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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2 19:54 수정 : 2014.04.03 15:25

프랑크푸르트 부엌.

[매거진 esc] 요리
주방 직접 설계한 오세득 셰프와 함께 본 ‘키친: 20세기 부엌과 디자인’전

<내 부엌으로 하루키가 걸어 들어왔다>란 책이 있다. 다소 낭만적인 제목의 이 책은 지은이가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이다. 짐작하겠지만 하루키의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아예 하루키의 소설들 속의 음식을 만들고 레시피까지 담은 책이다. 예술적 경지의 미식과 식탐을 오갔던 하루키와 부엌을 연결시킨 점이 독특하다. 부엌은 현대일본문학의 거장에게도 중요한 창작의 원천지였지만 평범한 우리에게도 하루를 시작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지금의 싱크대와 개수대가 붙어 있고 천장과 바닥까지 수납장이 꽉 찬 부엌의 형태는 20세기 초에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여성 건축가 마르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1926년 설계한 프랑크푸르트 부엌이 효시인데 지금의 부엌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6월29일까지 서울 사간동의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키친(KITCHEN): 20세기 부엌과 디자인’전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부엌 15점과 부엌용품 400여점을 전시한다. 이 흥미진진한 부엌투어에 프렌치레스토랑 ‘줄라이’의 오세득 셰프가 동참했다. 그는 줄라이의 오픈 당시 직접 주방을 설계했다.

현대 시스템 부엌의 효시
1926년 설계된 프랑크푸르트 부엌
1차세계대전 후 주택난 겪던 독일서
대규모 공영주택 건설하며 설계

전시장 2층. 프랑크푸르트 부엌이 자태를 드러낸다. 6.5m의 좁은 공간이 실망으로 이어질 찰나 심봉사가 서서히 눈을 뜨듯 놀라운 부엌의 구조가 보인다. 양념통이 가지런히 몰려 있고, 뒤돌면 바로 불판인데다가 자르고 씻고 반죽하는 도마 옆에는 개수대가 붙어 있다. “아래쪽의 식기 수납장이 재밌다. 물기가 남은 접시가 빨리 마르도록 (접시 넣는) 나무 선반을 삐딱하게 만든 게 놀랍다”고 오 셰프는 말한다. 손바닥만한 작은 부엌에는 곡물 보관통과 다리미질하는 선반까지 있다. “독일은 주식이 빵이다. 그래서 반죽하는 도마 바로 아래 곡물 보관통을 둔 거다”라고 한다. 앉아서도 작업할 수 있게 의자도 있고 천장에 달린 조명 줄을 당기면 이리저리 움직이는 전등도 있다. 붙박이 수납장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데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미세한 먼지가 쌓이지 않아 위생적이다.

포겐폴 부엌.

키친트리.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심각한 주택난을 겪었던 독일이 대규모 공영주택을 건설하면서 설계됐다. 독일의 도시계획가인 에른스트 마이가 주도한 택지조성계획의 일부였다. 4년간 무려 1만호의 주택에 ‘시스템 부엌 1호’인 프랑크푸르트 부엌이 들어갔다. 오 셰프는 “남자가 설계했다면 이렇게 안 했을 거다. 실제 부엌에서 경험이 많았던 여성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과 시스템이다”라고 찬사를 보낸다. 중산층 주부가 본격적으로 가사를 도맡기 시작한 시대다. 마르가레테 쉬테리호츠키는 동선을 철저하게 줄여 최소 면적에 최대 효율을 거두는 구조를 만들었다.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줄이는 데 역점을 둔 거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9살. <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에 따르면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나치저항운동을 하다 4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풀려난 뒤에도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과거 공산당 활동이 빌미가 돼 각종 공공사업에서 배제되는 등 고단한 시간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0년, 임종할 때까지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건축에 힘썼다고 한다.

