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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16 19:38 수정 : 2014.04.17 09:59

사진 이우성 제공 .

[매거진 esc] 좋아서 하는 인터뷰

내가 싫어하는 한 신문도 두달 전에 박길종을 인터뷰했다. 그 신문은 늙은 냄새가 난다. 나는 연륜을 존중하지만 늙은 냄새를 존중하진 않는다. 냄새는 나이와 상관없다. 무엇보다 나는 그 인터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 신문은 박길종과 길종상가에 입주한 다른 두명의 상가 주인을 ‘88만원 세대’로 묘사했다. 젊은 세대를 맘대로 규정하고 재단하는 것이 늙은 신문의 장기인 건 알지만 굳이 수입을 적었다. 200만원이라고. ‘200만원’에 투영하고 싶은 게 있었을까?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젊은 애들이 200만원 정도 벌면 되지 않나’라는 마음이 담겨 있을까? 안타깝게도 금액도 틀렸다. 세명이 각각 200만원을 벌진 못한다. 셋의 수입을 합쳐야 그 정도다.

박길종이 자신의 이름을 딴 ‘길종상가’의 문을 연 건 2010년 겨울이다. 나는 우연히 그를 만났다. 잠깐. 그리고 잊고 살다가 얼마 전 이태원의 한 술집에서 재미있는 달력을 봤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루에 한장씩 찢는 일력을 봤다. 어릴 때 나는 찢은 ‘날’을 접어 비행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일력을 봤을 때 날려 보낸 비행기를 찾은 것 같았다. 일력에 길종상가라고 적혀 있었다. 박길종의 길종상가에서 만든 달력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니까 서먹서먹하네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재밌는 아이디어가 차고 넘치는 박길종 작가께서는 평소 말씀을 굉장히 지루하게 하신다. “<무한도전> 멤버 중에서 제 캐릭터를 찾는다면 유재석과 정형돈의 중간 정도이지 않을까요?” 길이 아니라?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어이없어 듣기만 했다. “상가 관리를 맡다 보니 유재석 같은 면이 있고요, 무한도전 가요제 같은 데서 정형돈이 한방을 제대로 날리듯, 가끔 저도 큰 웃음을 주거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간에 지극히 건조한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끌어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박길종은 어떤 분류체계로도 나눌 수 없고, 충족한 벌이가 되지 못하는 길종상가를 4년째 이끌고 있다. 유재석 같은지 정형돈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그 둘 못지않게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은 안다. 알게 됐다.

박길종·김윤하·송대영이 공동 운영하는 길종상가엔 무엇이든 있다. 박길종은 힘닿는 데까지 작품을 사들이고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든다. 다만 이곳엔 ‘전형’이 없다. 이렇게 만들더라, 이렇게 생겼더라 따위가 없다. 모두 일상적인 물건이지만 길종상가에 있는 물건을 보면, 그것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길종상가는 상가에 입점한 사람들이 배우고 느끼고 겪은 모든 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대신 적절한 금액을 받아 운영해 나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다른 분과 협력해 새로운 걸 만들 수 있게 되면 더 다양한 물건이 생기겠죠.” 길종상가에는 여러 상점이 있다. “길종상가는 경쟁자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형태를 가진 무엇이 아니거든요.” 10평이라는 수치로 길종상가를 가늠할 수 없다.

박길종은 재미있는 일을 많이 벌였다. 직업학교를 만들어 뜨개질을 가르쳤고, 누군가 입었던 원피스와 코트도 팔았으며, ‘듣말마’(듣거나 말하거나 마시거나)라는 놀이 이벤트도 열었다. 박길종이 어떤 큰 뜻을 품고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위는 강력한 의미를 가진다. 박길종과 길종상가는 누군가를 수동의 상태에서 능동태로 변화시켰다. 나는 이것이 가진 정치성에 관심이 없다.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 인류사를 적을 때 서울 이태원의 한 골목에서 일어난 일을 적어야 한다. 부디 그 사람이 멍청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길종상가가 있는 골목은 일방통행길이다. 마을버스 한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이다. 동네 주민과 동네 개 말고는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이태원 골목에 어떤 날은 사람의 긴 줄이 생기기도 했다. “길종상가는 주말에만 문을 열어요. 조용해요. 그런데 이벤트를 하면 처음 골목길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이곳은 서울의 오지다. 위대한 빛이다.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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