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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 바닷가 산비탈의 부지깽이 나물밭.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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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울릉도 봄 여행
반도의 봄은 후다닥 달려왔지만 울릉도의 봄은 발자국 하나마다 꽃망울 터뜨리고 나물향 퍼뜨리며 천천히 퍼져나간다.
삼나물, 부지깽이, 명이, 전호, 참고비 등 특산종 나물이 익어가는 울릉도의 봄. 침이 고이는 섬 여행을 떠난다.
눈 많고 바람 많은 외딴섬, 한겨울엔 높은 파도로 여객선 결항이 일쑤인 섬이다. 성인봉 골짜기엔 5월 초나 중순까지도 눈이 남아 있다는 섬이 울릉도다. 그러니 이제 울릉도에도 슬슬 봄기운이 기지개를 켜겠지 하는 생각은 틀렸다. 강릉 여객선터미널에서 멀미약을 사며 전해 들은, 여행사 직원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거긴 버얼써 봄이지. 육지완 달라요. 한달은 빠를 거라.” 꺼칠한 나무들이 새순 내밀 틈도 없이 매서운 바닷바람에 휘둘리고 있을 줄 알았던 울릉도는, 들여다보니 고지대를 빼곤 눈부신 초록 세상이었다. 가파른 산비탈도 절벽 이어진 해안도 온통 진초록 나물밭으로 덮여 있었다. 봄꽃들은 어딜 가나 지천이고, 일부 봄나물은 끝물이었다. 저동항에서 만난 주민은 “울릉도 해안지역은 1월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한겨울에도 수도관 얼 일이 거의 없단다. 온난다습한 해양성 기후 덕이다.
이미 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나른한 울릉도의 봄날을 누리는 방식은 세가지였다. 지천으로 깔린 ‘울릉도의 보약’, 쌉싸름하고 향기로운 울릉 특산종 봄나물들을 맛보고 즐기는 일, 특산종 봄꽃들을 들여다보고 감상하는 일, 그리고 이들을 만나러 오가는 길에 맞닥뜨리는 아름다운 해안 경관 즐기기다. 집마다 장작불에 대형솥
봄나물 삶아내는 작업 시작
섬노루귀·섬괴불주머니 등
울릉도 특산종 야생화 만개
산비탈 ‘보약밭’ 부지깽이·명이·삼나물 지천 울릉도는 어떤 섬인가. “지하에서 (일본의 독도 망언이 어이없어) 웃는다”는 신라 장군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이래 무릉도, 우릉도로 불리다 울릉도로 자리잡았다. 140만년 전부터 6300년 전까지의 시기에 수중 화산폭발로 형성된 섬이니, 육지와 이어진 적이 없어 식생이 독특하다. 750종에 이르는 식물 중 40여종이 다른 곳엔 없는 울릉도 특산이다. 특산종엔 ‘섬-’ ‘울릉-’ ‘우산-’이 이름 앞에 붙는다. 우선, 순환도로를 따라 차를 몰며 보약 같은 봄을 만났다. 차창을 열자 좌우로 푸른 바다와 푸른 비탈밭이 바람을 일으켜 나물향기·꽃내음을 차창에 끼얹었다. 푸릇푸릇 눈부신 비탈밭을 기어오르니 초록융단 미끄럼틀이 따로 없다. 부지깽이밭 김을 매며 ‘무지심’(새별꽃)을 뽑아 던지던 아주머니는 울릉도 특산 나물에 대해 해박했다. “이게 요즘 한창 수확하고 있는 부지깨이 아인교. 공식 이름이 섬쑥부재이라카는 긴데, 맛과 향이 차암 좋아요. 비타민이 많고, 기관지에 좋다카데요.”(현포리 주민) 부지깽이(섬쑥부쟁이)는 주로 남·서쪽 해안가 비탈밭을 뒤덮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명이(산마늘) 밭이 또 푸르게 깔렸고, 한창 자라고 있는 삼나물(눈개승마)과 참고비 밭들이 이어진다. 울릉도 봄나물이 나오는 차례는 대략, 전호·부지깽이·명이·물엉겅퀴·참고비·삼나물 등 순이다. 울릉도의 나물 중에서 가장 먼저 알싸한 봄맛을 돋워준다는 미나리과의 전호 나물은 밭이 따로 없다. 저절로 자라 지천으로 깔리는데다, 쉽게 물러져 저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포리의 이른바 ‘고려장’(통일신라시대 석축고분군이 있는 곳) 부지깽이 밭에서 만난 이연순씨는 “전호는 100% 자연산”이라며 “2~3월 한달 반쯤 채취해 먹고 치운다”고 했다. 반면, 밭에서 재배하는 부지깽이나 명이는 “열이 많은 나물이어서 생것으로는 보관이 어려워” 말리거나 장아찌로 담는다. 명이는 먹을 것 없던 시절 울릉도 주민의 구황식물이었다. 천부리 홍문동에서 부인과 함께 나물 삶을 준비를 하고 있던 이복술(79)씨가 말했다. “내 여 태어나가 팔십년을 산하고 흙하고 살아온 사람인데, 이 나물이 우릴 살렸다카이. 산에 갈 때는 명이 삶아가 콩고물에 무쳐가, 또 산에서 나물 뜯어 툭툭 털어 쌈 싸묵고, 종일 나물만 묵고 그래 살은 기라.” 이랬던 명이나물 장아찌가 울릉도 특산 별미로 알려지며, 육지에서 주문이 쇄도하는 인기 반찬이 된 지 오래다. 육지의 산마늘과는 맛과 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명이는 1년에 새순이 한 잎씩만 자라나, 채취하려면 4~5년은 지나야 한다는 까다롭고 귀한 나물이다. 까다롭기는 부지깽이 나물도 마찬가지. 사동리 산비탈 밭에서 부지깽이를 수확하던 최종환(63)씨는 “장마철에 심으면 겨우내 눈에 덮여 자라다가 3월부터 5월까지 두번 정도 채취하는데, 작년엔 비가 적어 많이 죽었다”고 했다. 왜 부지깽이 나물일까. 한 식당 주인은 “새순이 나와도 따지 않고 그냥 두면 아래쪽 심이 단단해지는데, 가을에 심이 굳어진 뒤 이걸 부지깽이로 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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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섬쑥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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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물(눈개숭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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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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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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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괴불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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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노루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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