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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6 19:47 수정 : 2014.03.27 14:21

지난해 엘지와 두산의 야구경기가 펼쳐진 잠실야구장.

[매거진 esc] 라이프
출근길엔 야구게임, 퇴근길엔 야구중계 관람, 차 트렁크는 야구장비로 꽉 채운 야구광의 봄채비

정확한 날짜를 기억한다. 2013년 6월2일이었다. 낮술을 마시던 내내 야구 중계를 놓지 못하던 친구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다 집에 갈 때쯤에는 같이 경기를 보고 있었다. 광주에서 열린 엘지(LG) 트윈스 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 7회까지 4점 차로 뒤지던 엘지가 손주인의 안타에 임정우와 이병규의 홈 쇄도, 봉중근-문선재 배터리의 활약으로 역전승을 했던 날이다. 그날 밤 하이라이트만 20번 넘게 돌려봤다. 야구에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당연히 야구가 없는 월요일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휴식기마다 기운이 빠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엘지 팬이 됐다.

경기를 보지 못할 때면 야구 금단증세를 치료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장 쉬운 건 역시 스마트폰이었다. 앱스토어를 열어 야구게임 애플리케이션을 뒤졌다. 다양한 게임을 해봤지만, 역시 ‘2사 만루’가 최고다. 실제 선수들의 얼굴을 거의 흡사하게 본뜬 캐릭터에 야구장에서 들었던 응원가 ‘떼창’까지 삽입돼 있었다. 승수에 욕심이 날 무렵에는 선수카드를 구입해 다른 팀 선수들을 영입했다.(지금은 내 팀의 투수진에는 윤성환(삼성), 김광현(SK), 유희관(두산), 손승락(넥센) 등이 포함돼 있다.) 골수 엘지 팬인 친구는 “너는 진정한 엘지 팬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매번 지더라도 기존의 엘지 선수 캐릭터들만 가지고 게임을 한다는 소리였다. 녀석이 진정한 야구를 모르는 거다. 한국 프로야구에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된 게 벌써 16년 전이다.

지난해 7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킨텍스에서 열린 야구체험전.

‘팝업 타깃’. 야구 마니아들이 야외에 설치해 사용한다.

야구가 없는 날에도 야구를 즐기려는 안간힘은 엘지의 야구가 아닌, 나만의 야구에 눈뜨게 했다. 먼저 책을 샀다. 야구팬들의 바이블로 불리는 <야구란 무엇인가>부터 최근에 나온 <포수란 무엇인가>까지 닥치는 대로 사다 보니 어느새 16권이다. 야구에 관한 이야기들은 야구 경기만큼 흥미로웠다. 야구 에세이 서적을 거쳐 <손혁의 투수 교과서> 같은 이론 서적에 이르렀을 때쯤 글러브와 야구공을 샀다. 36년을 살면서 한 번도 좋아한 운동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직접 공을 던져보고 싶었다. 동네 친구와 한강 공원에 나갔다. 남들에게는 <개그콘서트>의 ‘오성과 한음’처럼 보였겠지만, 우리는 <응답하라 1994>의 정우와 유연석처럼 캐치볼을 했다, 흠흠. 한강 난지지구에는 2개의 야구장이 있었다. 캐치볼에 지칠 때면 사회인 야구팀들의 경기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배가 고프면 더그아웃에 붙은 중국집 전단지를 찾아 짬뽕을 시켜 먹었다.(이건 진짜 별미다.)

