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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2 20:15 수정 : 2014.04.03 21:26

경북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바닷가 산비탈의 부지깽이 나물밭.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내린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울릉도 봄 여행
반도의 봄은 후다닥 달려왔지만 울릉도의 봄은 발자국 하나마다 꽃망울 터뜨리고 나물향 퍼뜨리며 천천히 퍼져나간다.
삼나물, 부지깽이, 명이, 전호, 참고비 등 특산종 나물이 익어가는 울릉도의 봄. 침이 고이는 섬 여행을 떠난다.

눈 많고 바람 많은 외딴섬, 한겨울엔 높은 파도로 여객선 결항이 일쑤인 섬이다. 성인봉 골짜기엔 5월 초나 중순까지도 눈이 남아 있다는 섬이 울릉도다. 그러니 이제 울릉도에도 슬슬 봄기운이 기지개를 켜겠지 하는 생각은 틀렸다. 강릉 여객선터미널에서 멀미약을 사며 전해 들은, 여행사 직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거긴 버얼써 봄이지. 육지완 달라요. 한달은 빠를 거라.” 꺼칠한 나무들이 새순 내밀 틈도 없이 매서운 바닷바람에 휘둘리고 있을 줄 알았던 울릉도는, 들여다보니 고지대를 빼곤 눈부신 초록 세상이었다. 가파른 산비탈도 절벽 이어진 해안도 온통 진초록 나물밭으로 덮여 있었다. 봄꽃들은 어딜 가나 지천이고, 일부 봄나물은 끝물이었다. 저동항에서 만난 주민은 “울릉도 해안지역은 1월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한겨울에도 수도관 얼 일이 거의 없단다. 온난다습한 해양성 기후 덕이다.

이미 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나른한 울릉도의 봄날을 누리는 방식은 세가지였다. 지천으로 깔린 ‘울릉도의 보약’, 쌉싸름하고 향기로운 울릉 특산종 봄나물들을 맛보고 즐기는 일, 특산종 봄꽃들을 들여다보고 감상하는 일, 그리고 이들을 만나러 오가는 길에 맞닥뜨리는 아름다운 해안 경관 즐기기다.

집마다 장작불에 대형솥
봄나물 삶아내는 작업 시작
섬노루귀·섬괴불주머니 등
울릉도 특산종 야생화 만개

산비탈 ‘보약밭’ 부지깽이·명이·삼나물 지천

울릉도는 어떤 섬인가. “지하에서 (일본의 독도 망언이 어이없어) 웃는다”는 신라 장군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이래 무릉도, 우릉도로 불리다 울릉도로 자리잡았다. 140만년 전부터 6300년 전까지의 시기에 수중 화산폭발로 형성된 섬이니, 육지와 이어진 적이 없어 식생이 독특하다. 750종에 이르는 식물 중 40여종이 다른 곳엔 없는 울릉도 특산이다. 특산종엔 ‘섬-’ ‘울릉-’ ‘우산-’이 이름 앞에 붙는다.

우선, 순환도로를 따라 차를 몰며 보약 같은 봄을 만났다. 차창을 열자 좌우로 푸른 바다와 푸른 비탈밭이 바람을 일으켜 나물향기·꽃내음을 차창에 끼얹었다. 푸릇푸릇 눈부신 비탈밭을 기어오르니 초록융단 미끄럼틀이 따로 없다. 부지깽이밭 김을 매며 ‘무지심’(새별꽃)을 뽑아 던지던 아주머니는 울릉도 특산 나물에 대해 해박했다.

“이게 요즘 한창 수확하고 있는 부지깨이 아인교. 공식 이름이 섬쑥부재이라카는 긴데, 맛과 향이 차암 좋아요. 비타민이 많고, 기관지에 좋다카데요.”(현포리 주민)

부지깽이(섬쑥부쟁이)는 주로 남·서쪽 해안가 비탈밭을 뒤덮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명이(산마늘) 밭이 또 푸르게 깔렸고, 한창 자라고 있는 삼나물(눈개승마)과 참고비 밭들이 이어진다. 울릉도 봄나물이 나오는 차례는 대략, 전호·부지깽이·명이·물엉겅퀴·참고비·삼나물 등 순이다.