미니키친.
3층에 전시된 1950년대 프랑스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부엌’도 푸랑크푸르트 부엌과 비슷한 이유로 태어났다. 샤를로트 페리앙과 르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위니테 다비타시옹 부엌은 제2차 세계대전 뒤 마르세유의 부족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된 임대주택에 설치됐다. 부엌과 다이닝룸을 분리하는 카운터를 설치한 점이 특징 중 하나. 다만 카운터 하단에 미닫이문을 둬서 그 통로를 통해 음식을 부엌에서 다이닝룸으로 이동시킨다. 다이닝룸에 있는 사람은 부엌을 볼 수 없다. 부엌의 지저분한 것들을 적당히 감추고 다이닝룸의 상황을 파악해가면서 음식을 만들고자 하는 요리하는 이의 심정을 반영한 구조다. “레스토랑과 유사하다. 요리사 머리 위보다 높은 수납장도 독특하다.” 측면에서 보면 수납장의 위쪽이 더 튀어나온, 기운 형태다. 요리사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과 수납장이 수평이 되게 설계됐다. “아마도 눈의 피로를 덜겠다는 생각 같다.” 이렇듯 새로운 형태의 부엌은 주택의 발전과 같이 간다.

“손잡이가 나무 홈을 판 형태로 들어간 게 아니라 튀어나온 형태다. 보기만 해도 예쁘다. 넣다 뺐다 할 수 있는 선반은 요리하는 사람 입장에서 더 편리해진 거다.” 120여년 역사의 독일 주방가구업체 포겐폴의 ‘포겐폴 부엌’(1950년대) 주방의 손잡이는 초승달처럼 얇은 모양으로 튀어나와 붙어 있다. 인체공학을 바탕으로 시스템부엌을 더 발전시켰다. 너비가 60㎝인 유닛(구성단위)들로 일자, 기역, 니은, 디귿자형 등 자유로운 배열이 가능하다. ‘유닛모듈시스템’ 혹은 ‘모듈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가전제품의 발달도 부엌의 틀에 영향을 미친다. 원액기가 쏙 들어가게 디자인한다.”

위니테 다비타시옹 부엌.

1950~7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레이먼드 로위의 ‘룩키친’은 파스텔톤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강국이 된 미국의 상황을 반영한다. 오 셰프는 조 콜롬보가 1963년에 디자인한 ‘미니키친’과 1983년 작인 슈테판 베베르카의 ‘키친트리’에 스마트폰의 셔터를 연신 누른다. 반한 눈치다. 미니키친은 너비 50㎝의 큐브 형태인데 바퀴가 달렸다. 그야말로 이동식 소형 부엌이다. 지금도 판매한다니 놀라울 뿐이다. 가격은 대략 수백만원대. “설치된 인덕션이 잘 맞는 부엌이다. 코일 없이 판 자체가 뜨거워지는 건데 이런 화기에는 알루미늄 냄비보다는 자석이 붙은 철제 냄비를 사용하는 게 좋다.” 요리사다운 조언이다. 어쩌면 앞으로의 부엌은 꼭 정해진 공간에 있을 필요가 없어질지 모른다. 이동식 부엌이 대세가 된다면 말이다. 그가 키친트리의 화기를 손으로 가리킨다. “대리석에 박힌 화기는 핫플레이트(조리용 철판)다.” 키친트리는 철 기둥이 마치 나무의 줄기처럼 버티고 있고 싱크대, 화기, 조리대 등이 가지처럼 펼쳐진 형태다.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라운지 바나 고급 레스토랑의 시선끌기용으로 설치해도 좋을 거 같다.”

물주전자. 주방용품 브랜드 알레시 제품.

퐁듀포트. 옌스 크비스트고르의 작품.

차가운 스테인리스스틸과 알루미늄으로 구성된 독일의 주방업체인 불타우프(불탑)의 ‘시스템 20’은 오 셰프의 레스토랑 줄라이의 초창기 부엌과 흡사하다. 불타우프 회장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요리사에게 주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는 얘깃거리가 전해지고 있다. “차가운 분위기는 그만큼 신선하다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위생에 가장 큰 신경을 쓴 형태다.”

3층과 1층에 걸쳐 전시된 접시, 후추통, 주전자들 앞에 눈이 멈춘다.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옌스 크비스트고르의 퐁듀포트의 십자형 손잡이는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형태”이고 페테르 홀름블라드의 퐁듀 세트는 “김치찌개, 곰탕, 어묵탕을 담아내도 좋겠다”고 말하며 웃는다. “알피 보온주전자는 레스토랑 홀 매니저들의 로망이다.”

2000년대 중반 포겐폴은 포르셰디자인그룹과 손잡고 남성들만을 위한 부엌가구를 공동 개발했다. 주방의 주인이 여성에서 남성까지로 확대된 게 이유다. 생활상의 변화도 부엌을 바꾼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금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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