처음 보는 사람과
트위터로 야구 이야기
야구장에서는
낯선 이와 하이파이브
33번째 프로야구 시즌이
내 인생의 첫번째 봄 같다

그렇게 약 8개월이 지났다. 그만큼 장비가 늘었다. 일을 하다가도 틈만 나면 야구장비 쇼핑몰 사이트로 접속했다. 어느새 차 트렁크가 가득 찼다. 올라운드와 외야수, 포수 미트를 합쳐서 글러브가 3개, 야구공 10개, 야구 배트 하나, 엘에이 다저스의 류현진이 주로 입는 다저스의 훈련용 후드티 하나, 고양 원더스의 야구모자 하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팅점퍼 하나, 그리고 팝업 타깃까지. 차 트렁크에 실린 여러 장비 중에서도 이 팝업 타깃이 가장 자랑스럽다. 사회인 야구팀 활동까지 할 여력이 없는 나에게는 꽤 괜찮은 장비다. 어디를 가나 벽이나 철조망이 있으면 이 타깃을 세워놓고 공을 던졌다. 대충 10개를 던지면 3, 4개가 들어갔다.

출근길에는 야구게임을 하고, 퇴근길에는 야구 중계를 봤다. 틈나는 대로 야구 관련 책을 읽고, 장비 사이트를 드나들었고, 여유가 있을 때는 야구장을 찾았다. 그렇게 약 8개월을 보내는 동안 친구들은 종종 왜 갑자기 야구에 빠졌냐고 묻곤 했다. 6월2일 그날의 경기가 준 쾌감만이 이유는 아니었을 거다. 아마도 외로웠던 것 같다. 2012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여자친구는 유학을 떠났고, 나는 6년이나 일했던 직장을 떠났다. 그 상태로 고스란히 2013년을 맞이했다. 많은 게 변했지만, 여전히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야구가 찾아왔다.

‘포수 미트’. 포수가 끼는 글러브는 일반 글러브와 달라 명칭이 다르다.

류현진도 입는 훈련용 후드티.

야구를 만나고 보니, 주위에 함께 야구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졌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트위터로 야구 이야기를 했고, 야구장에서는 역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어떤 때에는 서울 청계천의 호프하우스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야구 중계를 보았다. 지난해 엘지가 페넌트레이스 2위를 결정지은 그날도 나는 그 호프집에 있었다.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과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건배를 하며 기뻐했다. 덕분에 2013년 가을도 뜨거웠다. 그리고 이제 봄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33주년을 맞이했지만, 나는 생애 두번째 야구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아니, 사실상 개막경기부터 관전하는 야구 시즌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레고 떨리는 한편, 두렵다. 마치 내 인생의 첫번째 봄인 것처럼.

강병진 2년차 야구팬·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뉴스 에디터


야구 관련 앱

>>> 야구를 즐길 수 있는 또다른 아이템

스포츠펍 청계천의 ‘호프하우스’는 4개의 스크린으로 하루 동안 열리는 4개의 경기를 모두 보여준다. 여의도의 ‘꼴통치킨’은 11대의 텔레비전과 4대의 스크린을 설치했는데, 정말 눈 돌리는 대로 야구밖에 안 보인다. 엘지 팬이라면, 잠실의 ‘트윈스 홀릭’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야구 관련 앱 야구장에 처음 갔을 때, 가장 민망할 때가 응원가 타임이다. 남들은 부르는데, 혼자 박수만 치고 있으면 너무 외롭다. ‘프로야구 응원가’(구글 플레이)는 미리 응원가를 듣고 배워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야구 규칙’(구글 플레이)과 ‘재미있는 야구백서’(아이패드용 앱·사진)는 야구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인 초보 팬에게 유용하다. 이제 막 야구에 입문한 여성 팬에게는 경기를 보느라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는 남자친구보다 훨씬 나을 거다.

스카우팅 리포트 24시간 야구를 즐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실 대화다. 해마다 전 구단에 소속된 선수들의 기록과 장단점들을 정리해 만드는 ‘스카우팅 리포트’ 서적들이 이때 필요하다. 주로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사서 쓰윽 훑어보는 게 좋다. 야구는 선수들의 캐릭터를 웬만큼 알고 있을 때 재밌는 경기다. 남들에게는 쓸데없어 보여도 굳이 스카우팅 리포트를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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