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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엘지와 두산의 야구경기가 펼쳐진 잠실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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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출근길엔 야구게임, 퇴근길엔 야구중계 관람, 차 트렁크는 야구장비로 꽉 채운 야구광의 봄채비
정확한 날짜를 기억한다. 2013년 6월2일이었다. 낮술을 마시던 내내 야구 중계를 놓지 못하던 친구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다 집에 갈 때쯤에는 같이 경기를 보고 있었다. 광주에서 열린 엘지(LG) 트윈스 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7회까지 4점 차로 뒤지던 엘지가 손주인의 안타에 임정우와 이병규의 홈 쇄도, 봉중근-문선재 배터리의 활약으로 역전승을 했던 날이다. 그날 밤 하이라이트만 20번 넘게 돌려봤다. 야구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당연히 야구가 없는 월요일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휴식기마다 기운이 빠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엘지 팬이 됐다.
경기를 보지 못할 때면 야구 금단증세를 치료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장 쉬운 건 역시 스마트폰이었다. 앱스토어를 열어 야구게임 애플리케이션을 뒤졌다. 다양한 게임을 해봤지만, 역시 ‘2사 만루’가 최고다. 실제 선수들의 얼굴을 거의 흡사하게 본뜬 캐릭터에 야구장에서 들었던 응원가 ‘떼창’까지 삽입돼 있었다. 승수에 욕심이 날 무렵에는 선수카드를 구입해 다른 팀 선수들을 영입했다.(지금은 내 팀의 투수진에는 윤성환(삼성), 김광현(SK), 유희관(두산), 손승락(넥센) 등이 포함돼 있다.) 골수 엘지 팬인 친구는 “너는 진정한 엘지 팬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매번 지더라도 기존의 엘지 선수 캐릭터들만 가지고 게임을 한다는 소리였다. 녀석이 진정한 야구를 모르는 거다. 한국 프로야구에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된 게 벌써 16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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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킨텍스에서 열린 야구체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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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타깃’. 야구 마니아들이 야외에 설치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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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과
트위터로 야구 이야기
야구장에서는
낯선 이와 하이파이브
33번째 프로야구 시즌이
내 인생의 첫번째 봄 같다
그렇게 약 8개월이 지났다. 그만큼 장비가 늘었다. 일을 하다가도 틈만 나면 야구장비 쇼핑몰 사이트로 접속했다. 어느새 차 트렁크가 가득 찼다. 올라운드와 외야수, 포수 미트를 합쳐서 글러브가 3개, 야구공 10개, 야구 배트 하나, 엘에이 다저스의 류현진이 주로 입는 다저스의 훈련용 후드티 하나, 고양 원더스의 야구모자 하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팅점퍼 하나, 그리고 팝업 타깃까지. 차 트렁크에 실린 여러 장비 중에서도 이 팝업 타깃이 가장 자랑스럽다. 사회인 야구팀 활동까지 할 여력이 없는 나에게는 꽤 괜찮은 장비다. 어디를 가나 벽이나 철조망이 있으면 이 타깃을 세워놓고 공을 던졌다. 대충 10개를 던지면 3, 4개가 들어갔다. 출근길에는 야구게임을 하고, 퇴근길에는 야구 중계를 봤다. 틈나는 대로 야구 관련 책을 읽고, 장비 사이트를 드나들었고, 여유가 있을 때는 야구장을 찾았다. 그렇게 약 8개월을 보내는 동안 친구들은 종종 왜 갑자기 야구에 빠졌냐고 묻곤 했다. 6월2일 그날의 경기가 준 쾌감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거다. 아마도 외로웠던 것 같다. 2012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여자친구는 유학을 떠났고, 나는 6년이나 일했던 직장을 떠났다. 그 상태로 고스란히 2013년을 맞이했다. 많은 게 변했지만, 여전히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야구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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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미트’. 포수가 끼는 글러브는 일반 글러브와 달라 명칭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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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도 입는 훈련용 후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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