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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9 19:41 수정 : 2014.04.10 15:51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삭막한 활화산 피해 들어간 산 중턱에서 만난 신성한 숲, 이곳이 진짜 ‘영혼의 집’이로구나
플라타너스 같은 두꺼운 줄기와
사십미터쯤 되는 큰 키
작은 잎을 무수히 매단 나무들이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서있었다
갑자기 머리털이 곤두섰다

2000년대 초반의 좋았던 시절 어느 겨울, 어떤 산악인을 만났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겨울이 와서 산행이나 훈련이 여의치 않으면 남반구로 갑니다. 거긴 여름이니까요.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 일년 사시사철 등산을 할 수 있지요.”

그는 나처럼 야산을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라 산악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전문가였다. 그 시절 나나 그나 연부역강의 한창나이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는 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실천의지가 좌우한다고 생각할 때였다.

“우리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상관없어요. 노트북 배터리하고 손가락만 작동되면 되니까.”

나는 질세라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은 날씨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 게 작가라는 예민한 종족이다.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린 사람 포함,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오죽하면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이강백 작)라는 희곡, 연극이 있을까.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짜증나서 못 쓰겠다고 하고 조금만 추우면 마음이 시려서 못 쓴다, 날씨가 좋으면 이런 좋은 날 놀지 않고 써서 뭘 하나 싶어서 못 쓴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 연인이라도 있으면 싱숭생숭해서 못 쓴다. 결국 아무 때도 못 쓴다, 마감이 없으면.

그러던 차 2007년 겨울의 끝에 해당하는 2월, 산악인도 아닌 내가 남아메리카의 칠레에 가서는 수도 산티아고에서 780여㎞ 떨어진 아라우카니아주 카우틴 지방의 비야리카산에 오르게 되었다.

칠레에는 2600여개의 화산이 있고 그중 아직 활동 중인 화산이 85개인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다섯개의 화산에 비야리카 화산이 포함된다. 높이는 2847m로 백두산보다 약간 높으며 정상 부분은 눈으로 덮여 있다. 또 분화구 안에 세계적으로 드문 용암호가 있다는데 올라가서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용암, 말 그대로 바위가 녹은 물(H₂O가 아닌 유리, 철, 니켈, 마그네슘 등등이 높은 열로 액체 상태가 된 것)이 절절 끓어오르는 호수라면 지옥을 바로 보는 근사한 느낌을 줄 것이다.

비야리카는 칠레의 원주민 마푸체어로는 루카피얀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영혼의 집’이라는 뜻이다. 택시를 대절해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가자고 해서 화산석이 굴러다니는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가까이 달려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점점 푸른 초목은 사라지고 명도가 낮아지더니 등산 기점인 산 중턱 주차장에 이르자 볼 것도 없이 시커먼 골짜기에서 연기 냄새가 심하게 났다. 바닥은 화산석이 부서져 만들어진 회흑색 모래투성이였다. ‘영혼의 집’치고는 참 삭막하고 팍팍하구나 싶었다.

택시에서 내려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좋아서 그곳에 간 것이라면 모르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차 간 것이라 그런지 아무리 뛰어난 명승도 구경거리가 되지 못했고 유명한 사람과 만나도 그다지 궁금한 게 없었다. 촬영 테스트 삼아 몇 군데에서 포즈를 잡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위로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우르릉, 하고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산 위에서 작은 돌들이 굴러내렸다. 구름인지 연기인지 모를 연무에 싸인 위쪽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 가야 하나요? 살아생전에 활화산 구경을 할 기회는 잘 없을 것 같은데.”

아름답고 강단 있는 피디는 무거운 촬영 장비를 든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막상 가려고 하니 숨쉬기조차 거북했다. 아무래도 평지에 비하면 고산이라 산소량이 희박할 것이고 공기 중에 재나 연기 성분이 섞여 있으면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운반하는 데 애로를 겪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의 일부는 ‘아이고, 어지러워’ 하는 식의 중얼거림으로 내뱉기도 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때 위에서 등산복 차림의 젊은이 셋이 피켈을 든 채 내려왔다.

“정상에 다녀오나요?”

반가워서 와락 다가가 물었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지금 화산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자신들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운 좋게 다녀올 수 있었지만 이런 상황이면 자기네 나라 같으면 산악통제소에서 아예 못 가게 막았을 거라고도. 어느 나라 출신인지는 묻지 않았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좋은 나라인 것은 분명했다.

“자, 갑시다.”

나는 피디에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산 아래 방향으로.

택시를 타고 내려오다 피디는 운전기사에게 중간에 멈춰달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힘들게, 돈 들여 왔는데 그냥 연무에 싸인 시커먼 산만 찍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나도 동감하는 바였다. 그 덕분에 왜 비야리카산을 영혼의 집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 가운데 하나를 알게 됐다.

플라타너스 같은 두꺼운 줄기와 사십 미터쯤 되는 큰 키, 포플러 잎을 닮은 작은 잎을 무수히 매단 거대한 나무들이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처럼 서 있었다. 무심코 그 나무들 사이의 공간 안에 발을 들여놓자 갑자기 머리털이 곤두섰다. 누가 ‘무릎을 꿇어라,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성스러운 곳이니라’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신성한 채널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라는 유물론적 인간에게 그런 신비한 정서적 체험을 안겨줄 만한 지구상의 생명은 오직 나무와 숲뿐이었다. 바로 그걸 비야리카산 중턱의 숲에서 처음으로 느꼈다.

숲 밖으로 나오니 움막 같은 게 보였다. 나뭇가지와 거적 같은 걸로 얼기설기 엮은 집인데 어두운 안쪽에 허름한 침대와 옷가지, 모닥불 피운 흔적 같은 게 들여다보였지만 집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어쩐지 친근했다. 내 영혼의 집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양이 아닐까. 집주인을 만나면 ‘형제여’ 하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칠레에 간 이후 최고의 감동을 경험했다는 느낌을 뒤로하고 산 아래로 내려오자 비야리카 호수가 나타났다. 시도 때도 없이 쿵쿵대며 연기를 뿜는 활화산을 배경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호숫가에는 그림 같은 별장들이 수두룩했다.

“저 별장 뒷마당에서 천국 같은 호수를 바라보며 세상의 종말이 곧 올 거라는 느낌을 양념으로 바비큐를 해 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내가 말하자 택시 기사가 내게 그 별장을 하나 사라고 권했다. 별로 비싸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그런데 얼만데요? 관리는 어쩌고?”

그때 느낌으로는 비싸지 않았다. 우리 돈으로 이삼천만원쯤? 관리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관리 전문회사가 있어서 일년에 오백만원 정도면 방범, 청소, 수리, 조경까지 다 책임을 진다. 화산이 폭발해서 호수를 덮치지 않는 한 일년에 몇 주일씩 와서 절경도 즐기고 등산도 하고 제트스키도 타라. 몇 번만 와도 본전 뽑는다.

“한 번 올 때마다 비행기 삯만 오백만원이 넘을 텐데. 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이틀은 될 테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각자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길래 나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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