울릉도의 나물 중에서 가장 먼저 알싸한 봄맛을 돋워준다는 미나리과의 전호 나물은 밭이 따로 없다. 저절로 자라 지천으로 깔리는데다, 쉽게 물러져 저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포리의 이른바 ‘고려장’(통일신라시대 석축고분군이 있는 곳) 부지깽이 밭에서 만난 이연순씨는 “전호는 100% 자연산”이라며 “2~3월 한달 반쯤 채취해 먹고 치운다”고 했다. 반면, 밭에서 재배하는 부지깽이나 명이는 “열이 많은 나물이어서 생것으로는 보관이 어려워” 말리거나 장아찌로 담는다.

명이는 먹을 것 없던 시절 울릉도 주민의 구황식물이었다. 천부리 홍문동에서 부인과 함께 나물 삶을 준비를 하고 있던 이복술(79)씨가 말했다.

“내 여 태어나가 팔십년을 산하고 흙하고 살아온 사람인데, 이 나물이 우릴 살렸다카이. 산에 갈 때는 명이 삶아가 콩고물에 무쳐가, 또 산에서 나물 뜯어 툭툭 털어 쌈 싸묵고, 종일 나물만 묵고 그래 살은 기라.”

이랬던 명이나물 장아찌가 울릉도 특산 별미로 알려지며, 육지에서 주문이 쇄도하는 인기 반찬이 된 지 오래다. 육지의 산마늘과는 맛과 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명이는 1년에 새순이 한 잎씩만 자라나, 채취하려면 4~5년은 지나야 한다는 까다롭고 귀한 나물이다. 까다롭기는 부지깽이 나물도 마찬가지. 사동리 산비탈 밭에서 부지깽이를 수확하던 최종환(63)씨는 “장마철에 심으면 겨우내 눈에 덮여 자라다가 3월부터 5월까지 두번 정도 채취하는데, 작년엔 비가 적어 많이 죽었다”고 했다.

왜 부지깽이 나물일까. 한 식당 주인은 “새순이 나와도 따지 않고 그냥 두면 아래쪽 심이 단단해지는데, 가을에 심이 굳어진 뒤 이걸 부지깽이로 썼다”고 했다.

부지깽이(섬쑥부쟁이)

집마다 대형솥 갖추고 4월초부터 나물삶기

또다른 봄나물로, 주민들이 ‘엉거쿠’(응구쿠)라 부르는 물엉겅퀴(섬엉겅퀴·울릉엉겅퀴)가 있다. “꽁치랑 궁합이 최고라. 된장국 끼리 묵어도 좋고. 엉거쿠 된장국에 꽁치 여서 끼리모 더 좋다. 누가 보모 돼지밥이가, 캐도 차암 맛나요. 배고프던 시절에 마이 묵던 기라.”(현포리 이연순씨)

농가엔 집마다, 특수 제작한 나물 삶는 대형 솥을 안 갖춘 곳이 없다. 4월 초부터, 채취한 나물 삶는 작업이 벌어진다. 부지깽이도 삶고 삼나물도, 참고비도 취나물도 삶는다.

요즘 나오는 울릉도 나물의 가격 순위를 보자. 고급 나물로 꼽는 참고비와 삼나물이 첫째고, 다음이 명이나물, 부지깽이, 취나물, 물엉겅퀴, 전호 순이다. 저동 가게에서 참고비·삼나물 말린 것 한 봉지(100g)에 1만2000~1만5000원, 부지깽이는 생채 1㎏에 5000~6000원을 부른다.

