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9 19:51
수정 : 2014.04.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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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여러 브랜드의 스웨트셔츠. 1 폴앤앨리스. 2 럭키슈에뜨. 3 유니클로. 4 스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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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
90년대 ‘대학생 패션’, 장동건이 <마지막 승부>에서 입던 그 옷
유명 디자이너 런웨이에 오르며 감각적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
더이상 운동복 아냐, 스커트·정장바지·스카프에 매치해도 멋져
4월 중순, 이른바 간절기라 불리는 시즌이다. 더불어 아침마다 옷장 앞에서 한숨짓는 시간이 길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두꺼운 외투는 이미 벗어던진 지 오래. 단 하나의 아이템으로 스타일링에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시점이 됐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런 때 빛을 발하는 아이템이 바로 스웨트셔츠다. 1990년대 ‘맨투맨’이라 불리며 드라마 <질투>, <마지막 승부> 같은 데서 남녀 주인공들이 줄기차게 입던 그 옷 말이다.
‘대학생 패션’을 상징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던 맨투맨은 사실 ‘스웨트셔츠’(Sweat Shirt)라는 정식 명칭이 있으며,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땀 흡수가 용이한 원단으로 제작돼 운동복으로 쓰여왔다. 스포츠 세계에 있던 이 아이템이 ‘하이패션’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건 전적으로 2010년 알렉산더 왕의 컬렉션을 통해서다. 알렉산더 왕은 ‘컨템퍼러리 패션’(Contemporary Fashion: 동시대의 패션)을 대표하는 뉴욕 디자이너로 ‘길거리 패션’을 런웨이로 이끈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의 컬렉션을 통해 스웨트셔츠는 일요일 아침 편의점에 갈 때 슬리퍼에 매치하는 옷이 아닌 ‘패셔너블한’ 아이템으로 단숨에 탈바꿈됐다.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패션계가 이 스웨트셔츠의 드라마틱한 신분 상승을 놓쳤을 리 없다. 그 뒤로 하이패션 브랜드들은 너도나도 스웨트셔츠를 선보였고, 2012년 가을/겨울 시즌 겐조를 통해 스웨트셔츠 붐은 다시 한 번 탄력을 받게 됐다. 이어 2013년 가을/겨울 시즌 지방시는 밤비 프린트를 입힌 스웨트셔츠를 대히트시켜 럭셔리 스웨트셔츠의 종지부를 찍었다. 하이패션이 스웨트셔츠에 눈독 들인 탓에 이 아이템의 평균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게 됐지만, 따져보면 쉽게 지갑을 열 만한 에스피에이(SPA) 브랜드에서도 다양한 디자인의 스웨트셔츠를 만날 수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스웨트셔츠를 주로 선보인다면, 유니클로, 에잇세컨즈, 에이치앤엠(H&M)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는 기본에 충실한 스웨트셔츠를 내놓는 편이다. 그것도 착한 가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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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타미힐피거. 6 세컨플로어. 7 비욘드클로젯. 8 브룩스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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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트셔츠 하나에 100만원대를 웃도는 하이패션과 비싸도 5만원도 채 안 되는 가격이 마지노선인 에스피에이 브랜드, 그 사이에는 독립 레이블이라 불리는 작지만 개성 강한 브랜드들이 있다. 이들이 선보이는 스웨트셔츠의 행보도 꽤 주목할 만한데, 프랑스 브랜드 ‘비더블유지에이치’(BWGH: Brooklyn We Go Hard의 약자)는 스웨트셔츠 하나로 세계적인 편집숍인 파리의 콜레트, 뉴욕의 오프닝 세리머니, 서울의 비이커 등과 컬래버레이션(협업)을 매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독립 디자이너들의 스웨트셔츠 시리즈도 눈여겨볼 만한데, 그중에서도 디자이너 고태용은 꾸준히 스웨트셔츠 컬렉션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그의 브랜드 ‘비욘드 클로젯’의 스웨트셔츠 시리즈는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팬덤을 형성할 정도로 지지를 받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고태용의 ‘개’ 모티브 스웨트셔츠 시리즈는 2014년 지금까지 6년째 이어지고 있다. “스웨트셔츠는 ‘비욘드 클로젯’의 핵심 아이템이에요. 컬렉션 피스에 비하면 스웨트셔츠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죠. 그래서 그런지 매출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죠. 그만큼 스웨트셔츠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남성복을 만들지만 비욘드 클로젯의 스웨트셔츠는 여자들도 많이 입거든요. 또 계절이나 트렌드에 크게 구애받는 아이템이 아니기도 하고요. 한여름만 아니라면 스웨트셔츠는 언제든 꺼내 입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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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왕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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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트셔츠 붐은 현재 패션계의 가장 활발한 움직임 중 하나인 ‘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가의 디자이너 레이블은 편집숍이나 대중적인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이름으로 만나 아이템 몇 개로 이루어진 캡슐 컬렉션을 선보인다. 거기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바로 스웨트셔츠다. 그들은 스웨트셔츠의 앞면에 캐릭터나 로고를 개발해 디지털 프린트를 입히거나, 자수를 놓거나, 혹은 엠보싱 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쉽게 드러낸다. 소비자는 그런 스웨트셔츠를 통해 손쉽게, 게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 디자이너나 스웨트셔츠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반갑게도 이번 시즌을 관통하는 대표 트렌드 중 하나는 ‘스포티즘’이다. 그래서 스웨트셔츠의 인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 지방시의 영향으로 잠수복 같은 네오프렌 소재가 꽤 오래 인기를 이어왔지만, 이번 봄/여름 시즌엔 아무래도 시스루 소재의 등장이 눈에 띈다. 경쾌한 느낌을 내기 위해 길이는 배꼽이 보일 정도로 짧아졌으며, 분홍이나 민트 등 파스텔 컬러의 아이템이 대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스웨트셔츠는 몸에 딱 맞게 입기보다 조금 헐렁하게 입어 스웨트셔츠가 주는 특유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살리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웨트셔츠가 주는 중성적인 이미지를 상쇄시키는 것도 기존의 스웨트셔츠를 새롭게 입을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첫째로는 드레시한 스커트를 같이 입는 방법이 있다. 레이스나 새틴 등 여성스러운 소재를 매치하거나, 몸매를 드러내는 에이치(H)라인의 가죽 스커트를 입는 것도 좋다. 둘째는 데님 팬츠 대신 트랙 팬츠나 슬림한 정장 팬츠를 매치하는 것이다. 한결 정중한 느낌을 낼 수 있어 어느 정도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도 소화 가능하다. 신발은 티피오(T.P.O: 시간, 장소, 상황)에 맞춰 슬립온 스타일의 로퍼나 스틸레토, 운동화를 신으면 되는데, 신발만 바꿔줘도 전혀 다른 옷을 입은 듯 새로운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가장 간단하고 손쉽게 스웨트셔츠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스타일링 팁은 스카프를 이용하는 것이다. 흔히 스웨트셔츠 안에 셔츠를 받쳐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셔츠 깃을 대신해 네크라인 바깥으로 스카프를 살짝 보이게 연출하면 전혀 다른 옷을 입은 듯 새로운 연출이 가능하다.
오주연(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각 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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