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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동행, 집수리, 통역…. 바쁜 가족과 자신을 대신하는 서비스의 종류가 크게 늘면서 역할을 대행하는 심부름센터, 시급 남편 서비스 등이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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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소소한 집수리부터 맛집 음식 배달, 인기 연예인 사인회 줄서기까지 대신하는 ‘대행 서비스’ 유행
봄을 맞아 새로운 남편을 찾아 나섰다. 지금까지의 결혼생활을 교훈 삼아 손은 빠르며 입은 무거운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남자가 있긴 있었다. 요즘 온라인과 에스엔에스에서는 “남편이 미루던 일들을 해드립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남편이 하지 못하는(않는) 일을 대신해준다는 남편 대행 서비스가 인기다. 안철수 의원 책 나왔을 때는
서점에서 사다달라 주문 쇄도
온라인 심부름 직거래 장터도
귀찮은 일 대신 해주는 ‘아바타’ 역할
이동형 집수리 ‘시급남편 서비스’ 임정권(46)씨는 지난해 여름 ‘시급 남편 서비스’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20년 가까이 목수일, 전기 공사, 욕실 설비 등 집 고치는 일을 이것저것 해오던 그는 해외 뉴스를 보다가 ‘우리나라에도 저런 서비스가 있으면 잘되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처음에는 ‘시급 남편’이라는 말을 오해하고 아이를 돌봐달라거나 대화 상대가 되어달라는 전화도 왔다. “말주변이 없어 멀뚱멀뚱 앉아 있기도 고역이었다”는 그는 얼마 전 ‘해드림 서비스’로 이름을 바꿨다. 블로그를 연 지 두달쯤 지나자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누가, 왜 이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걸까? 예약해야만 만날 수 있다는 인기 시급 남편의 하루를 쫓아가 봤다. 4월11일 금요일 오전 11시, 임씨와 함께 서울 성동구 응봉동 한 가정집을 찾았다. 문을 열어준 사람들은 뜻밖에 노부부였다. 정태명(67)씨에겐 결혼해서 분가한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오늘 서비스를 예약했다고 한다. 아들은 부모님을 위해 온라인으로 선반을 주문했지만 직접 설치하는 가구는 부모님에게 생소했다. 또 아파트에서 벽에 못 하나 박자고 연장을 장만하는 것도 무리였다. 임씨가 일을 시작했다. 1시간 동안 이케아에서 주문한 선반 두개와 아들 결혼사진이 담긴 액자, 거울이 벽에 걸렸다. 임씨는 시간당 1만5000원과 출장비 5000원을 받는다. 다음 목적지는 구로동, 시간은 낮 1시. 임씨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오토바이로 서울과 경기도를 다닌다. 좌석 뒤쪽에는 드릴과 톱날, 그라인더가 든 공구함을 싣고 발이 놓이는 부분에는 우유 상자를 개조해 만든 연장함을 두었다. 못과 전선들, 드라이버, 창틀에 쓰는 실리콘 등 함에 든 것은 그가 하는 일만큼이나 다양하다. 구로동에선 베란다에 빨래건조대를 달고 몇군데 액자를 걸 수 있도록 벽에 못을 박았다. 퀵서비스만큼이나 시간을 다투는 그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이번엔 합정동으로 향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학습 협동조합 ‘가장자리’는 임씨의 단골손님이다. ‘가장자리’ 조합원 힘으로만 할 수 없는 일을 모아 수리 서비스를 이용하곤 한단다. 여기서도 온라인 주문 가구가 문제였다. 보통 2만~3만원을 더 내고 설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소비자가 조립하기 어려운 가구들이 많다. 외국산 조립가구에는 나사못 같은 부속품이 제대로 딸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또 가전제품마다 모두 설치기사가 달라서 자신들의 일만 하고 가버리기 일쑤였다. 전체적으로 손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임씨는 이곳에서 2단 선반 5개를 달고, 6단 책장을 조립하고, 그동안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욕실 가구와 선반을 죄다 제자리에 붙였다. 커튼봉까지 달고 나니 밤 9시가 되었다. 그는 보통 하루 3~4곳을 다니는데 대부분은 30~40대 여자들이 찾는다고 했다. “요즘에는 자물쇠 설치, 가구 개조처럼 점점 새로운 일이 늘어난다. 돈벌이는 건설 현장만 못하지만 자꾸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이 일이 재미있어서 계속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생활형 심부름센터 ‘애니맨’ 생활이 간편해졌다지만 우리 일상은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틈새투성이다. 임씨 말고도 온라인에서는 비어 있는 가족의 자리를 대신해 일상을 거들어주는 서비스가 성업중이다. 생활 심부름 대행업체 애니맨에서 꼽아보니 우리나라에 이런 서비스를 하는 곳은 200개 정도, 그중 대부분은 1~2인의 작은 회사지만 제법 큰 10개 업체가 경쟁중이다. 1인가구 시대 싱글들을 노리고 시작한 서비스지만 싱글은 싱글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누군가의 손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논현지점에서 일하는 애니맨 최근범 부장은 “가족들이 모두 외국에 나가 있는 집은 노모를 모시고 병원에 가달라는 부탁, 예식장이나 결혼식장에 가서 부조를 대신해달라는 부탁, 가구 조립·설치를 도와달라는 부탁 등 다양하다. 그래도 가장 많은 것은 음식 배달”이라고 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 여자들끼리만 사는데 갑자기 바퀴벌레가 튀어나와서 잡아달라고 전화한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남자들만 사는데 변기가 막히자 심부름센터에 의뢰한 사람도 있다. 약을 사다달라, 남자친구가 술이 많이 취했으니 집까지 대신 업고 가달라는 부탁은 그래도 생계형에 속한다. 생활심부름센터는 취향의 장터다. 소문난 맛집의 음식을 먹기 위해 대신 줄을 서서 음식을 포장해 오라는 부탁이 압도적으로 많단다. 심지어는 집 아래층에 치킨집이 있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치킨집에서 배달해 먹기 위해 기꺼이 2만원을 더 치른다고 했다. 논현동 떡볶이, 성수동 족발, 르네상스호텔 근처 김밥, 현대백화점 도지마롤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음식을 배달해 파티를 여는 집도 있었단다. 최 부장은 “예전엔 밤늦게 일하다 배고파서 음식을 시키는 정도였는데, 이젠 콕 집어 어느 집의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욕구를 내세운다. 그리고 보편적인 직업군의 평범한 사람들도 한번 자신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받기 시작하면 다른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센터는 24시간 운영한다. 고객들은 욕망과 필요를 미루지 않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이 책을 냈을 때 심부름센터에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사다 달라는 부탁이 몰려들었단다. 며칠 기다리면 온라인 서점에 나오겠지만 고객들은 바로 지금 그 책을 보기 위해 돈을 더 낸다. 이곳의 서비스 요금은 시간, 거리, 강도에 따라 7000원부터 10만원까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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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아바타25’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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