지금 전호나물은 이미 전성기가 끝나가고 있고, 부지깽이나물 수확이 한창이다. 물엉겅퀴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고, 곧 수확이 이뤄질 명이나물, 삼나물, 참고비는 한창 봄햇살을 받으며 밭에서 자라고 있다. 모두 울릉도와 주민들을 봄빛으로 밝혀주는 싱싱한 보약들이다.

식당 주인, 비탈밭에서 만난 할머니, 여관 아주머니, 구멍가게 할머니 들이 들려주신 말씀을 종합해 나물들 조리법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호/ 향이 차암 좋다. 식초 옇고 초무침으로 묵는기 최고라. 데쳐서 무쳐도 좋고.

-부지깽이(섬쑥부쟁이)/ 살짝 데쳐서 무쳐 묵지. 시금치 매이로. 고기 쌈 싸묵어도 좋고.

-삼나물(눈개승마)/ 이기 인삼 잎이랑 비슷해노이 삼나물이라. 삶아가 말라가, 묵을 때 다시 물에 불가가 삶아가 무쳐 묵는기라. 졸깃하이 똑 소고기 맛이라.

-참고비/ 삼나물 매이로 삶아가 말라가, 다시 볶아가 무쳐 묵으라.

-명이(산마늘)/ 쌈 싸무도 좋지럴, 식초·간장에 절과가(절여서) 삭콰가(삭혀서) 장아찌로 밥 싸무도 좋지럴, 다 좋다.

-물엉겅퀴(엉거쿠)/ 된장국 끼리도 좋고, 꽁치 조림에도 좋다. 다 제맛을 살려주이까네.”

겨울에 피어나 봄을 밝히는 울릉도 야생화들

울릉도의 봄을 밝히는 또다른 보석 같은 존재가 성인봉 산비탈 눈 속에서 또 눈 곁에서 싹트고 피어나는 봄 야생화들이다. 물론 해안가 저지대엔 여느 지역 봄빛과 다를 바 없는 동백, 매화, 개나리 들도 기암절벽 너머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만개해 있다. 울릉도에서 가장 먼저 푸른 새잎을 밀어올린다는 말오줌나무도 꽃뭉치에 자잘한 꽃망울들을 달았다.

“울릉도 봄은 겨울과 겹칩니다. 성인봉 고지대에선 아직도 산악스키를 타고, 저지대에선 봄나물을 뜯으니까요.”(관광가이드 이기로씨)

저동의 산골짜기 잔설 옆에서 반짝이는 흰색 섬노루귀 꽃무리를 찾아냈다. 꽃을 피울 때 둥글게 말린 잎이 노루의 귀를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흰 꽃, 분홍 꽃, 보라 꽃 등 색색의 꽃빛깔을 자랑하는 노루귀는 겨울 끝자락에 피어나, 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봄꽃 중 하나다. 여섯개의 꽃잎을 활짝 연 흰 꽃송이들은 노루 귀를 닮은, 긴 솜털로 덮인 포슬포슬한 잎들에 감싸인 모습이다. 햇살에 잠긴 흰 솜털들이 꽃을 한결 돋보이게 해준다.

해안 순환도로 옆 절벽 밑에서 만난 섬괴불주머니는 긴 주머니를 닮은 노랗고 긴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다. 노란색 육지 괴불주머니에 비해 주황색을 띠는 게 특징이다.

이밖에 괴불주머니와 같은 종인 섬현호색, 산기슭을 환히 밝힌 섬벚나무 등 울릉도 특산종들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밭에서 주민들이 뽑아 던지는 새별꽃 무리도 눈부시다.

울릉도의 식물에 밝은 김종두(울릉도학교 교장)씨는 “울릉도는 식물 생태 보물창고”라며 “식나무·보리밥나무처럼 가을에 꽃 피워 봄에 열매맺는 식물도 많다”고 말했다. 울릉도의 봄은 이상기온과 관계없이, 이미 한겨울부터인 셈이다.

울릉도/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삼나물(눈개숭마)
참고비
물엉겅퀴
섬괴불주머니
섬노루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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