어주면 좋겠다. 두 소년이 적어 내려간 한 시절이 얼마나 폭력적이었고 아름다웠는지. 아름다움은 둘에게 보내는 찬사지만, 폭력은 그들에게 가해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슬픈 청년들이겠지. ‘역사적, 현재적 상황은 자꾸 쪼개지면서도 초점이 나가고’ 같은 가사를 듣고 있으면, 물론 그들 스스로는 그저 좋아서 음악을 한다고 말하겠지만, 누군가 듣든 듣지 않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 점에 대해선 굳이 내가 적고 싶지 않다. 다만 얼굴을 지운다는 거, 모르겠다, 나는 자의식이 창작의 근원이라고 믿어왔는데, 그들이 나를 흔들었다. 얼굴을 지운다는 것은 자의식을 지운다는 것이다. 이게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게… 좋다.
셋째 이유는 ‘부정확성’ 때문이다. 갑자기 진지한 단어가 나왔다. 그런데 별거 아니다. 쾅프로그램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부르는 최태현의 발음에 관한 것이다. 최태현은 웅얼거린다. “하지만 저는 가사를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부정확해서 좋다. 명확하게 말 잘하는 놈 중에 괜찮은 놈이 있던가? 그리고 부정확함은 이 앨범 그리고 쾅프로그램의 정서 같다. 이 앨범이, 아니, 이 둘이, 뭔가를 잘 알아서 짜임새 있게 연출을 하고 음악을 만들었다기보다는 한 소절 한 소절, 한 걸음 한 걸음, 낯선 곳으로 걸어갔다는 인상을 준다. 이것은 내가 이 앨범에 대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래서 안타깝다. 한 명은 군대를 갔고 한 명은 잠깐 갔다가 왔는데 곧 제대로 다시 간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군대에 갔다 오면 어른이 된다는 말이 뻥이라는 걸 예비역들은 알고 있으니까. 어른은 재미없다. 변함없이 낯설고 불안하고 오묘하게 둘이 돌아올 게 분명하다. 그렇게 또 동네 동생 같은 옷을 입고 웅얼거리며 낯선 나라를 보여줄 테니까. “그런데 모르겠어요. 군대 가서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 쾅프로그램을 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민간인은 <다이 와 큐>(DIE WA Q)라는 앨범을 내고 혼자 활동 중이다. 쓰고 보니 최태현에 대한 얘기만 많다. 뭐, 김영훈은 군인이니까. 하지만 혹시라도 서운해할 그에게 전할 말이 있다. 내가 아는 예쁜 여자가 “드럼 치는 애 귀여워. 사귀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런 날이 올지 모르지만 제대하면 연락하세요. 영훈씨.
이우성 시인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